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 한 달에 280만원!

글리벡 약가인하 고시 취소, 환자들 목숨 건 협상

2010-02-01     김인하 기자

 

[매일일보=김인하 기자] 환자들은 살기 위해 약을 먹는다. 약에 대한 접근권은 그래서 중요하다.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 아닌 이상 약에 대한 접근권은 어느 것보다도 우선된다.
식량이 풍족한 시대를 살면서 기아로 죽어가는 생명이 있듯이, 치유할 수 있는 약이 개발됐음에도 불구하고 약을 먹지 못해 다시 병을 얻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이는 개인의 ‘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라고 치부되기에는 너무 큰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다.

지난 22일 서울행정법원은 백혈병과 GIST(위장관 기저종양)의 보조치료에 쓰이는 글리벡의 약가인하처분취소를 내렸다. 지난 해 6월 2만3044원에서 1만9818원으로 14% 인하하겠다고 복지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가 고시한 것을 뒤집는 결과였다.

글리벡은 2000년 개발당시 기적의 치료제로 불릴 만큼 관련 질병에 효과를 나타내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약품이다. 최초 수입 당시 100mg 1정당 2만 5000원을 요구한 제약회사와 정부 협상안 1만 7862원 사이에서 저울질 중이었으나 정부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2만 3045원으로 최종 결정되어 판매되었다.
이에 우리나라의 환자와 시민단체들은 높은 가격 때문에 치료를 위한 의약품 접근성을 해친다고 판단, 2001년부터 꾸준히 약가조정을 신청해왔다. 그 결과 당시 보험적용 부분 외인 30%의 본인부담금을 2003년 2월부터 20%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어 2005년 9월에는 10%로 본인 부담금이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보험 적용을 받는 환자들은 10%를 선지불하고 글리벡의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사로부터 현금지원을 받는 방식이 취해졌다. 결과적으로 무상으로 글리벡을 복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무상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환자 수는 갈수록 늘어갈 것이 분명하고 환자들은 글리벡을 장기 투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적용도, 가격인하도 실패, GIST환자 어쩌라고

글리벡 문제에 있어 백혈병 환자들의 경우 무료 처방을 받고 있지만 GIST환자들은 보험적용에 있어 다른 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이다.GIST, 우리말로 ‘위장관 기저종양’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소화기 계통의 장기 근육층에 종양이 생기는 난치성 질환이다. GIST 치료에 있어 글리벡은 보조치료제로 쓰이기 때문에 수술 이후 다시 암이 재발할 경우에만 보험적용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리벡은 GIST 수술 후 6주 이내에 복용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 때문에 GIST 환우회는 지난 7일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글리벡 가격인하와 비합리적 보험적용에 대해 규탄한 바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현재까지도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부답인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GIST 환자들은 1정에 2만3405원에 달하는 약값을 본인부담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하루에 4알씩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 달이면 약값이 280만원에 달한다. GIST환자들이 약가인하에 대해 더 절박한 심정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GIST 진단을 받은 이우용(42.가명)씨는 지난 27일 <매일일보>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막막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우용씨가 발병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작년이다. 7월 21일 단순 종양인줄 알고 수술을 받았다. 퇴원 후 외래진료를 받던 30일 즈음 이 종양이 GIST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다음은 이우용씨와의 1문 1답.

백혈병의 경우 보험이 적용되지만 GIST는 예외라고 하던데
“글리벡은 GIST에서 보조치료제로 쓰이는 약품이다.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을 받은 이후 암이 다시 재발할 경우 1년의 기간동안 보험적용이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재 약가인하고시 법정소송 때문에 보험적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어찌됐거나 어불성설이다. 어느 누가 암이 재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약을 복용하는가. 게다가 글리벡은 수술 후 6주 이내 복용을 시작해야 효과를 보는 약품이다. 약을 먹기 위해 암세포가 자라나길 기다려야 하나?

하루 약값으로 약 10만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한 달 약값이 280만원에 달하니 경제적인 면으로 타격이 크겠다.
그렇다. 다들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 하지만 그렇게 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GIST 환우회를 통해 알게 된 환우들 중에서도 약을 끊은 사람이 있다. 오죽하면 그렇겠는가. 나만해도 12월에 보험적용이 될 것으로 믿고 고가의 약을 먹어왔는데 보험적용은 커녕, 약가인하고시도 취소되어서 막막한 상황이다.
GIST진단 이후 약값을 대기 위해 집도 팔고 전세로 옮겼다. 빚을 지며 약을 먹고 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정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약을 먹어도, 먹지 못해도 그만큼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

약가인하고시가 취소된 후 심경이 어땠는지
제약회사에 너무 끌려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만 봐서는 약이 아닌 금덩어리를 먹는 환우들을 조금 더 배려할 수는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복지부는 항소를 준비 중이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그 동안 돈이 없어 약을 끊을 수밖에 없는 많은 환우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글리벡 약가인하 고시 취소, 환자들 목숨 건 협상
복지부 “재발할 때까지 기다려” 제약회사 “가격인하는 안돼”

2013년에 약품에 대한 특허권이 소멸된다. 특허권이 소멸되면 복제약과의 경쟁을 통해 자연적으로 약가는 인하되고, 인하가격은 현재 약가를 기준으로 조정된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약가 인하에 대한 노력은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세계 최초로 글리벡 약가협상에 나섰던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사무국장(40)은 “백혈병이 아닌 다른 질병에 대한 보험금적용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약가 인하를 이뤄야한다”고 밝혔다.
또한 안 국장은 “현재 우리나라에 팔리는 글리벡은 100mg이다. 철분 중독 등을 이유로 자사에서도 권장하는 400mg을 우리나라에만 팔지 않는 이유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약값이 낮게 책정되기 때문”이라며 이윤만을 강조하는 노바티스 사를 비판했다.

노바티스 사는 본인 부담금이 20%로 책정되었던 2003년부터 부담금 중 10%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지난 해 12월 본인부담금이 5%로 낮춰져 노바티스 사 역시 5%를 부담하는 것으로 지원금이 낮춰졌다. 본지는 노바티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를 약가 인하에 적용할 수 없냐고 물었으나 노바티스 사는 부담금지원정책은 환자지원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던 사업이라고 답했다. 이때문에 지원율이 낮아진 것은 약가인하와는 관련 없는 부분이라며 약가 인하에 대한 여지를 두지 않았다. 또한 노바티스 사는 또한 400mg 정을 팔지 않는 것은 회사 측의 입장일 뿐이라고 답변을 회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