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돈풀기’…글로벌 환율전쟁 격화 조짐

세계 경제 불황에 신흥국 중심으로 기준금리 속속 내려

2015-10-07     정두리 기자
[매일일보 정두리 기자] 세계 경제가 저성장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자 각국의 환율전쟁이 격화되고 있다.한동안 잠잠했던 기준금리 인하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최근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출과 내수 부진을 겪는 한국에서도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전에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신흥국들이 기준금리를 속속 내리고 있다.인도 중앙은행(RBI)은 지난달 29일 기준금리를 6.75%로 0.5%포인트 인하했다. 성장 둔화를 극복하기 위해 인도가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인하 폭은 예상(0.25%포인트 인하)보다 컸다.대만도 지난달 24일 기준금리를 1.875%에서 1.750%로 내렸다. 대만 기준금리에 변화가 생긴 것은 4년여만이다. 대만 기준금리는 2011년 6월 1.875%로 0.125%포인트 오른 이후 4년3개월간 변동이 없었다.파키스탄 중앙은행(SBP)은 지난달 12일 기준금리를 42년 만에 최저 수준인 6%로 0.5%포인트 낮췄다. 우크라이나도 지난달 말 기준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했다.신흥국은 아니지만 노르웨이 역시 기준금리를 1.00%에서 0.75%로 내렸다.신흥국을 중심으로 금리 인하가 잇따르는 것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세계 경제성장률의 전망치는 올해 들어 꾸준히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3.3%)와 내년(3.8%) 세계 경제 성장률의 전망치가 현실적이지 않다며 이달 중 하향 조정할 계획이다.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달 아시아 신흥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7월 전망치보다 0.3% 포인트 낮춘 5.8%로 제시했다. 이는 2001년의 성장률(4.9%) 이후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양적완화로 회복세를 보인 유럽 경제는 최근 들어 오히려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배기가스 눈속임’의 폴크스바겐 사태가 확산하면서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유로 지역의 인플레이션은 9월에 연율로 마이너스 0.1%를 기록했다. 역내 인플레가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지난 3월 이후 처음이다.유로화 강세로 수출 경쟁력의 약화 우려가 커지고 물가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자 부양책 확대 전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일본의 추가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블룸버그 설문에 따르면 경제전문가 36명 가운데 17명이 이달에 일본 중앙은행의 ‘행동’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13명에서 추가 양적완화를 전망하는 전문가가 늘어났다.일본의 8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1%로 2년 4개월 만에 처음 마이너스로 떨어졌다.가계 지출이 살아나지 않는데다 유가의 하락 정도가 심해진 점이 물가 상승을 막은 요인으로 분석된다.신흥국 금리 인하와 유럽, 일본의 추가 부양책 기대감에 환율전쟁은 다시 고조되는 분위기다.세계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을 통해 수출경쟁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최근 신흥국들의 금리 인하가 미국의 기준금리가 동결된 이후 이뤄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데이비드 헨슬리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금리 인상을 지연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통화정책 완화의 문이 잠시나마 열렸다”고 설명했다.통화정책 완화의 숨통이 트인 만큼 한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예상하는 분석도 많다.한국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부터 4차례에 걸쳐 내려가 사상 최저 수준인 연 1.5% 수준까지 떨어졌다.잇단 기준금리 인하에도 기대했던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미국 금리가 올라가기 전 한두 차례 금리를 더 내려 회복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최근 고용 지표가 부진하게 나오면서 10월 미국 금리 인상이 물 건너갔다는 인식마저 퍼져 한국의 금리 인하설에 힘이 실린다.미국의 금리 인상 지연에 따른 한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에 한국은행은 일단 부정적인 입장이다.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계획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인상 시기를 늦춘 것이므로 그런 각도에서 해야 한다”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통화정책 방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