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진작 구조개혁 ②] 가계부채 ‘폭탄 돌리기’...부동산 활성화 정책의 딜레마
“내수 진작 효과 커” vs. “경제 붕괴 뇌관으로 작용할 것”
2015-06-04 배나은 기자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가계부채가 가계의 처분가능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내수 진작을 위해 시행해온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이 딜레마에 빠졌다.한국은행의 ‘2015년 1분기 가계신용’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개념인 가계신용(가계부채) 잔액은 1099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 말 대비 11조6000억원, 지난해 1분기 말 대비 74조4000억원 증가한 수치다.이 같은 가계부채의 급증은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주도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전체 가계부채 중 절반에 달하는 470조원이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생겼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농협·기업 등 국내 7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월 한 달 동안 6조원 이상 늘어났다.주택담보대출은 특히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완화조치 이후 급증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013년 분기 평균 3조5000억원에서 LTV, DTI 규제 완화 이후 지난해 3분기 13조1000억원, 4분기 15조4000억원, 올 1분기 9조3000억원을 기록했다.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LTV와 DTI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1년 더 연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있다. 내수시장 활성화의 핵심 열쇠로 꼽은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다.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올 초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도 “소비심리를 살려내고 내수를 개선하기 위해 부동산시장 회복이 관건”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LTV와 DTI 규제 완화를 주도해 온 최경환 경제부총리 역시 부동산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 의지를 꾸준히 피력하고 있다.정부가 이 같은 논리를 펼치는 이유는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가계금융조사결과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가계자산 중 부동산자산비중은 72.3%에 달한다. 부동산자산이 아닌 금융자산 비중이 70.7%에 달하는 미국이나 일본(60.1%)과는 정 반대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하락할 경우 은퇴자산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그러나 부동산 활성화를 통해 내수를 살리는 전략의 위험성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 수단이 아닌 단기적인 수단에 불과하고, 무엇보다 이후의 대출상환, 이자지급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정부의 부동산 ‘올인’ 정책이 사실상 내수 활성화를 통한 소비 진작 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역시 나오고 있다.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주택시장 대출 규제 완화로 인한 가계부채 증가, 임금상승률 정체 지속 등을 이유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8%에서 3.0%로 하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세 등으로 한국의 성장 모멘텀이 떨어졌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경제 성장과 내수 진작을 위해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 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가계부채가 다시 가계와 경제를 짓누르는 형국이다.문제는 미국이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언제까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자본 유출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한국 역시 금리를 따라 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전히 가계부채 총량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가계의 채무 부담이 결국 심각한 경제 붕괴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저소득층의 부채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가계부채의 핵심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통계청의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부채를 보유한 1분위 계층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524%로 평균(208%)을 크게 웃돌았다. 소득에 비해 빚이 지나치게 많다는 의미다.박창균 중앙대 경영대학 교수는 “가계 부채가 위험한 상황”이라며 “경기 불안이 계속되고 저소득층이 빚을 못 갚게 돼 무너지는 상황과 주택시장에 충격이 오면서 위기가 은행으로 전이돼 시스템이 붕괴되는 상황이 모두 우려된다”고 지적했다.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시 “현재 저소득층, 자영업자의 가계부채는 굉장히 위험한 수위에 도달했다”며 “정부가 저소득층, 자영업자 위주로 가계 부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