“일하며 얻은 병 산재 아니라니...” 근로자가 뿔났다

삼성에서 버림받은 또 하나의 가족

2011-01-15     김인하 기자
 
[매일일보=김인하 기자] 불과 10년동안 20명의 인원이 백혈병을 비롯해 기타 질병에 걸렸다. 우연찮게도 같은 공정에서 같은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측은 개인적 질병일 뿐, 산업재해는 아니라는 말만 반복한다. 입사당시에는 최고의 직장에 다닌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다는 근로자들. 그러나 현재 그들에게 남은 것은 어마어마한 치료비와 고통스러운 삶 뿐이다. 반도체업계에서 가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회사인 삼성전자에서 구시대의 유물인 산업재해로 싸우는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는 아이러니. <매일일보>에서 취재해보았다.
 

삼성전자반도체공장근로자들, 산재불승인 소송 들어가
관계당국마저 저버린 근로자들…“타당한 역학조사필요”

  지난 11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근로자들이 서울행정법원에 모였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다니다 2007년 3월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 등의 유족을 비롯, 현재 같은 진단을 받고 치료중인 김모씨 등 근로자 3명 등 총 6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낸 것. 이들은 이 날 제출한 소장에서 "공단 측은 역학조사를 통해 백혈병의 발병원인인 벤젠과 전리방사선 등이 검출되지 않았다며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근 국회에서는 삼성반도체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고 지적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혈계 암 걸린 근로자 20명 중 7명 사망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의 연관문제가 대두 된 것은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나서였다.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3월 6일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 씨가 도화선이 됐다. 이어 같은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황민웅 씨가 백혈병으로 치료를 받았고 황유미 씨와 같은 라인에서 2인 1조로 일하던 최 모씨가 임신했다 유산이 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생겼다. 그 자리에 새로 배치된 이숙영 씨는 백혈병에 걸려 결국 사망했다. ‘반도체근로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서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에 걸린 근로자들이 이 외에도 20명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환경 속에서 일해 왔다고 증언했다. 작업장은 ‘클린(clean)룸’이었지만 각종 설비와 반도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근로자를 보호하는 장소는 없었다고 말했다. 2004년 12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2007년 8월에 백혈병이 발병한 박지연씨는 자문의협의회에서 “제품을 납에 담글 때, 하얀 연기가 나는데 그 연기는 코로 바로 흡입이 되어서 역겹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으며, 플럭스 용액과 141B용액을 교체하며 다루는 과정에 화학약품이 손에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면장갑을 착용했지만 약품이 그대로 손에 스며들었고 물로 씻어도 약품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반도체를 위한 클린룸, 근로자는 유해물질에 노출

 
반도체는 제품 특성상 미세 먼지 등의 불순물에 취약하다. 가장 크게 오염시키는 것은 사람이다. 이러한 오염원을 막기 위해 사람에게 방진복을 입히고 마스크를 씌운 셈이다. 근로자를 보호하는 차원이라고 하지만 지급된 방진복으로는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유해물질이나 방사선, 가스 등이 근로자에게 스며드는 것을 차단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삼성전자 측은 근로자들의 산재신청 당시 백혈병 발병과 작업환경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혈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물질로 알려진 벤젠과 같은 물질을 쓰지 않으며, 내부 환기가 완벽하기 때문에 유해물질을 흡입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에 산업재해인지 판단하는 요소가 애매하다고 판단한 근로복지공단 측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역학조사는 2007년 7월부터 11월까지 실시됐다. 결과는 근로자들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반도체 공정을 진행하는 작업 현장에서 백혈병 유발 가능 물질인 벤젠을 비롯해 전리방사선, 산화 에틸렌 등을 측정하였으나 검출되지 않거나 노출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엇갈리는 조사결과, 진실은 어디에

