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롯데월드 쇼핑몰 중소점주 토사구팽 내막

“IMF도 재개발도 다 버텼는데…”

2011-03-19     윤희은 기자

[매일일보=윤희은 기자] 롯데월드 쇼핑몰에 입점 돼있는 240여개 매장이 강제 폐점당할 위기에 빠졌다. 롯데월드 쇼핑몰 상인들은 지난해 10월 18일 롯데쇼핑으로부터 “12월 31일까지 입대 중인 상점을 명도하라”는 공고문을 받았다. 마감 기한을 약 70일 남겨놓고 발송된 공고문에 상인들은 즉각 항의했고 대부분 퇴점을 거부한 채 장사를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롯데쇼핑은 이러한 항의조차 철저하게 묵과하고 세간에 “리뉴얼 예정”이라는 허울 좋은 구실을 만들어 쇼핑몰 상점들을 하나하나 폐점시키고 있다. 상인들은 “1988년부터 23년을 함께해 온 상점을 불과 70일 남겨놓고 떠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크게 격양된 상태다. <매일일보>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취재해보았다.

롯데, 23년간 쇼핑몰 알토란으로 키운 점주들 권리금도 없이 내쫓아

‘리뉴얼 공사’라는 구실로 기존 매장들을 강제 폐점시키고 있다는 롯데월드 쇼핑몰을 본지 기자가 직접 방문한 것은 지난 3월 16일. 이미 적지 않은 매장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그 탓인지 손님도 많이 줄어있었다.

롯데월드 쇼핑몰 대책위원회 김영자 위원장은 “기존 240여개의 매장 중 80여개는 문을 닫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과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 위해 쇼핑몰 내 식당을 방문했다. 취재를 나왔다고 하자 식당 점주가 반색을 했다.

이 점주 역시 20년 가까이 롯데월드 쇼핑몰에서 식당을 운영한 ‘롯데월드 토박이’였다. 이 매장이 자기 자리라는 생각으로 식당 앞 통로의 타일까지 직접 까는 등 지극정성을 들여왔다는 점주는 롯데 측의 명도 명령에 대해 “그저 허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롯데, 재건축 완료돼 주변 상권 좋아지자 ‘직영매장 설립’ 욕심
상인들 “롯데월드 쇼핑몰 강제폐장은 ‘제2의 용산사태’ 낳을 것”


롯데월드 쇼핑몰, 쉽게 못 나가는 이유

김 위원장이 운영 중인 가구점에서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근처에서 영업하는 몇몇 점주들이 하나 둘씩 방문을 해왔다. 전체적으로 쇼핑몰에 손님이 많이 없어 매장을 비우는 일도 쉽게 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이내 김 위원장을 필두로 쇼핑몰 상인들 간의 작은 간담회가 열렸다. 97년부터 이곳에서 가구점을 운영해온 김 위원장과 도자기 대리점을 운영하는 A씨, 건강용품 상점을 운영하는 B씨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C씨가 참석자였다. A씨와 B씨, C씨는 근소한 차이는 있었으나 전부 다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영업을 해온 점주들이었다.

김 위원장은 “10월 18일 롯데로부터 명도 요청이 들어왔을 때 대형업체 대리점이 가장 먼저 나갔고, 그 다음은 쇼핑몰에 입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업주들 위주로 매장을 나갔다”고 말했다. 대형업체 대리점은 어차피 ‘리뉴얼’ 후 다시 들어올 매장이기 때문이며, 쇼핑몰에 입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매장들은 지금 나가도 별 손해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김 위원장은 설명했다.

문제는 이곳에서 영업을 시작한 지 오래된 업주들이다. 아직 매장을 유지하고 있는 업주들 가운데는 처음 롯데월드 쇼핑몰이 개장한 1988년부터 계속해서 영업을 해온 이들이 많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많은 업주들이 매장을 포기하고 나가는 순간에도 끈질기게 매장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다.

