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들의 통정리포트

‘통’ 했도다!

2011-03-08     황동진 기자

[매일일보=황동진 기자] 재벌총수들은 어떻게 통정할까. 일반인들에 비해 행동반경에 제약이 심한 이들은 언동이 부자유스럽다. 그런데 최근 이런 기존 틀을 깬 총수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몇 가지 붙는다. 대부분이 젊은 총수들이며 이들 역시 ‘사이버’란 한정된 공간에서다. 한때 재벌 총수들 사이에는 인터넷 ‘싸이월드’ 홈페이지나 ‘네이버’‚ ‘다음’ 블로그를 개설해 정을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관리의 부담 때문인지 지금까지 운영하는 총수들은 몇 안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두산 박용만 회장이 ‘트위터’란 신종 사이버 공간을 통해 지인이나 일반인들과 평소 나누지 못했던 얘기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다른 통정의 방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창업 세대 물러나면서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변화
행동반경 제약심한 총수들, 사이버공간서 일반인과 대화

최근 재계 서열 10위의 재벌그룹 총수, 두산 박용만 회장이 트위터란 사이버 공간에서 위트와 재치 있는 말로써 지인이나 일반인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정서상 ‘재벌’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인 경향이 짙기 때문. 우리나라 최상위층 중에서도 1%에 속하는 이들에 대한 상대적 괴리감과 박탈감, 그리고 선망과 시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물론 그동안 우리나라의 재벌가문 혹은 재벌기업이 생성과 지속의 과정에서 온갖 부조리로 점철돼 온 것이 이러한 부정적 고정 관념을 가지게 만든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재벌과 사이버의 궁합

하지만 시대가 급변하면서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변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한 1등 공신은 ‘인터넷’이란 사이버 공간이다. 그리고 재벌그룹 창업 세대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면서 뒤를 이은 젊은 총수들의 변화된 경영 마인드와 행동이 조금씩 이를 바꿨다. 과거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60~90년대에 경영을 했었던 재벌그룹 1~2세대들은 국가경제 부흥과 가문의 번영에만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큰 기여도 했지만, 반면 온갖 부정도 저질렀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도 한 몫 거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기업의 부정과 그릇된 소식은 순식간에 알려져 버리기 때문. 사이버 공간에서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게 되면 해당 기업의 이미지와 신뢰도는 곧바로 추락, 나아가 주가 및 매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때문에 일반 중소기업보다 훨씬 이 정도가 심한 재벌기업들은 어느새 자의반타의반 사회가 인정하는 ‘공인’이 돼 버렸다. 재벌 입장에서는 인터넷의 발달이 기업 발전에 유리한 측면도 많지만, 오히려 해가 되는 측면도 많았다.이를 기업이 아닌 총수란 개인적 입장에서만 국한한다면, 일단 일거수일투족이 알려지면 온갖 구설수에 오르게 되는 터라 늘 몸조심, 입조심을 하게 된다. 총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기업에 유무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재벌 총수들 중에는 지금까지도 ‘은둔형 경영자’가 많다. 괜히 밖으로 나섰다가 덕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지난 2002년 무렵부터 조심씩 ‘개방형 경영자’들이 늘고 있다. 총수의 이미지 홍보 PI(President Identity)가 유행하면서 인터넷 ‘싸이월드’ 홈페이지나, 네이버, 다음 블로그 개설을 통해 닫힌 문을 조심씩 열었다. 

사이버공간서 다시 태어난 총수들

총수들이 개설한 홈페이지나 블로그는 각양각색이다. 저마다 개성이 남다르다. ‘꼼꼼한 스타일’을 반영한 ‘관리형’의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그리고 일반인이나 평사원들과도 허물없이 대화하는 ‘서민형’의 구자홍 LS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또 익살과 해학이 있는 ‘위트형’의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과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 등 저마다 자신만의 개성이 살아있는 홈페이지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잘 관리하여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는 총수들이 있는 반면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기는 했지만, 방치하거나 폐쇄하는 등 불성실하게 관리하는 총수들도 많다. 최태원 SK 회장,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은 홈페이지를 열었다가 세인들의 관심이 빗발치자 곧바로 폐쇄해버렸다.

소위 ‘은둔형 총수’로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나 이재현 CJ 회장 같은 경우는 아예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트위터하는 총수들, "심심하면 놀러오삼"

최근 재계에서는 ‘트위터’ 바람이 불고 있다. 트위터 마니아로 알려진 박용만 두산 회장에 이어 재계 3~4세들이 속속 트위터 문화에 합류하고 있다.

박용만 회장의 팔로워(follower, 방문자)는 1만7000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박 회장 외에도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윤종록 전 KT 부사장, 석종훈 전 다음 대표, 허진호 네오위즈인터넷 대표, 조원규 구글코리아 사장 등이 대표적인 트위터족이다.

최근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정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과 함께 재계를 이끄는 대표적 3세 경영인. 정 부회장이 트위터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팔로워는 빠르게 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재계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글로벌 침체 속에서 총수가 직접 자신의 경영 철학과 방향을 빨리 임직원들에게 전달하고, 반대로 직원들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여과 없이 들으려고 하는 자세가 지금의 불황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트위터란 블로그와 미니홈페이지의 '친구맺기' 기능, 메신저 기능 등을 모아놓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로 미 샌프란시스코 벤처기업 오비어스(Obvious Corp.)가 2006년 3월 개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