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격호 회장 꿈 '남의 것 베끼기?'

업계 '대기업 윤리성 상실, 시장질서 깨뜨려'

2006-12-26     권민경 기자
빼빼로에서 제2롯데월드까지 '전방위적 베끼기'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오리온 스낵이 롯데제과(이하 롯데)를 상대로 "롯데의 감자칩 상표 '포칸'이 오리온스낵 '포카' 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낸 상표권 침해금지 가처분 항고심에서 오리온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롯데는 '포칸' 제품을 생산·판매해서는 안 되며, 광고에 이 명칭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고 원고의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롯데가 현재까지 오리온스낵과 상표권의 유효성 여부를 다투면서 '포칸' 상표를 감자칩·고구마칩 제품에 사용 중인 점 등에 비춰 롯데가 상표권 침해를 계속하리라고 보이므로 가처분 신청의 소명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롯데의 베끼기 관행은 비단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제과를 비롯해 음료 등에서 전방위적 '베끼기'를 서슴치 않고 있어 업계의 비난이 오랫동안 계속돼 왔다.

최근엔 롯데그룹 총수 신격호 회장의 지시에 의해 파리의 에펠탑을 본따 잠실 제2롯데월드 건축물을 디자인한 것이 알려지면서 일부에서는 롯데 기업정신이 '베끼기'가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오고 있다.

"서울의 ‘제2롯데월드’는 에펠탑 모양을 본뜬 세계 최고층 건물로 만들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의 꿈이라면 한국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제2 롯데월드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신격호 롯데 회장- 2004년 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 중)

롯데그룹은 지난 1994년부터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에 심혈을 기울여 오고 있다.

신 회장 본인이 인생의 남은 꿈이라고 공언할 만큼 제2롯데월드 건설에 대한 롯데의 야심은 대단하다.

일각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롯데 측이 제2롯데월드 건립에 소요되는 비용만 1조5천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초반부터 안전문제, 교통평가문제 등 갖가지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며 건립에 난관을 겪어 왔다.

제 2롯데월드, '1조원 넘게 들여 에펠탑 베끼나?'

최근에는 건축 허가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와 송파구청 등의 평가가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고, 9개월 여를 끌어온 교통환전영향평가도 통과하며 나름대로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롯데 측 계획대로 2만 여 평 부지에 112층 짜리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다면 이는 분명 서울시의 랜드마크 빌딩이 될진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인 '에펠탑'을 본뜬다는 것은 창조성과 독창성 면에 있어서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 많다.

한 건축전문가는 칼럼을 통해 "건축물은 돈을 댄 사람이나, 그 일족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까지도 수백년, 수천년을 그 자리에 남아있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며 " 때문에 함부로 개인 취향대로만 지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의 말대로 에펠탑을 본떠 제2롯데월드가 만들어진다면 엄청난 투자에도 불과하고 세계 사람들의 조소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 주장했다.

지난 9월 이명박 서울 시장 또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이 시장은 "서울은 600년 역사를 가진 도시" 라며 "그 동안의 지나친 개발억제정책 때문에 현대적 상징물이 없는데, 랜드마크 빌딩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이어 이 시장은 "잠실 롯데월드 설계를 보니 너무 에펠탑과 비슷해 특징 있는 건물로 설계했으면 좋겠다" 고 밝힌 바 있다.

제2롯데월드가 에펠탑을 모방해 건립된다는 내용이 기사화 되면서 네티즌들 역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열등감의 표출이다", "국제적인 조롱거리 하나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건가?" 등의 비난이 쏟아졌고, "엄청난 돈을 투자해 만드는 건물인데 한국적 디자인을 가미하는 것이 좋겠다" 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제2롯데월드 디자인 안티사이트를 만들자" 는 강한 반감을 표시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롯데 '베끼기'에 군소업체 살길 막막

사실 롯데의 '베끼기'는 제과, 음료의 타사 제품 베끼기로도 업계에서 유명하다.

롯데제과는 지난 97년에 오리온제과와 '초코파이'를 놓고 법정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리온이 롯데 '초코파이'에 대해 상표등록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당시 법원은 "초코파이는 상표로 인식되기 보다 초콜릿을 바른 과자류를 지칭하는 명칭'이라며 롯데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초코파이'의 원조가 오리온임을, 롯데의 '초코파이'는 일명 '짝퉁'이라는 것을 알았다.

