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대출 혜택 대기업에 쏠려...중소기업 비중 ‘3.8%’
“기업 규모별 대출 쿼터 설정 필요”
[매일일보 곽호성 기자] 정부가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만든 외화대출 제도의 혜택 대부분이 대기업에 돌아갔다. 이에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활용해 기업들에 68억3000만 달러(약 7조5700억원)의 외화대출을 했다.
이 중 65억7000만 달러(96.2%)를 대기업이 대출해 갔다. 반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대출은 2억6000만 달러(3.8%)였다.
정부가 지난해 5월 외평기금을 활용한 외화대출 제도를 시행한 것은 기업이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만들어 설비투자를 위한 시설재 수입과 해외 건설·플랜트사업 수주에 활용하게 지원하기 위함이다.
외화대출 적용 금리는 연 0.2∼1%다.
외화대출은 시중은행이 외평기금 수탁기관인 수출입은행, 산업은행에서 저리로 받아 기업에 대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은행권 마진이 합쳐지므로 기업들이 적용받는 실제 대출금리는 더 높다. 다만 해외에서 외화를 자체 조달할 때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처음에는 100억 달러가 소진되면 외화대출 제도를 종료하기로 했었으나 엔저(円低) 현상이 심화되자 지난해 7월 한도를 150억 달러로 확대했다.
엔화 약세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기계설비 가격이 저렴해졌으므로 이를 설비투자 확대 기회로 적극 활용하라는 뜻이었다.
외화대출이 대기업에 몰린 이유는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쿼터’가 별도로 설정돼 있지 않고 중소기업들이 대출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시중은행들이 안정적인 대기업 위주로 대출을 해준 것이다.
이에 대해 류환민 국회 기재위 수석전문위원은 2014회계연도 결산 검토보고서에서 “외평기금을 통한 외화대출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과제 중 하나로 선정되는 등 정부 주요 정책의 하나이기 때문에 가급적 효과가 고르게 분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 위원은 “기재부가 외화대출제도를 시행할 때 기업 규모별 대출 쿼터를 설정하거나 이자율을 차등화하는 등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대출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외화대출을 적극 유도하고 있지만 대기업에 비해 시설재 수입 수요가 적은 데다 최근에는 매출 전망이 좋지 않아 시설재 수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올해 1월부터 중소기업의 외화대출에 10∼15bp(1bp=0.01%포인트)의 금리 인센티브를 주며 중소기업 대출과 시설재 수입을 위한 외화대출에 35억 달러의 한도를 별도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외화대출 자금 조달원인 외평기금은 지난해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라 2조원이 넘는 운용 수익을 기록했다. 외평기금의 연간 운용 수익이 흑자로 전환된 것은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2008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의 일이다.
외평기금은 2008년 15조원의 순이익을 냈다가 2009년 -4조7000억원, 2010년 -5조1000억원, 2011년 -3조3000억원, 2012년 -12조3000억원, 2013년 -5조9000억원 등 5년 연속 순손실을 냈다.
지난해 외평채 발행 잔액은 185조원이었다. 이는 전체 국가 채무 503조원의 36.8%를 차지하는 규모다. 1997년 국가 채무의 0.6%였던 외평채 비중은 2004년 25%, 2007년 30%, 2011년 33%로 올라갔다. 지난해 비중은 35.4%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