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노무현 저격수, 현명관 간택?’

삼성물산 전 회장 한나라 행 ‘삼성 노 정권과 등 돌리나?’

2007-02-17     권민경 기자
일각 ‘현명관 한나라 행, 이건희 전략적 판단’ 관측
현명관 ‘이 회장 관련 없어, 개인적 판단일 뿐’ 강조

[매일일보=권민경 기자] <삼성그룹(이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 중 하나였던 현명관(65) 전 삼성물산 회장이 최근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그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 전 회장은 현재 한나라당의 가장 강력한 제주지사 후보.

그런데 일각에서 현 전 회장의 한나라당 입당이 이건희 회장과의 사전교감에 의한 일이라는 관측이 일고 있다.

더욱이 이는 곧 이 회장이 노무현 정권에서 등을 돌리는 신호탄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현 전 회장은 지난달 한나라당 입당식에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이건희 회장과 사전 상의한 바 없다”며 “개인적인 차원에서 결정한 일”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또한 “삼성은 정치와는 언제나 중립이며 정치에 관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해 자신의 한나라당 입당과 삼성과의 연계설을 적극 부인했다.

삼성 역시 “현 전 회장의 정치권 진출은 회사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언론과 재계,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도 현 전 회장의 한나라당 행이 삼성과 무관한, 개인적 선택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한편 현 전 회장은 벌써부터 노 정권을 향해 ‘경제를 말아먹은 갈지(之)자 정권“이라며 신랄한 비판을 시작했다.

과연 현 전 회장의 이런 행보가 일각의 추측처럼 이 회장이 노 정권에 등을 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 이번에 한나라당에 입당........” 기자의 질문이 채 끝나기 전에 삼성 관계자는 “아, 현명관 제주지사 후보요?” 라고 되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말 삼성물산 회장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현 전 회장은 지난해 2월 전경련 상근 부회장에서 물러난 뒤 삼성물산 회장직에 복귀했지만 경영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재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전히 현 전 회장과 삼성과의 관계를 단번에 분리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전 회장은 27년간 삼성에 재직하면서 이 회장의 가신 중 하나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또 이 회장이 이른바 ‘신 경영’ 개혁을 추진했던 지난 93년부터 96년까지 그룹 비서실장을 지내며 이 회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해 왔다.

그런 만큼 현 전 회장에 대한 이 회장의 신임이 높았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

그런 현 전 회장이 재계를 떠나 정치권에 진출하면서 이 회장과의 사전교감설은 당연한 수순처럼 터져 나왔다.

“본인이 정치에 뜻이 있어 그 길로 간 것 뿐인데, 삼성이 관심을 가질 일, 관여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그 분(현 전 회장) 재산이 상당해요. 삼성에서 굳이 정치자금이니 뭐 이런 거 도와주지 않아도 걱정 없다는 말이예요. ” 현 전 회장의 한나라당 입당과 이 회장의 사전교감설에 대한 삼성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전에 보고도 없었고, 이 회장은 알지 못한 일입니다”며 “나중에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후에도 그에 대한 얘기는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현 전 회장 역시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입당과 도지사 출마에 관해) 이 회장에게 직접 알리지는 않았고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에게는 전달했다. 이 회장에게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면서 “그 뒤 이 회장에게서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내가 결정을 내릴 때 이 회장이 어디에 있었나. 그 얘기하러 유럽까지 갈 건 아니다. 지난 9월 이 회장 출국 이후 연락한 적도 만난 적도 없었다” 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 측과 현 전 회장의 이런 설명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론에서는 연일 현 전 회장의 한나라당 행과 삼성의 연관에 대해 갖가지 분석을 쏟아냈다.

재계 일각에서도 “이 회장 측근 중의 측근이었던 현 전 회장의 행보에 삼성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지 않을 수 있었겠나” 는 반응을 보였다.

이 회장과의 사전교감설 진상은

지난해 삼성관련 X파일 사건을 보도했던 MBC 이상호 기자는 최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서 현 전 회장의 한나라당 입당과 관련 “이는 이건희 체제에서 고도로 기획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이어 “이 회장이 가장 아끼는 인물이 정치판에 뛰어드는데 이 회장이 보고받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고 말했다.

또 현 전 회장의 “삼성의 공식 입장과 분리해서 생각해 달라”, “이 회장에게 보고한 적이 없다” 는 말에 대해 “X파일 자체가 인간 이건희 회장의 모습을 아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면서“이 회장은 현 전 회장이 독자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도록 용인하는 인물이 아니다” 고 단언했다.

특히 이 기자는 “이건희 회장은 일개 피라미 검사들에게 준 돈까지 챙기고 돈을 전달받은 정치인들의 반응까지 꼼꼼히 챙긴다”고 X파일에서 나타난 이 회장의 모습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는 “현 전 회장의 한나라당 입당은 이건희 체제에서 고도로 기획된 전략적 판단”이라고 규정한 뒤 “안 그래도 X파일 문제로 현 정부와 거리감을 느껴왔던 이 회장이,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표방했던 참여정부가 최근 양극화 해소를 아젠다로 던지는 등 경제 철학에 있어서도 방향 선회를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면서,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명관, ‘이 회장 방향 선회 신호탄?’

