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현대판 달동네‘쪽방촌’ 사람들
서울하늘 아래 0.5평속 세상 들여다보니…
2007-02-24 김호준 기자
특히 ‘극 빈민층’이 늘어나면서 70-80년대 달동네로 대변되는 쪽방촌이 양산되고 있다. 서울의 한 쪽방촌. 외부에서 봤을 때는 일반 고시원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부는 어른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복도 사이로 한 평 남짓 좁은 방 수 십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도와 재래식 화장실. 그리고 가난에 찌든 세간 살이 등은 쪽방촌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현재 서울 시내에만 쪽방촌 생활자가 2003년 3천654명, 2004년 3천407명, 그리고 지난 해 3천574명이 쪽방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민층의 최후의 안식처인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매일일보>이 들여다봤다.
서울 영등포2동 쪽방촌. 그곳 골목에 들어섰을 때 방을 찾느냐는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카메라를 어깨에 멘 기자를 목격한 동네 건달들은 당장 골목을 나가라며 기자를 내몰기 시작했다.
설득 끝에 겨우 주인을 따라서 들어간 쪽방은 외관상은 여타의 건물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통로에 들어서자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과 비좁고 어두컴컴한 복도. 성인 한명이 지나다니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마침 화장실을 가던 한 여성을 만나 인터뷰를 시도해 보았다.
“뭐야, 카메라 든 꼴 보니 기자들이 구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최모 양은 “하루나 이틀씩 일세를 내고 생활한다”면서 “유흥가에서 일하는 애들이나 가출한 청소년들은 일세를 살지만 숙박비가 비싸기 때문에 쪽방촌 사람들은 월세로 많이 산다”고 말했다.
최 양은 “요즘은 젊은 여성이나 청소년층 애들도 쪽방을 많이 찾는다”며 “어차피 보증금이 없기 때문에 돈을 모을 때 까지는 이런 쪽방에서 생활하는 게 편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비록 화장실이나 씻는 곳이 불편하지만 잠만 자다 가기에는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며 “하지만 노숙하던 사람들이나 일용직 노동자들과 마주칠 때면 무서워 오래 머물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48살 이모 씨는 13개월 전 노숙 생활을 접고 이곳 쪽방촌에 들어왔다. 이 씨는 “불편한 게 어디 한두 가지 겠느냐”며 “겨울에 따뜻한 물이 안 나와 물 쓰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한 달에 30여 만원을 지원받아 방세로 16만원을 내고 있다.
이 씨에 따르면 쪽방은 보통 일세(7천원-1만5천원 정도)나 월세(15만원-30만원)로 운영되고 있으며 여성보다는 남성의 비율이 높다.
또 연령별로는 장년과 노년층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대부분 단신거주자들이다.
한편, 쪽방관리자(건물주)에 따르면 하루에도 수차례 단체나 기자들이 찾아와 생색용 선물꾸러미를 던져놓고 가거나 이곳 사람들을 취재해 간다.
건물주는 “쪽방촌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물원 원숭이처럼 느껴지는 것이 싫어 외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고 말했다.
빈곤연대의 유의선 사무장은 “쪽방촌 사람들은 일종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어느 누가 자신의 그런 처지를 보여 주고 싶어 하겠는가?
정작 그들에게 대책을 세워주지도 않으면서 인사치례만 하고 가는 모습들이 안 좋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쪽방의 수는 전국적으로 9천여개, 서울지역만 3천여개의 쪽방이 있다.
주로 영등포나 회현, 종로, 남대문, 동자동, 포위동 일대에 밀집되어 있다.
하지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쪽방들이 위치한 서울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쪽방이 모두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쪽방촌 철거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철거된 서울지역 일부 쪽방의 사례에서 보 듯 쪽방촌 사람들은 적용법률에 따라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이주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인당 420만원의 현금보상은 안정적인 주거지를 얻을 만한 수준이 되지 않고, 영구임대주택 입주권이 있어도 서울에서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몇 달에서부터 길게는 몇 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대책이 유명무실하다.
얼마 전 서울시는 영등포2동 쪽방촌을 7월 10일까지 철거하겠다고 공시했다.
2년 이상 거주한 사람에게는 300여 만원의 보상을 해주겠다고는 하지만 쪽방촌 사람 대부분이 떠돌이들이라 이 같은 보상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그나마 영등포 지역은 국유지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보상을 약속한 상태지만 남대문 같은 사유지는 철거를 하더라도 전혀 보상을 받을 수 없다.
현재와 같은 개발 정책 하에서 쪽방촌 사람들은 언젠 철거될지 모르는 불안함속에서 추운겨울을 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빈곤연대의 유의선 사무국장은 “그나마 건교부에서는 이런 빈민 주거층을 위해 10년간 매년 땅을 사들여 5천호씩 5만호의 빈민 주거 지역을 확보하겠다고 나섰다”면서 “하지만 문제는 서울시나 지자체에서는 도시미관상의 문제로 매입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유 사무국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제대로 된 주거대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한다면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거리로 내몰려 또 다시 노숙생활을 하게 된다”면서 “(빈곤연대가) 38개의 연대체로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활동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빈민층의 주거문제를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유사무장은 또 “정부의 1인 가구에 대한 주거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이주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삶의 공간을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의 사례와 시사점
우리나라의 쪽방은 미국의 SRO(Single Room Occupancy), 영국의 B&B와 호스텔, 일본의 도야 등과 유사한 주거형태이다.
선진외국에서는 쪽방이 도심의 마지막 거처로 기능함을 인정하고, 쪽방의 순기능을 살려 최소한의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문헌준 대표는 “선진국들의 사례만 보아도 얼마든지 쪽방을 사회적 순기능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서 “지금부터라도 주거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것을 망각하지 말고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구체적 방향을 제시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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