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현대중, 하도급 노동자의 사용자 맞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원청업체 책임 인정한 첫 번째 대법원 판결

2010-03-31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김경탁 기자] 사내하도급관계에서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3월 25일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업체의 폐업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내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하더라도 원청업체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의 업무를 지휘·감독하고 노동조건을 결정했다면 사실상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대법원 판결로, 그동안 노동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활용해온 기업 관행에 제동을 걸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내하도급을 통한 기업들의 간접고용은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간접고용은 그동안 조선, 전자, 자동차 등 제조업에서 도급․사내하청 형태로 주로 활용되어 왔으나,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에는 금융, 판매 등 서비스업에서도 용역․외주 형태로 크게 증가했다.

원청기업들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채용 및 인사․노무관리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면서 인건비를 절감하는 수단으로 간접고용을 악용해왔고, 이로 인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고통 받아 왔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도 불구하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례에서처럼, 많은 원청업체들이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방해하기 위해 사내하청업체의 폐업을 통해 조합원을 해고하거나, 하청업체를 변경하면서 조합원들을 재고용하지 않는 수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고 하더라도 원청업체와 사내하청업체는 교섭 책임과 권한을 서로에게 전가하며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를 거부해왔고, 이런 현실은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면서 이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켜 왔다.

이번 판결에 대해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30일 “근로계약의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왔던 원청업체들의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하청업체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하면서도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회피하려는 기업들의 부도덕한 관행을 근절하고, 하청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간접 고용은 고용의 질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원․하청 노사관계를 둘러싼 심각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그에 따라 법원에서도 원청사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간접고용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비판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원청업체들도 간접고용을 통해 노동력 사용의 이득만을 누리고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또한 “정부는 법원의 판결 취지대로 간접고용에 대한 현장감독을 강화하고, 권련법 개정을 통해 원청사의 사용자 책임을 명문화함으로써 무분별한 간접고용 확산을 방지하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