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화려한 '컴백'

‘디자인 경영’ 앞세워 글로벌 톱5 달성한다

2011-02-12     김경탁 기자

최대 경쟁자이자 롤모델 도요타 리콜 사태로 최대 위기
하늘이 내려준 기회…‘오너 책임경영’ 강화로 정면승부

[파이낸셜투데이] 현대기아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돌아온다. 현대자동차는 10일 전자공시를 통해 오는 3월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의선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3월 주총에서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직함을 내려놓은 지 2년만이다.

기아차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지난 2년 동안 정의선 부회장은 ‘오너경영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활동으로, 그룹 전체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왔고, 이러한 성과를 발판으로 ‘현대자동차 대표이사’라는 더 큰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파이낸셜투데이>는 정의선 부회장이 그동안 걸어온 행보를 통해 오너경영체제의 기업가정신과 현대기아차가 앞으로 걸어갈 미래를 점검해봤다.현대기아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의 오늘을 말하는 키워드는 ‘디자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면서 동시에 세계 자동차 업계가 폭풍에 휘말리기 시작한 2008년 이후 기아자동차가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세계의 주목을 끌 수 있었던 배경에 정 부회장이 주도한 ‘디자인 경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경영’ 앞세워 기아차 성장 공로 인정

현대자동차는 10일 전자공시를 통해 오는 3월 12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정의선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신규선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그동안 롤모델로 삼아온 선두업체이자 최대 경쟁자였던 도요타 자동차가 초대형 리콜 사태를 맞아 세계 자동차업계에 격변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오너리더십 전면화를 통한 책임경영 강화가 배경으로 해석된다.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해 8월 21일 현대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 및 현대모비스 부회장에 전보, 승진 발령을 받은 바 있다. ‘디자인 경영’을 통해 기아차를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 승진의 배경이었다.
정 부회장은 2005년 현대기아차 총괄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뒤 기아차로 옮겨 디자인 경영을 펼치며 기아차의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을 바탕으로 기아차는 적자 늪에서 벗어나 지난해 상반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재벌 3세 중 최고 성적”

지난해 10월 <위클리경향>이 주요 언론사 산업부 담당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재벌3세 경영성적표’ 설문조사 결과 경영성적과 경영권 승계 면에서 응답자 과반수의 지지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산업부 기자들은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성과와 업무추진력에 대해 매우 후한 평가를 내놓았는데, 여기에는 기아차에서 보여준 성과와 부회장 승진 그리고 최근 2년 사이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주요 대외행사에 호스트로 등장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사실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정 부회장이 ‘디자인 경영’에 몰입할 수 있었던 계기는 2년 전 기아자동차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08년 3월21일 기아자동차 주주총회를 통해 기아차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대표이사 사장’이 회사를 나가는 것도, 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것도, 등기이사 등재를 취소하는 것도 아니면서 ‘대표이사’ 직함만 떼는 것은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고 그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정 사장의 대표이사직 사임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정 부회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2003년 이후 기아차의 영업이익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2006년과 2007년에는 적자로까지 떨어지자 그룹 차원에서 정 사장 보호를 위해 결단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던 것이다.

‘오너경영’과 기업가정신

하지만 정의선 부회장의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임 이후에 보여준 행보는 우리나라 재벌계열 기업에서 오너경영자가 가져야 할 포지션과 역할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기업가정신’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모범적인 사례였다.

대표이사 사임 이후 그의 동선이 회사의 장기적 방향성을 세우고 대규모 투자에 책임을 지며, 핵심인재를 영입하는 한편, 구성원들에게는 창업주의 정통성 있는 후계자로서 심리적 감성적 일체감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짜여졌다.2008년 5월 현대기아차그룹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전략적 제휴 체결 그리고 기아차의 ‘디자인경영’을 기획하고 핵심 인재를 영입한 것이 정 사장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제조와 영업 현장에서 구성원들을 한 마음으로 이끄는 활동도 눈길을 끌어왔다.

정의선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보다도 생산현장을 더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평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방 공장에 내려가고 해외 출장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다니는 등 현장경영을 중요시한다는 평가이다.
특히 정몽구 회장이 비자금 수사로 구속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져있었던 2006년 여름,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CDO, Chief Design Officer)으로 영입함으로써 대반전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기아차의 반란에 있어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아버지가 받았던 수업코스 그대로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3녀1남중 막내이자 외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은 1994년 일본 이토추 상사 뉴욕지사와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과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1999년 현대자동차 구매실장으로 입사해 2003년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사장, 2005년 기아차 사장 등 경영수업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정 부회장이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자재부문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재계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이 과거 정몽구 회장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던 코스를 따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부품조달과 자재관리?협력업체 관리 등을 담당하는 자재부문은 자동차 회사의 가장 기초적인 분야로, 부품과 원자재 분야에서 경영수업을 하는 것은 현대가문의 오랜 전통이기 때문이다.현대가의 후계자 교육은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강조한다. 고 정주영 창업주가 생전에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으로 매일 새벽 5시면 자녀들을 불러 모아 함께 식사를 하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는 가르침을 전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청운동 자택에는 ‘一勤小说天下無難事’(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움이 없는 법이다)라는 족자가 걸려있을 정도로 근면성실은 현대가 후계교육의 첫 번째로 꼽혀왔다.현대기아차그룹을 이끌어갈 후계자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게도 현대가의 후계교육이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매일 6시 30분이면 출근해 이르면 7시 30분에 임원회의를 한다는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