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버랜드, '동막골' 어둠 속의 감시자

동막골 심 할아버지 '오지에 유배지 생활까지?'

2006-04-24     권민경 기자
할아버지 '컵 만한 일 부풀린다고 해명하라' 억울
삼성 '그런 일 없어', '전기 공급도 우리 의무 아냐'

[매일일보= 권민경 기자] 삼성에버랜드가 올해로 개장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76년 '자연농원'이란 이름으로 개장한 에버랜드는 이제 세계적인 테마파크로 성장했다.

개장 당시 88만명이던 연간 입장객은 지난해 말에는 10배 가량인 860만명으로 증가했다. 국내 인구 대비 방문율도 77년 4.0%에서 지나해 17.5%로 크게 증가. 국민 6명 가운데 한 명은 에버랜드를 방문한 셈이다.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은 "30년전 자연농원으로 시작한 에버랜드가 세계적인 테마파크로 성장하게 된 데는 고객과 국민의 사랑이 큰 밑거름이 됐다"며 "국민에게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생활에너지 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이런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연(?) 이 알려져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에버랜드 바로 옆 '동막골'이라 불리는 마을에 거주하는 심노원 할아버지(73) 부부.

초대형 테마파크 에버랜드 옆 심 할아버지 집은 전기와 전화도 공급되지 않는 오지 아닌 오지다.

할아버지에 따르면 에버랜드가 이곳에 처음 들어설 당시 땅을 팔지 않았다는 일명 '괘씸죄' 로 인해 전기, 전화 공급에 협조해 주지 않아 36년을 암흑속에서 살았다는 것.

더욱이 이런 사연이 언론에 보도된 후 에버랜드 측에서는 '과장된 사실에 대해 해명을 하라'며 할아버지를 괴롭게 했다고까지 하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 글쎄 난 할말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고..... 그러니 어서 돌아가."

취재를 위해 찾아간 심 할아버지는 그동안 다녀갔던 취재진에 지쳐서인지 예상 밖의 심한 역정을 냈다.

그러나 사실 할아버지의 심기가 이렇게 불편한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전기와 전화 없이 평생을 살았다는 할아버지의 얘기가 언론에 공개된 이후 할아버지는 남다른 심적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할아버지에 대한 동정론이 거세짐과 동시에 여론의 비난이 에버랜드 측에 몰리면서 에버랜드 측으로부터 원망(?)의 소리를 들었던 것.

심 할아버지는 "(일)부러 기자들한테 내 얘기를 말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고서 찾아왔는지 나도 모르는데..." 라며 "그리고 언제 에버랜드더러 전기 안 놔준다고 뭐라 한 것도 없는데 왜 거기(에버랜드)서 와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지 모르겠다" 고 울분을 토하셨다.

심 할아버지에 따르면 언론 보도가 나간 이후 "잠깐 만나자"는 에버랜드 측 말을 듣고 나갔더니 그 자리에 에버랜드 관계자, 한국전력 직원, 시 관계자, 읍장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에버랜드 관계자라는 사람이 "왜 컵 만한 일을 물병 만하게 부풀려서 과장을 시키느냐" 는 비난과 함께 "없는 얘기로 괜히 에버랜드만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됐으니 제대로 해명을 하라" 고 말했다는 것.

실제로 심 할아버지 집을 찾기 위해 호암미술관을 후문을 지나 올라가던 중 갑작스레 한 안내원이 기자를 막아선 일이 있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동막골 사시는 심노원 할아버지란 분을 만나러 갑니다. 신문사에서 취재 왔습니다"

이에 안내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기자는 서둘러 할아버지 집으로 올라갔고, 막 할아버지를 만나 곱지(?) 못한 소리를 듣는 와중 에버랜드 관계자가 따라와 기자를 밖으로 불러냈다.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취재를 계속하기 위해 할아버지 방으로 다시 들어가자 "거 보라고, 또 득달같이 달려왔잖아. 인제 또 뭐라고 할거야, 감시도 아니고 원..." 이라며 잔뜩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할아버지 '에버랜드에 땅 안 팔았으니 곱게 보였겠어?'

지난 1969년 에버랜드( 당시 자연농원) 는 이곳에 대규모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동막골 인근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살던 70여 세대의 주민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모두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심 할아버지만은 끝까지 팔지 않겠다고 버텼다.

할아버지 역시 자신 소유의 땅 일부는 팔았지만, 16대조 할아버지부터 부모님까지 묻혀있는 종중땅 만큼은 마음대로 팔 수도 없었고 또 팔고 싶은 땅도 아니었다고.

결국 이 마을에 혼자 남겨진 심 할아버지는 이후 36년 동안 전기, 전화 공급하나 되지 않는 답답함 속에 살게 된 것이다.

산골 오지, 외딴 섬도 아닌 경기도 용인, 바로 옆에서는 삼성에버랜드라는 초대형 놀이시설이 1년365일 분주하게 돌아가는 곳에서.

심 할아버지는 "전기도 안 들어오고 하면 곧 땅을 팔고 나갈 줄 알았겠지.." 라며 "근데도 나가지는 않았으니 뭐 곱게 보였을 리 있겠어?" 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몇 번 에버랜드측에 전기 공급을 위해 선로를 끌어올 수 있도록 요청한 적이 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선을 가져오려면 에버랜드에서 동의해줘야 하는데, 나만 땅을 안 팔았으니 괘씸하다는 생각을 했겠고, 아무튼 협조를 안해주더라고" 라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물론 에버랜드 측의 정확한 속내야 모르지만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단지 개발 계획이 유동적이라 타 시설물을 설치하긴 어렵다"는 입장만을 반복했다.