그러나 이러한 조사결과는 반전을 거듭했다. 2009년 10월, 서울대산학협력단이 실시한 ‘산업보건 위험성 평가’를 국감에서 입수, 분석한 결과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포토레지스터(PR)라는 물질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0.08ppm~8.91ppm 검출되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벤젠은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산재보험법에서 업무상 질병요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는 <매일일보>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서울대산학협력단 측이 조사한 것은 사용되는 물질의 시료를 가져다 성분분석을 했더니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것이며 연구센터 측에서 조사한 것은 공기 중 노출정도이기 때문에 결과가 다르게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피해 근로자들이 일했던 환경과는 다른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근로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당시 환경까지 모두 고려해서 조사를 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에 문제점이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피해를 주장하는 근로자가 늘어나자 삼성은 현재 문제가 된 수동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자동화 시켰다. 삼성 관계자는 산재신청을 한 근로자들의 불승인 관련 소송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진행될 재판의 결과가 사실을 말해주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 측은 자신들은 관련 업무 처리만 할 뿐, 산재처리에 대해서는 권리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가 갈팡질팡 하는 사이 피해 근로자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 20대를 어떻게 보상받나”
뇌종양, 지체장애 1급 판정받은 한혜경 씨 인터뷰

  

앞서 산재신청을 냈던 근로자들에 대한 신청이 불승인된 가운데 또다른 피해자인 한혜경(32)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한 씨는 2001년 소뇌부 뇌종양(상의세포종) 판정을 받고 뇌종양제거수술을 받았으나 전부 제거하지는 못했다. 이후 이어지는 뇌·신경계통의 손상으로 인해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상황이다. 납 성분의 크림(Solder 크림)을 다루었던 한 씨는 크림을 직접 주걱으로 떠서 올려놓는 일을 했다. 한 씨 가족은 이와 같은 작업이 한 씨의 뇌종양 발병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경기도립의료원 의정부병원 신경외과 김경일 전문의와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손미아 교수는 이러한 솔더작업이 뇌암발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서를 내놓았다. 앞서 연구되었던 많은 문헌고찰을 통해 솔더크림, 유기용제(이소프로필알콜, 아세톤 등)이 포함된 여러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하였고, 이로 인해 소뇌암이 발생되었다는 것.
<매일일보>은 지난 13일 산재신청을 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를 찾은 한혜경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한 씨는 힘겹게 말을 이어가며 인터뷰에 응했지만 대부분의 답변은 한 씨의 어머니인 김시녀(52)씨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의사소통이 제한적이었다.

삼성전자에 얼마나 근무했나
1995년 10월에 삼성전자(주) 기흥공장에 입사해서 LCD생산직에 근무했다. 이후 2001년 8월에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하게 됐다.

젊은 사람들의 꿈의 직장에서 일했으니 자부심도 컸겠다.
(한 씨 어머니)다들 좋아했다. 게다가 부모님들을 초청해서 보여준 근로자 기숙사는 우리 집보다 더 좋아보였다. 크고 깔끔한 건물을 보며 역시 삼성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딸이 근무하던 환경은 정말 열악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가슴아프다.

왜 퇴사하게 되었나
퇴직하기 3년 전부터 월경이 없었다. 이 때문에 호르몬 주사를 맞기도 했는데 낫지 않았다. 결혼 적령기 여자에게 좋지 않은 환경이라 생각해 퇴사를 하게 됐다.

언제 뇌종양 발병사실을 알았나
퇴사 이후에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는데 당시에도 몸이 안 좋아서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걸음걸이도 조금 이상해졌다고 느꼈지만 정밀검사를 받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2~3년의 시간이 지나자 점차 앞이 안보이고 균형감각이 없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증상이 점점 심해져서 2005년 10월 초에 춘천 소재 인성병원에 가서 MRI 촬영을 해 보았고 이 때 소뇌부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당시 주치의 선생님은 뇌종양이 7~8년 정도의 깊이를 보인다고 했었다. 그 후, 같은 달 19일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옮겨가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이제껏 춘천의 재활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현재 몸 상태는 어떠한가
뇌종양 제거를 완벽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너무 뿌리가 깊어서 종양을 모두 제거하게 되면 신경을 건드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어 재활치료만 받고 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조금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움직이기 어려워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하고 음식의 맛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치료비가 만만치 않을텐데
개인적으로 들어놓은 보험금이 나와 다행히 지금까지는 빚지지 않고 병원비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보험금을 타게 되면서 기초생활수급권이 끊겼다. 보험금으로 생계비와 병원비 모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오래 이어지면서 현재는 막막한 상황이다.

산재처리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불승인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산재가 확실하다고 믿고 있다. 인정받을 때까지 권리를 요구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