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성공 시나리오는?

KCC 삼성 백기사로 나서면서 엘리엇에 역공
캐스팅보트 국민연금 선택이 소액주주 행보 가를 듯

2016-06-11     최수진 기자
[매일일보 최수진 기자]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전격 결정하며 사실상 지주회사로의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지만,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주총결의 금지 가처분신청 등 양사의 합병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 합병 향방이 오리무중에 빠졌다.11일 업계에 따르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지난달 26일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결의했다. 양사의 합병비율은 1대 0.35로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이다.특히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우회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현재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지만 16.5%로 합병회사의 최대주주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무리 없이 이뤄질 것 같았던 양사의 합병은 엘리엇의 공격에 주춤한 상황이다.엘리엇은 ‘경영참가 목적’으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수했다. 이어 합병안이 공정하지 않고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며 불법적이라며 삼성물산과 이사진들에 대한 주주총회 결의금지 등 가처분 소송 제기로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네덜란드 연기금, 일부 소액주주 등 합병을 반대하는 의견들도 모아지고 있다.합병은 주주총회 특별 결의 사항으로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고 그 주식수는 전체 발행주식의 3분의 1을 넘어야 한다. 때문에 엘리엇이 20~30%가량의 지분만 확보해도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총 안건 분석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도 “합병안이 삼성물산의 일반주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반대하는 의견서를 국내 자산운용사 8곳에 발송했다.삼성물산 합병이 위태로워지자 KCC가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하며 백기사로 나섰다. 합병 무산을 대비하는 삼성물산과 삼성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KCC의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KCC로 넘어간 삼성물산 자사주 전량(5.76%)은 의결권이 되살아났다. 삼성그룹은 내달 17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삼성그룹 계열사와 이건희 회장(1.37%) 보유 지분 등을 합친 우호 지분 13.99%에서 5.76% 늘어난 19.75%의 지분을 확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KCC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를 통해 양사의 시너지 제고 및 전략적 제휴를 추진할 것”이라고 삼성물산 지분을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삼성물산 역시 “사업 다각화 및 시너지 제고 등 합병 목적을 원활하게 달성하기 위해 자사주를 매각하게 됐다”며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회사 및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규모 유동성 확보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엘리엇은 삼성물산이 KCC에 자사주 매각을 한 것에 대해 “불법적인 시도”라며 삼성물산과 이사진, KCC를 상대로 긴급히 가처분 소송제기에 나섰고, 삼성물산은 “적법하고 정당한 결정”이라며 선을 그었다.삼성과 엘리엇의 기 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성패 여부는 삼성물산 1대 주주인 국민연금에 달려있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9.92%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아직 입장을 밝힐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국민연금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합병비율이 적합하게 산정됐는지 등을 의뢰한 상태다.증권가에서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커 국민연금이 쉽사리 합병 반대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이 외국계 헤지펀드 편을 들기는 쉽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그러나 국민연금이 앞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에도 반대 의사를 내비치며 합병을 무산시킨 전적이 있어 안심하기도 이르다. 다만 당시에는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낮아 주주이익의 훼손이 우려된 상황이었다.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낮아지지 않으면 국민연금이 나서서 합병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했다.삼성물산의 소액주주 지분은 31%가 넘는 가운데 KCC가 삼성물산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소액주주들의 합병 반대 위임 속도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국민연금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소액주주들의 행보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