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김경탁 기자] “피보험자의 서명이나 서면동의가 없는 생명보험계약은 나중에 계약을 인정하는 절차를 밟았더라도 무효”라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지난 2월 다시 나왔다. AIA생명이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계약자의 요청에 ‘계약은 원천무효’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승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보험소비자연맹(보소연)은 최근 “보험사의 부실모집으로 인한 잘못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말고, 보유계약 중 이러한 자필미서명 전계약을 무효화하여 납입보험료를 돌려주던가 아니면, 무조건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지급보장을 약속해야 할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보험업계 전체 보유계약 중 자필미서명분 10~20% 추정
보소연, ‘자필미서명 무효계약 보험료반환 단체소송’ 경고
현행 상법 제731조(타인의 생명의 보험) ①항은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보험계약 체결시에 그 타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어 피보험자의 동의가 없는 경우 계약을 무효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는 자필 미서명 계약임을 알고도 계약을 성립시켜 놓고,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계약무효라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소비자가 무효라고 보험료를 돌려달라면 보장해준다고 둘러대며 반환을 거부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결국 보험 회사들에게는 이득만, 보험 소비자들에게는 피해 사례만 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이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보험계약이 피보험자의 자필서명 누락일 경우, 상법상 원인무효”라는 확정판결을 처음 내린 것은 1996년 11월이다. 이후 보험감독원(현 금감원)은 “서면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보험금지급을 거절하여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되지 않도록”할 것을 지시했고, 보험사 사장단은 그해 12월 6일 “자필서명이 없더라도 계약상 책임을 진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결의문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던 보험회사들이 최근에는 태도를 돌변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고, 이번 AIA생명의 대법원 판결처럼 실정법상 규정이 14년 전 발표된 보험사 사장단의 결의문보다 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다.
[사례1]
보험계약자 전아무개(여)씨는 동양생명에 남편을 피보험자로 하여 7년 전인 2003년에 가입했다. 가입당시 남편 건강진단 후 설계사가 마감시상(금반지)이 걸렸다고 피보험자인 남편이 타지역 상가에 있을 때 전화로 설계사가 서명하고 가입시켰다.(설계사 확인서 받음)
이후 남편이 2008년 9월 5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전씨는 보험금(5억4천만원)을 청구했으나, 동양생명은 피보험자가 자필서명을 하지 않았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통보하여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자 법원에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동양생명과 전씨 사이에 진행된 재판은 1심에서 50%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으나 보험사는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하여 2심 진행 중이다.
[사례2]
홍아무개씨는 2007년 11월 현대해상에 어머니를 피보험자로 한 건강보험을 가입했다.
현대해상은 가입 후 아무 문제없이 2008년에 입원비도 지급했으면서 막상 2009년 피보험자가 갑자기 사망하자, 어머니가 자필서명을 하지 않았다며 사망보험금(4천만원) 지급을 거절했다.
계약자가 이의를 제기하자 현대해상은 보험금의 85%만 지급하겠다며 합의 종용하여 홍씨는 합의하고 분쟁을 끝냈다.
타인을 위한 보험의 경우 피보험자의 서면동의가 필수적이므로 반드시 자필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은 보험모집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모집인이 아무 문제없다며 대필 또는 피보험자 가족이 서명하게 하거나, 모집자의 계약이나 가족에 의한 계약의 경우 실적마감시간에 임박해 실적이 없어서 급히 계약서를 작성함에 따라 자필서명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현재 보험업계 보유계약 중 자필미서명 계약은 10~20%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보소연은 “피보험자의 자필서명이 없거나 대필된 계약은 보장을 받을 수 없는, 보험사만 이익을 보는 무효계약”이라며, “보험사들은 계약자에게 납입보험료에 약관대출이자를 더하여 보험료를 반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소연은 또한 “자필서명 없는 계약을 체결한 보험소비자들은 보험금 수령이 불확실한 무효계약을 유지하기보다는 보험사에 납입한 보험료 전부를 반환 받는 것이 후일의 보험금 지급거부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소연은 “이러한 판결이 있을 때마다 보험사들은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고, 불안하면 추가로 서명하라고 불안한 소비자들을 달래고 있지만, 법원에서는 ‘추가 서명’ 역시 무효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기 때문에 막상 보험사고가 발생한 건에 대해서는 소송을 통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소연은 “보험사가 여전히 자필미서명 계약을 양산하고, 무효임을 알면서도 묵인하여 보험료를 받아 챙기다, 막상 보험금은 계약이 무효임을 들어 거부하는 악질의 이중적 행태는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강조했다. 보소연은 “금감원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수수방관하지 말고 명확한 입장을 표해야 할 것”이라며, “만일 보험업계가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자필미서명 계약자를 모아 ‘자필미서명 무효계약 보험료반환 단체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