그런 업주들에게 이제 와서 나가라고 통보하는 롯데 측에 대해 이들은 하나같이 ‘서운하고 허탈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들이 나가지 못하는 더욱 현실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88년부터 이곳에서 영업해온 C씨는 “23년 전의 보증금으로는 이곳을 나가서 그 어떤 곳에서도 가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업주들은 하나같이 롯데 측에서 대체매장이라도 마련해주고 나가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지는 못할망정 명도 명령조차 충분한 기한을 주지 않고 내리는 롯데쇼핑에 대해 업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롯데 측은 “나가지 못하겠다”며 버티는 업주들에게 그 어떤 공식적인 대응조차 취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을 포함한 롯데월드 쇼핑몰 대책위원회가 롯데쇼핑 측에 제시한 요구안은 총 세 가지. ‘대체매장안’과 ‘리뉴얼 뒤의 우선입주권 제시안’, 그리고 ‘권리금’이다. 앞의 두 가지 요구안은 묵살되었으나 세 번째 제시안에 대해서 롯데 측은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후 롯데쇼핑은 ‘이미 매장을 명도한 80여명의 점주에게 권리금을 줬다’고 주장하며 남은 점주들을 설득해왔으나 김 위원장을 포함한 대책위원회가 직접 확인한 결과 실제 권리금을 받은 점주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것은 제 2의 용산사태가 다름없다”며 “롯데 측에서는 이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매스컴에 꼬투리를 잡히는 것이 두려워 물밑으로 업주들을 협박하는 유치한 수를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업주들은 현재 매장들이 문을 닫고 있는 이유가 ‘리뉴얼’이라고 공지하고 있는 롯데쇼핑에 대해 “리뉴얼은 허울 좋은 구실이고, 결국에는 매장을 갈아엎겠다는 소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쇼핑은 언론 등에 대외적으로 시설 낙후로 인한 보수공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업주들에 의하면 아직까지 진행된 보수공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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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 와서 폐점 요구하나

롯데쇼핑이 이 시점에 와서야 업주들에게 명도를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위원장은 “업주들이 외환위기 이후 롯데월드 쇼핑몰에서 장사가 잘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 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롯데월드 쇼핑몰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하면서 한 동안 침체기에 빠졌다. 당시 많은 업주들이 떠났고, 이 때문에 롯데월드 측에서도 업주들을 붙잡아놓기 위해 계약상으로 갖은 수를 쓰던 시기였다.

그러던 무렵 롯데월드 근방의 아파트 단지들이 대대적인 재건축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이 때문에 업주들 중에는 재건축이 끝나면 상권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롯데월드에 남아있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재건축은 매우 긴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별로 차근차근 진행해나가는 바람에 거의 10년에 걸쳐서 재건축이 완료되었다. 재건축이 끝난 뒤 새로운 주민들이 유입됐고, 그러면서 상권이 호전되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김 위원장은 “쇼핑몰 업주들이 이제 막 기다림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을 무렵 롯데쇼핑 측에서 명도를 요구하며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롯데쇼핑이 기존의 쇼핑몰 자리에 대형업체 위주의 직영 매장을 설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입점해있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즈’가 유지되고 해외 유명 의류브랜드인 ‘자라(ZARA)’가 입점을 하는 등 그런 류의 대규모 매장이 입점하게 될 것이라는 게 김 위원장의 관측이다.

A씨는 롯데 측의 현 운영방침에 대해 “최소한 기존 상인들에게 선택권이라도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무조건적으로 나가라고만 하는 롯데 측의 처사는 억지스럽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롯데쇼핑 홍보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 분들(기존 점주들)은 더 이상 거기에서 장사를 하면 안 되는 분들”이라며 “롯데 측의 전략상 그 공간이 필요해서 명도를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단의 기준과 문제의 ‘롯데 측 전략’에 대해 물어보자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는 말씀드릴 수 없는 부분”이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현 사태에 대해 관계자는 “솔직히 계약 만료를 이유로 집 주인(롯데)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는 것이 상식아니냐”며 “임대하고 있는 상인들 사정을 전부 다 롯데 측이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으로서 영세 상인들과의 상생적인 측면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 관계자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다 책임질 수는 없는 법”이라며 “롯데 측에도 사정이 있는 관계로 무조건적인 보호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계약만료를 70여일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점주들에게 명도 요청을 한 것에 대해 이 관계자는 “계약 만료 1달 이전에만 공지하면 상관없다”며 “계약서에도 나와 있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롯데쇼핑몰 대책위원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배진호 변호사는 “아직 소송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만 임차인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명도 요구를 한 것은 충분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점주들에 의하면 롯데는 약 2007년도 경부터 매해 재계약 시기마다 점주들에게 각서에 서명을 받았으며, 그것은 “롯데가 계약해지를 통보할 시 점주들은 항의 없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점주들이 서명할 수 없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롯데 직원들은 “서명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할 수 없다”고 협박했다고 점주들은 전했다. 그러나 롯데월드 쇼핑몰 대책위원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의뢰한 결과 이 각서는 유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주들과 롯데의 ‘전쟁’은 이제 막 시작단계다. 김 위원장은 “조만간 대규모 집회를 갖고, 보다 확실한 롯데의 입장을 들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3개월간 쇼핑몰 점주들이 끊임없이 롯데에 항의를 했음에도 불구, 롯데 측에서 무대응에 가까운 방식으로 점주들을 외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김 위원장은 덧붙였다.

‘롯데월드 쇼핑몰 리뉴얼’이라는 롯데의 화려한 계획 이면에 숨어있는 점주들의 아픔은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아직까지도 “고려 중”이라는 입장만 관철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