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대 소송 앞둔 한국정부-론스타, 쟁점은?

론스타, 금융위기 당시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 문제 삼아

2016-05-14     배나은 기자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소송가액이 6억7900만 달러(5조1000억원)에 이르는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1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시된다.이번 소송전은 한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벌이는 사실상 첫 ISD인데다가,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걸려 있어 그 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세계은행 산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이날 오전 미국 워싱턴D.C. 세계은행 본부 내 ICSID에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관계자 등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1차 심리를 개최한다.ISD(Investor-State Dispute)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가의 법령이나 정책 등에 따라 피해를 봤을 때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우리 정부가 ICSID에 제소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의 로비의혹을 시작으로 주가조작 및 고배당 논란을 거쳐 외환은행을 팔고 나가면서까지 먹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그런데 이후 외환은행 매각과정에서 한국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 등으로 손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송사를 건 것이다.이 송사는 한국 정부가 당한 사실상의 첫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만에 하나 패소하게 될 경우 물어줘야 할 천문학적인 금액도 큰 부담이지만 유사 소송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기 때문이다.론스타가 세계은행 산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중재를 신청한 것은 2012년 11월 21일이다.ICSID 자료에는 신청인(원고)은 LSF-KEB홀딩스, 스타홀딩스 등 8곳으로 나와 있다. 법인 근거지는 룩셈부르크가 하나, 나머지는 벨기에다.사건번호는 ‘ARB/12/37’. 2012년에 제기된 37번째 중재사건을 뜻한다.론스타가 내세운 신청 이유는 우리 정부 탓에 외환은행 매각이 늦어져 손해를 봤고, 부당한 세금을 물었다는 것이다. 청구금액은 당초 43억 달러였다가 환율 변동 등을 이유로 46억7900만 달러로 증액된 것으로 알려졌다.15일부터 열흘간 미국 워싱턴 ICSID에서 열리는 이번 심리는 첫 법정 맞대면이다. 2차 심리는 6월29일부터 열흘간 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최우선 쟁점은 소송 성립 여부를 다투는 관할권 문제다.이는 론스타가 이번 소송의 근거로 내세운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협정(BIT)’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문제다.론스타는 벨기에에 만든 자회사들(원고)을 통해 외환은행, 강남 스타타워 빌딩, 극동건설 등에 투자했다.론스타는 이 때문에 이들 자회사가 투자협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투자협정에는 페이퍼컴퍼니를 배제한다는 명시조항이 없다는 점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반면에 우리 정부는 자회사들이 실체가 없으므로 투자협정으로 보호할 대상이라 아니라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이 쟁점은 론스타에 대한 과세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론스타가 스타타워와 외환은행 등에 대해 투자했다가 매각 차익을 올린 데 대해 과세한 것도 투자협정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2004년 말 론스타가 스타타워빌딩을 팔아 수천억원의 양도차익을 올린 데 대해 세금을 물렸을 때도 벨기에 법인인 스타홀딩스가 정상적인 사업활동 없이 조세회피 목적으로 만든 ‘도관회사(Conduit Company)’로 봤다.또 하나의 쟁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 문제다. 해당 청구금액은 세금 관련 부분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사들인 뒤 2006년부터 되팔기 위해 국민은행, HSBC와 차례로 매각협상을 벌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2010년 11월 계약을 거쳐 2012년에야 보유지분 51.02%를 3조9157억원에 하나금융지주에 넘겼다.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익을 봤지만 론스타는 2007년 9월 HSBC에 5조9376억원을 받고 외환은행 지분을 팔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더 큰 이익을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한국 정부에 묻고 나선 것이다.당시 HSBC의 지분 인수 승인신청에 대한 판단을 한국 정부가 미룬 탓에 2008년 9월 HSBC가 인수를 포기했고, 때마침 세계 금융위기가 터져 하나금융에 2조원가량 손해 보고 팔게 됐다는 것이 론스타 주장의 뼈대다.사실 HSBC가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한 것은 당시 리먼 브라더스 파산 등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이 컸다.그러나 우리 정부는 당시 절차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배임 사건과 외환은행-카드 합병 관련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섣불리 승인해 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만큼 주권국가의 정부로서 당연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는 얘기인 셈이다.일각에서는 론스타가 협상안을 제시했다는 관측도 제시되고 있다.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지난해 9월쯤 론스타가 소송가액보다 낮은 두 가지 협상안을 비공개로 제안했다고 한다”고 했다.이번 사건에 대응하는 정부 태도에 대한 뒷말도 나오고 있다. 심리 일정은 물론 정부 대표단의 출국일정까지도 함구하는 등 비공개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어서다.이에 일각에서는 나중에 재판부의 결정 내용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당사자 간 합의에 따른 것이고 아울러 불필요한 논란으로 소송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조치로 보인다.그러나 수조원의 세금을 외국 자본에 빼앗길 수 있는 소송에서 적절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