롯데가 베끼는 것은 비단 제과류 뿐이 아니다.

해태음료에서 '갈아만든 배'라는 씹히는 과즙음료를 출시하자 경쟁사인 롯데칠성음료는 발빠르게 이와 유사한 '사각사각 배'라는제품을 내놓았다.

또 남양유업의 '니어워터'가 엄청난 개발비와 기간, 마케팅 비용을 들여 미과즙음료의 시장을 개척해 놓자 롯데 칠성은 '2% 부족할 때'라는 브랜드를 출시하며 선발 제품을 제치고 거꾸로 시장을 장악하기도 했다.

음료업계 관계자는 "롯데의 물량공세로 음료업계의 신제품 개발의지가 꺾이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의 대표적 음료업체인 롯데칠성이 유통망과 자금력을 무기로 타사 제품 베끼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욱이 롯데는 수년간 메이저 업체라는 모습에 걸맞지 않게 군소업체 브랜드를 모방하는 비 윤리적 행태를 일삼았다.

경쟁업체 제품을 그대로 베껴 그 인기를 뺏는 것과 동시에 막강한 자금과 유통망을 통해 시장질서를 깨뜨리는 일을 빈번하게 행해왔다.

이 때문에 군소 업체들의 불만은 계속돼 온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돈과 시간을 들여 제품을 개발해도 롯데의 '베끼기 상술'과 저가 공세 때문에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웅진식품이 쌀음료 '아침햇살'과 매실음료 '초록매실' 등을 내놓으며 시장의 좋은 반응을 얻자, 롯데는 '별미별곡'과 '모메존매실' 등 웅진 제품을 본뜬 유사품을 출시해 업계의 비난을 샀다.

더구나 자체 유통망을 통해 경쟁제품보다 30% 가까이 싼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군소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기도 했다.

롯데, 국내든 해외든 '돈 되는 건 다 베껴'

국내 제품만이 아니다.

롯데는 종종 일본 제품에서 힌트(?)를 얻곤 했다.

'빼빼로 데이' 라는 상술에 온 국민이 한번쯤은 먹어본 롯데제과의 대표 브랜드 '빼빼로'(1988) 또한 일본의 '글리코 포키'(1966)라는 과자를 모방한 것이다.

지난 1월 초 일본 'TV도쿄'는 해외 경제뉴스 프로그램인 '월드비즈니스 새털라이트'를 통해 '빼빼로'를 비롯한 한국 제과업계의 일본 베끼기 관행을 꼬집은 바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2002년 하이주(Hi-CHU)란 자사의 브랜드에 대대적인 프로모션 활동을 시작했다.

맥주와 소주가 지배하고 있던 시장에 일명 '탄산알콜음료'라 불리는 '하이주'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려 한 것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자사의 홈페이지 제품 정보란에 '하이주'라는 이름을 짓게 된 배경을 설명했는데, 이에 따르면 하이볼의 '하이'에 패키지가 캔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음료로 오해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마지막에 술을 뜻하는 주(酒)자를 결합해 '하이주'란 제품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하이주' 탄생의 뒷 배경에는 일본의 주류회사 '추하이'가 있다는 것이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일본의 추하이는 많은 주류회사들이 제조하고 있으며 이런 탄산알콜음료를 지칭하는 일반명사화 되어 있을 정도로 대중적 제품이다.

이뿐이 아니다.
주류 회사 진로 발렌타인스는 지난 2001년 "롯데칠성의 주력 상품인 위스키 '스카치 블루'가 병 모양과 라벨을 '발렌타인스 17'과 유사하게 만들어 소비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 며 서울지방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당시 진로 발렌타인스는 "국내 최대의 식.음료 회사인 롯데가 이처럼 세계적 브랜드 제품을 모방해 판매하려는 비 윤리적인 행위는 국내 주류업계 공정경쟁에 큰 장애물"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처럼 롯데의 베끼기 관행은 어제 오늘 일도, 비단 한 분야에서만 있어온 일도 아니다.

'개성'과 '창의'를 중시한다는 롯데의 기업 정신은 수년 간 몰두해 오고 있는 '베끼기' 앞에 무색하기만 할 따름이다. 

kyoung@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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