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전쟁’에 1년간 43개국 통화가치 하락했다

“원화 실효환율 최고 수준 육박...수출 부진 지속우려”

2015-07-19     박동준 기자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세계 각국이 자국의 경기 침체를 막으려고 중앙은행을 내세워 경쟁을 벌인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40여개 나라가 자국 통화가치를 상대적으로 하락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지난 1년간 네 차례나 기준금리를 내렸으나 경쟁 관계를 반영한 실질실효환율 측면에서는 사실상 원화 가치가 상승해 수출 전망이 어두울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19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조사대상 61개국 가운데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실질실효환율이 떨어진 국가는 모두 43개국이었다.

실질실효환율은 세계 61개국(유로존 전체를 개별 국가에 포함)의 물가와 교역 비중을 감안해 각국 통화의 실질적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100보다 높으면 기준연도(2010년)에 비해 그 나라 화폐 가치가 고평가됐고, 100에 비해 낮으면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주요 국가 가운데 러시아(-17.6%), 브라질(-15.9%)의 절하율이 컸다. 양적완화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12.1%), 유로존(-9.2%)도 통화가치가 대폭 떨어졌다.

올해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발표를 출발로 20여개 국가의 중앙은행이 자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책금리를 내리면서 통화전쟁이 벌어졌다.

실질실효환율이 대폭 오른 곳은 연내 금리 인상을 예고한 미국(15.8%)을 비롯,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 달러화에 자국통화를 연동한 국가들과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 중인 중국(14.0%) 등 일부 국가에 국한됐다.

반면 원화의 평균 실질실효환율은 지난달 112.96포인트였다. 1년 전(112.90)보다 오히려 0.1% 올라갔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과 10월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인하한 데 이어 통화전쟁이 본격화한 이후 올해 3월과 6월에도 금리를 내렸으나 환율 경쟁력은 간신히 본전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관계를 고려하면 원화의 환율 경쟁력은 오히려 대단히 악화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세계시장에서 한국과 수출품 경쟁 관계인 국가의 통화 가치가 더 크게 떨어졌을 경우 제3국으로의 수출 경쟁에서 국내 수출기업이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불리해진다.

특히 한국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일본(-12.1%)의 실질실효환율 하락이 두드러진 것도 국내 수출기업을 힘들게 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엔화 대비 원화 실질실효환율은 올 1분기 기준 158.3포인트로 장기 평균치(113.2포인트)와 비교해 39.8% 절상됐다. 현재 역대 제일 높았던 2007년 1분기(159.7포인트)에 육박한 상태다.

LG경제연구원의 배민근 책임연구원과 이지선 선임연구원도 최근 발간한 ‘수출에 대한 원고 압박 이미 위험 순위’ 보고서에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관계를 반영한 원화가치는 최근 들어 BIS 기준의 실질실효환율 지표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합도를 고려한 실질실효환율 지표는 원화 실효환율이 최고 수준이었던 2007년과 유사한 수준으로까지 올라갔다는 설명이다.

이런 환율 상황은 한국의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수출액은 세계 경기회복 지연과 유가 하락, 중국의 산업구조 재편 등의 요인들이 겹치며 지난해 동기에 비해 5.0% 줄어든 2690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이 단기간에 급격히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에 대응할만한 정책수단이 없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수출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외에는 수출 부진을 타개할 해결책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입 감소로 경상수지는 흑자를 지속하다 보니 외국 시각에서는 원화 가치가 고평가됐다고 보지 않는 점이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