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보이’ 섹스잡지야, 교양잡지야?
하루키, 아서 클라크 등 문학계 거장들 글 게재
2006-01-18 홍세기 기자
월간 플레이보이 잡지는 1953년 미국 창간호를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일본을 포함해 현재 20여 개국에서 발간되고 있다. 이는 플레이보이지가 단순히 야한 사진만 싣는 도색잡지에 머물지 않고 나름의 고급화·차별화 전략을 구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플레이보이’라는 잡지를 직접 접하기 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범하는 오해는 우선 이 잡지는 온통 매혹적인 몸매의 반라 또는 전라의 미녀들의 사진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것. 설혹 기사가 있다고 해도 플레이메이트나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가벼운 가십기사 정도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편견들로 잡지의 질 자체는 논외가 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잡지를 ‘읽어 본’ 독자들은 플레이보이가 단순히 누드사진만으로 도배할 거라는 선입견은 말 그대로 선입견일 뿐이라고 못 박는다. 시각장애자들이 즐겨 읽는 점자 플레이보이 지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청년사업가 휴 헤프너의 야망과 시련
휴 헤프너가 단돈 600달러로 세상에 없는 ‘화끈한’ 남성잡지를 만들겠노라 큰소리쳤을 때, 그는 그저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뿐이었다. 그가 좀 더 직설적인 화법의 여체를 묘사한 책으로 장사를 하겠다며 발버둥치고 있을 때, 수많은 출판업자들은 대부분 그의 제안에 냉담한 반응들이었으니… 그러나 헤프너라는 사람은 그렇게 쉽사리 굽힐 인간형은 아니었고, 그가 가진 상상력 또한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었기에 강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50여년을 살아남았다.
세기를 막론하고 인간의 원초적 관심이 성(性)에 쏠려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를 적절히 응용할 줄 알았던 휴 헤프너는 일찍이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저급하다 지탄 받았음직한 컨텐츠를 멋드러지게 포장하는 데 성공.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터트린 최초의 청년 벤처사업가로서 평가 받을만했다.
사람들은 그가 인도하는 관음증의 세계가 본래의 상업주의를 초월한 어떤 예술적 경지에까지 이르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플레이보이 지의 모델이 되기를 동경했고, 남성들은 그 아름다운 여인들의 나신을 그리스 여신인 것처럼 숭배해마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가치판단을 이분법적으로 편가르기 좋아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일개 도색잡지의 창업자일 뿐이라며 헤프너에 대한 지탄이 끊이질 않았고, 급기야는 1963년 외설물 관련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는 상황에 놓인다.
영민한 플레이보이, 문학과의 교우
위기에서 그를 구출한 건 “플레이보이는 단순한 섹스 잡지가 아니다”라는 변론. 이후 매혹적인 육체만을 탐닉하던 플레이보이는 스스로 변모를 꾀한다. 예인즉 피델 카스트로 쿠바국가평의회의장, 인권 운동가 말콤 엑스, 가수 존 레넌 등을 인터뷰하고 빼어난 단편소설과 시사칼럼 등의 구색을 갖추며 오락과 지성의 만남을 주선하게 된 것.
플레이보이 지면을 빌어 주옥같은 글을 실은 노벨상 작가들부터 세계 최고의 내노라하는 명사들이 플레이보이를 곧추세우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나는 간음을 했다”고 고백한 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의 일화가 특히 유명하다.
플레이보이의 고급화전략은 큰 파문을 일으킨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절정을 이룬다. 1976년 대통령 선거 유세기간 지미 카터는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욕정을 품은 시선으로 여자들을 지켜봤다.
마음속으로 여러 번 간음했다. 하느님은 이를 용서하실 것이다”라고 말해 선거기간 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플레이보이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문제들과 시대적으로 가장 첨예하고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루며 당대 지식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수준 높은 기사들이 게재되자, ‘나는 (사진이 아니라) 기사를 읽기 위해 플레이보이 지를 본다’는 유머가 나돌아 ‘플레이보이’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반증했다.
플레이보이는 천박과 고급을 오가는 잡지로 평가되며, 야한 사진 사이사이에 고급 칼럼과 소설을 싣는 편집기법을 펼침으로써 잡지를 구매하는 남성에게 심리적인 정당함을 주는 전략을 구사했다. 마르케스, 보르헤스, 하루키, 필립 K딕, 아서 클라크 등 문학계의 거장들이 플레이보이에 글을 게재하며 ‘미국의 아이콘’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처럼 당대 최고 명사들도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던 플레이보이가 국내에서 최초로 행사를 주최한다. 행사 주관사인 스파이스 TV 측은 “이번 행사를 개최해 한국을 대표하는 플레이보이 모델을 직접 뽑는 과정을 통해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줌과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계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발되는 모델은 오는 3월 미국 LA의 플레이보이맨션에 입성해 쟁쟁한 외국 모델들과 함께 월드컵 화보를 촬영할 수 있는 행운의 티켓을 얻게 된다. 이를 위해 스파이스TV는 1월 20일까지 참가자 신청을 받은 후 3일간의 합숙대회를 거쳐 오는 2월 10일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최종 선발대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2006 한국 플레이보이 모델 선발대회 참가 신청은 행사 공식 웹사이트(www.spicetv.co.kr)를 통한 온라인접수와 오프라인 접수를 통해 오는 1월 20일까지 진행되며, 1월 26일 1차 합격자 발표를 통해 25명의 본선 대회 참가자를 선발하게 된다.
hong@sisaseoul.com
<심층취재, 실시간뉴스 매일일보 / www/sisaseoul.com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