이처럼 현 전 회장의 한나라 입당과 이 회장의 사전교감설이 나오는 가운데 노 정권에 대한 현 전 회장의 연이은 폭탄발언은 ‘설’을 기정사실화 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현 전 회장은 “현 정권은 경제를 말아먹은 갈지(之)자 정권”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하며 벌써부터 노 정권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을 시작했다.

이어 현 전 회장은 “노 대통령은 지난 3년 가까이 참여정부를 이끌면서 파행적 경제 정책으로 경제난국의 원인을 제공했다” 며 비판했다.

또 “노 정권이 부인하고 싶어도 현재 한국 경제는 성장엔진이 수명을 다한 전환기에 있다” 면서 “경제 전쟁의 전사는 기업인데 관련 규제는 과거 패러다임을 갖고 있어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는 만큼 이를 외면하지 말고 획기적으로 바꿔달라는 것이 ‘기업들의 절규’” 라고 덧붙였다.

그런가하면 “기업은 돈 벌기 위해 하는 것인데 노 정권은 자본주의를 무시하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죄인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현 전 회장의 이런 발언 덕(?)에 이 회장과의 사전교감설, 현 정권에 대한 이 회장의 유턴설 등은 계속해서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라고 반문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명관 한나라 행 ‘단순히 코드 맞아?’

사실 현 전 회장은 지난 17대 4.15 총선 때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선정위원을 맡은 바 있다.

현 전 회장은 당시 열린 우리당 비례대표 선정위원을 수락하며 “다음 국회에 기업이나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이 진출하길 바라고, 어느 당이든 ‘어떤 사람이 적당한갗라고 자문을 구하면 기꺼이 재계 의사를 이야기해 줄 용의가 있었다”며 “마침 열린우리당에서 위원직을 제의해 수락했다”고 말했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김진표 부총리 같은 논리와 실무를 겸비한 경제전문가를 후보로 내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이 큰 역할을 한다”며 “이 두 사례만 봐도 우리당이 경제전문가 영입에 어느 정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현 전 회장의 역할에 큰 비중을 뒀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이 같은 태도를 비난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 ‘올인’ 전략이 장관 징발에 이어 이제는 기업인들을 표적으로 하는 선까지 확대되고 있다” 면서 “이는 너무나 노골적인, 기업인들에 대한 회유이자 압박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고 주장했다.

박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기업인들을 이런 식으로 영입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결국 국가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피해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그로부터 2년 후, 5.31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입장이 뒤바꼈다.

열린우리당은 현 전 회장의 한나라당 입당에 아쉬움을 드러냈고, 한나라당은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1월 18일 현 전 회장의 영입식에서 “큰 결단을 한 데 대해 감사한다” 며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에 매우 큰 힘을 얻었다” 고 반겼다.

반면 열린우리당 제주도 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창일 의원은 현 전 회장을 향해 “정치 아마추어인 줄 알았는데 정치 프로라 깜짝 놀랐다”며 은근히 현 전 회장의 정당 선택을 꼬집는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문제의 당사자인 현 전 회장이 말하는 한나라당 입당에 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현 전 회장은 ‘코드’라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들며 “우리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발판이 된 것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사유재산제 등에 충실했기 때문” 이라면서 “내 경제정책 기본방향과 코드가 한나라당과 맞아서 선택했다” 고 말했다.

이어 현 전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지만 지방단체장은 경영인이 돼야 한다”면서 “따라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의 전문경영인들이 정치 분야 등 가장 낙후된 공공분야에 진출해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며 제주도지사 출마 이유도 밝혔다.

그러나 ‘코드가 맞아서’라는 주장은 쉽게 수긍하기에는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언제는 한나라당의 경제정책이나 철학 등이 삼성 출신 현 전 회장과 맞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때문에 굳이 지금에 와서 현 전 회장의 ‘코드’ 운운하는 발언은 먹힐 리 없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와서 삼성은 X파일, 금산법(금융산업구조개선법),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유죄판결 등 갖가지 악재를 겪었다.

나라 안팎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이 회장은 장기간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고, 후계자 이재용 상무 또한 지탄의 대상이 됐다.

뿐만 아니라 처남이었던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은 주미대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물론 삼성의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과 기업 간에 사이가 좋았던 적이 있었느냐” 고 말했지만, 정부가 의도했든 아니든 삼성과 현 정권의 사이는 역대 최악에 가까웠다.

바로 이 점에서 현 전 회장의 ‘한나라당 행’ 이라는 정치적 선택이 삼성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서였다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 인터넷 언론이 칼럼을 통해 게재한 ‘현 전 회장의 한나라 행’ 분석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현 전 회장과 삼성이 지금 시점에서 한나라당으로 방향을 돌린 이유는 ‘승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힘센 자 편에 서는 것이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이라는 얘기.

또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삼성이 하루아침에 현 정권에서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즉 현 전 회장의 한나라당 입당은 ‘미래를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 들기’ 형식 일 수 있다고 이 언론은 보도했다.

이처럼 현 전 회장의 정치적 행보와 삼성의 연관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현 전 회장은 ‘대단한 상상력’이라고 일축해버렸다.

과연 현 전 회장과 이 회장의 사전교감설, 현 정권에 대한 이 회장의 유턴설 등이 지나친 상상력의 결과물인지 지켜보면 알 일이다.

kyoung@sisaseoul.com
<심층취재 실시간 뉴스 매일일보/www.sisaseoul.com/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