심 할아버지는 방법을 찾던 끝에 자식들이 승합차 엔진을 이용해 만든 발전기를 간간히 돌려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름값만 한 달에 30만원 가까이 들기 때문에 하루에 1~2시간 정도만 사용하고, 식생활 등은 LPG 가스통을 2~3일에 한 통씩 사서 쓰고 있다.

할아버지의 이런 기막힌 사연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는 "에버랜드 내 오지 마을 전기 설치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네티즌 1만명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다음달 12일까지 계속되는 이 청원운동은 4월21일 현재 8천560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그런가하면 민주노동당 김용한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는 14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에버랜드 동막골 할아버지에게 하루빨리 전기전화를 설치해 줘야 한다" 고 주장하며 "8천억을 사회에 기부하기 전에 힘없는 할아버지 부부부터 살펴야 한다" 고 성토하기도 했다.

삼성 에버랜드 '전기공급, 우리 문제 아냐'

한편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는 에버랜드 측에서도 할말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에버랜드는 "도대체 왜 이 문제로 에버랜드가 직격탄을 맞아야 하는 지 알 수 없다" 는 입장이다.

에버랜드 총무팀의 한 관계자는 "심 할아버지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과 에버랜드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냐" 면서 "전기를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찾지 않고 그냥 살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전기.전화 공급에 관한 문제는 에버랜드가 해결할 사항이 아닌 할아버지와 심씨 문중간에 합의를 봐야 할 문제라는 것.

즉 할아버지 집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문중에서 동의를 하지 않거나 할아버지 본인이 원치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한국전력 용인지점 관계자에게 문의해 본 결과 현재 심 할아버지 집에 전기를 공급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었다.

첫 째는 호암미술관에서 선로를 끌어다 사용하는 것인데, 공사비가 1억원 상당이 소요된다. 이는 에버랜드 일대가 지중선(전기선을 땅 속으로 뭍는 것)에 의해 전기가 공급되는 형태기 때문에 할아버지 집으로 선을 가져올 때도 마찬가지로 지중화 작업을 해야 하는 것.

두 번째는 인근 백련사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방법인데 이는 약 6천여만원의 공사비가 든다.

그런데 한전 관계자에 따르면 백련사 또한 에버랜드 측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기 때문에 에버랜드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백련사에서 전기를 가져올 경우 할아버지 집 근처 조상들 묘를 가로질러 전선과 전주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은 할아버지 집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 전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3천만원 가량의 공사비가 든다.

이럴 경우 정부에서 공사비의 70% 가량을 지원해주고 있어 비용면으로 본다면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전기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어쨌든 이런 방법들이 있기 때문에 에버랜드 측에서는 심 할아버지 사연이 보도된 후 에버랜드 관계자, 심 할아버지, 한국전력 용인지점, 용인시 관계자 등과 모여 전기를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에버랜드 관계자에 따르면 "심씨 문중에서 전주, 전선 등 이곳에 전기를 설치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그렇다면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태양열 발전을 설치해 사용할 수 있는데도 할아버지는 하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심 할아버지 역시 전기를 공급하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꼭 문중의 반대가 아니어도 조상 묘지 근처로 전주와 전선을 설치하는 것은 안될 일이고, 태양열 발전은 날이 좋아야만 제값을 할 수 있는 거라서 썩 내키지 않는다고.

심 할아버지는 "비가 오거나 할 때는 어쩌냐고 내가 에버랜드 사람한테 물었더니, 글쎄 하는 말이 '그때는 발전기 쓰면 되죠" 라고 말하더라고" 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나타냈다.

할아버지는 "물론 에버랜드에서 우리 집에 전기를 놔줘야 될 의무는 없지" 라면서도 "그래도 사람들이 그러면 안되지. 그 큰 사업 한다는데서.. 사실 원인제공을 한 곳이 에버랜드아닌가" 하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에버랜드가 들어오기 전 70여 세대가 살던 동막골이 전기도 안들어오는 오지가 된 것도, 이웃 하나 없이 할아버지 부부만 살게 된 것도 다 자연농원 때문이라는 얘기다.

즉 "예전에 살던 70세대가 그냥 살았어봐. 전기고 뭐고 다 들어오지.... 그러니 원인제공은 자연농원지" 라고 할아버지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에버랜드 관계자는 "할아버지가 전기 좀 놔달라고 요청하면 우리가 해줘야 하는 거냐" 면서 "사람들은 기업이 사회 봉사 차원에서라도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이어 "에버랜드는 절대 개별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유지들, 한전 관계자 등이 함께 모인다면 참석해서 이런 저런 토의를 할 수는 있지만 먼저 나서서 뭔가를 하지는 않겠다" 고 강하게 말했다.

즉 에버랜드가 전기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또 다시 "역시 그동안 에버랜드 때문에 할아버지가 전기도 없이 힘들게 살았던 것 아니나" 고 생각한다는 것.

이 관계자는 또 "비용 문제 역시 언급할 것이 없다. 이 또한 에버랜드 독자적으로 해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 덧붙였다.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이곳을 팔고 옮겨갈 생각은 없다고 한다. "여지껏 전기 없이도 그냥 저냥 살아왔는데, 뭐 살 날이 얼마 남았다고 조상 땅을 팔겠어" 라고 말했다.

에버랜드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할아버지 집에 전기를 공급해주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바람처럼 심 할아버지 집에도 전기가 들어와 오지(?) 아닌 오지 생활이 끝날 수 있을지는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이다.

kyoung@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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