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쇼크, 한국 경제 뒤흔든다

엔화 약세로 한국 경제성장률 2%대 추락할 수 있어
이주열 "수출 부진 경기회복 가장 큰 변수"

2016-05-05     박동준 기자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최근 들어 엔화 약세가 가속화하면서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원·엔 환율이 900원대가 깨지면서 수출은 물론이고 내수에도 악영향을 미쳐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기존 3%대 초중반에서 2%대로 낮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전문가들은 이같은 엔저 현상이 최소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측해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현재의 엔화 약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취임 이후인 2013년부터 촉발됐다. ‘아베노믹스’로 통칭되는 일본의 재정·통화 정책으로 엔저 현상은 가속화됐다.특히 지난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발생한 네 차례 엔저 현상 중 현재가 가장 빠르게 엔화 대비 원화가 절상되고 있다. 엔화 대비 원화가치 상승률을 보면 지난 1995~1997년은 30%, 2004~2007년은 47%였지만 2012년 6월 초부터 이달까지 2년 11개월 동안은 68%나 됐다.속도 뿐만 아니라 기간마저 장기화될 조짐이다. 지난 세 차례 엔저 현상은 2~3년을 기점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이번 엔화 약세는 앞으로 최소 2년 이상은 지속될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여기에 수출과 수입이 줄어드는 불황형 무역수지 흑자가 이어져 원화 강세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점도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일본 중앙은행이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할 때까지 양적 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만큼 2017년까지는 현재의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 나갈 것”이라며 “현 추세대로라면 내년에 원·엔 환율 800원대를 지키는 것도 불안해 보인다. 특히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 등을 감안해 엔저 현상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엔화 약세는 수출에 직격타를 날리고 있다.올해 들어 전년동월 대비 수출액이 4월까지 넉 달 연속 감소했으며 감소폭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수출액은 462억18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8.1% 감소했다. 이는 아베 신조 총리 출범 이후 엔화 약세 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2013년 2월(-8.6%) 이후 최대 낙폭이다.주요 신흥국 중 한국의 화폐가치가 유일하게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엔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양국 간 실질실효환율 격차가 2010년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국제결제은행(BIS)과 대신증권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113.46인데 반해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은 70.57로 나타났다.실질실효환율은 명목환율을 상대국과의 교역 비중으로 가중평균해서 물가 변동을 반영해 산출하는 환율로, 이 수치가 100을 넘으면 그만큼 통화가치가 고평가됐다는 의미다.원화 강세에 엔화 약세가 맞물리면서 주요국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수출액이 감소하고 있다.지난달 대(對) 일본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2.6% 줄었다. 1분기 일본으로의 수출액은 63억9300만 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22.0% 급감했다. 유럽(-21.1%)과 중국(-1.5%)향 수출액도 줄어들고 있다.엔저 현상은 최근 수출 뿐만 아니라 내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최근 요우커의 한국 방문 급증으로 활력을 되찾던 유통업계가 직접적으로 엔화 약세 반사 피해를 보고 있다.한국관공공사에 따르면 노동절 연휴 동안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전년 대비 증가세는 2013년 37%, 지난해 65.3%에 달했지만 올해는 20.6%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엔화 약세로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연속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서 한국을 앞서기 시작했다.실제로 유통업계에서 중국인 매출은 확연하게 둔화되고 있다. 중국의 노동절 연휴 기간인 이달 1일부터 지난 3일까지 롯데쇼핑의 중국인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57.5% 증가했다. 2013년과 지난해 각각 135%, 118% 매년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에 비하면 성장세가 반토막 난 것이다.일각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엔화 약세 대응책을 주문하고 있다.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통화 정책을 동원해서라도 엔저 현상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통화당국의 분위기 변화도 감지된다. 그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은 금리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란 입장을 줄곧 내세워 왔다.하지만 이 총재는 올해 들어 수출액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자 경기 회복의 변수로 부진에 빠진 수출을 꼽으면서 상황에 따라 하반기 미국 금리 인하와 별개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이 총재는 지난 3일(현지시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방문한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지고 “엔화와 유로화에 견준 환율 절상(원화가치 상승)도 수출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본다”며 “금리를 내리면 환율경로(금리인하→환율절하→수출증가)를 통한 효과는 물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