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사고는 못 배긴다 - 이혼 부르는 홈쇼핑 중독

보다보면 빠져들게 되는 TV홈쇼핑의 매력?

2007-04-24     김호준 기자
“지금 주문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이 가격 이 구성으로 다시는 만나실 수 없습니다.” 등 매 순간 터져 나오는 쇼핑 호스트들의 멘트.

도저히 안 사고는 못 배기게 하는 현란한 멘트와 사은품 공세까지 시청자들의 정신을 쏙 빼 논다.

TV를 켜면 한 채널 걸러 한 채널이 홈쇼핑 방송이다. 이름 있는 메이저 홈쇼핑들에서부터 지역 홈쇼핑 등 그 수만에도 10가지에 달한다.

집안에서 손쉽게 쇼핑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주부들은 홈쇼핑을 이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또한 홈쇼핑 방송을 통해 요즘 유행하는 최신 상품들을 봄으로써 트렌드를 알게 되기 때문에 주부들끼리의 대화에서는 홈쇼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항목으로 까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우리나라 여성 소비자 3명 가운데 1명이 거의 매일 TV홈쇼핑을 시청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밝혔다.

소보원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홈쇼핑 경험이 있는 전국의 성인여성 5백 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1.2%가 'TV홈쇼핑을 거의 매일 시청한다.'고 응답했고, '3회 이상 시청한다.'는 응답이 57.4%로 절반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TV를 켜면 습관적으로 TV홈쇼핑 채널을 본다.’고 응답한 여성이 전체의 57.0%에 달해 홈쇼핑중독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얼마 전 주부 최모(37)씨는 홈쇼핑에서 후라이팬 세트를 주문했다.

구성도 마음에 들고 무이자 할부의 혜택까지 주니까 너무 좋아서였다.

하지만 최씨는 주문한 후라이팬을 받고 또 다른 홈쇼핑 방송에서 유사한 후라이팬을 판매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참 방송을 보던 최씨는 구성만 약간 바뀐 후라이팬 세트를 또 구입을 하였다. 최씨가 또 다시 구입을 하게 된 배경은 방송에서 나온 사은품과 경품추첨 때문이었다.

최씨는 이런 식으로 3달간 홈쇼핑에서 구매한 금액이 800만원 어치가 넘는다고 한다.

남편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서 TV를 켜면 이상하게도 홈쇼핑 채널에 먼저 손이 가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고 최씨는 말한다.

보다 보면 결국 상품을 주문하게 되고 이 때문에 최씨는 집안에 물건들이 쌓여가는 모습을 보던 남편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결국 홈쇼핑 때문에 가정불화가 생긴 것이다.

홈쇼핑 안보면 ‘불안, 초조, 우울’

지난해 홈쇼핑 중독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주부 김영미(36·여·가명)씨는 “회사의 상술임을 뻔히 알면서도 점점 빠져들었다”며 “5개월 여 만에 3천만 원의 카드빚을 지고 이혼 위기에까지 몰렸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단지 사은품 몇 개 받고 경품 당첨을 기대해 홈쇼핑을 보게 됐는데 홈쇼핑 보는 시간이 점차적으로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하루라도 안보면 우울증 증세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방송 중 선착순 몇 명에게 사은품을 준다는 쇼핑호스트의 말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전화를 걸어 주문한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제품이 여러 개 집안에 쌓이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도 마음이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이유는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방송에서 좋은 상품과 사은품이 나와 그것을 놓쳐버릴 것 같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김영미씨 처럼 대부분의 홈쇼핑중독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필요할 거 같다는 마음에서 시작해 싼값에 미리 사두면 이득을 보는 것 같은 만족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점차 이와 같은 경우가 반복되다보면 충동구매를 일삼게 되고, 늘어가는 지출과 집안에 넘쳐나는 물건으로 가족간의 불화까지 야기 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주부들이 홈쇼핑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홈쇼핑업체의 상술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상품 질보다는 각종사은품과 경품추첨

우리나라 TV홈쇼핑 시장규모는 4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시장에 첫 선을 보인지 10여년도 안돼서 성장한 것이다.

초창기인 1996년 3백억 원 대의 시장규모에 비하면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지역 케이블 방송사 업체를 비롯해 수많은 유사 홈쇼핑 업체들과 그밖에 불법업체들까지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어 시장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급성장 한 TV홈쇼핑은 경쟁이 과열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최근에는 성장세가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시청자들의 돈주머니를 열기 위한 홈쇼핑 업체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허위·과장광고 등 여러 문제점도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홈쇼핑 업체의 난립이 업체간 과열 경쟁을 야기 시켰고 이는 소비자의 구매욕을 높이기 위한 업체들의 치열한 마케팅 전략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충동구매가 야기 됐다.

또한 무분별한 충동구매는 반품으로 이어져 회사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유사 홈쇼핑 업체의 경우 치열해진 판촉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품의 질보다는 각종 사은품을 내걸고 소비자를 유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쇼핑호스트는 “너무 싸서 놀라지 마세요, 이 가격 오늘 뿐입니다.” 등 소비자들의 조바심을 유발해 충동구매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충동구매는 물품을 반품하는 사태로 연결되고, 최근에는 물품을 신청해서 사용한 후 상습적으로 반품하는 ‘상습 반품족’들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주부들의 홈쇼핑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YMCA 관계자는 “방송을 보다보면 쇼핑호스트들의 멘트와 재촉, 시중가와 비교한 저렴한 가격 등 당장 안 사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제품에 대해서는 반드시 여러 번 판매하는 것이 홈쇼핑의 특징이기 때문에 급하게 주문하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소보원 관계자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상품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계획적으로 쇼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홈쇼핑 시청을 줄이고, 자신의 의지대로 상품을 구매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홈쇼핑은 우리에게 편리한 쇼핑을 할 수 있게 해줌과 동시에 쇼핑중독의 폐해도 전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홈쇼핑을 시청하는 소비자들은 방송멘트와 업체 상술에 현혹 되지 말고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보는 습관이 필요할 것이다.
<심층취재, 실시간 뉴스 매일일보/www.sisaseoul.com/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