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탄생 100주년 ②] 불가능을 가능으로…‘불굴의 도전정신’

한겨울 묘지에 잔디 심어달라는 요구에 푸른 보리 입혀
지폐 속 ‘거북선’ 보여주며 조선소 건설위한 차관 도입

2016-11-24     이한듬 기자
[매일일보 이한듬 기자]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은 ‘불굴의 도전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정 명예회장은 특유의 재치와 뚝심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사례가 부지기수다.◇겨울 묘지 파랗게 물들인 ‘보리잔디’1952년 1월, 당시 정 명예회장은 미군으로부터 한 가지 주문을 받는다. 유엔군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해 유엔군 묘지를 참배하려 하는데, 흙밭인 유엔군 묘역을 사절단이 도착하기 전에 파란 잔디로 덮어달라는 요구였다.전쟁이 지속되는 상황, 거기다 파란 잔디를 구할 길이 황량한 한겨울이지만, 정 명예회장은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낸다. 겨울에 싹이 돋는 보리를 떠올린 것이다. 그는 곧바로 낙동강 연안 보리밭을 통째 구입, 파란 보리 포기들을 묘지에 그대로 옮겨 심었다.이를 계기로 정 명예회장은 미군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게 됐고, 이후 현대건설은 전쟁 중 피란지 부산에서 미 8군 공사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수주하며 빠른속도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발상의 전환으로 고속도로 준공 맞춰1968년 2월부터 1970년7월까지 진행된 경부고속도로 공사는 서울∼수원, 수원~오산 등 단계적인 개통이 이뤄졌다.하지만 대전공구의 당재터널을 뚫으면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공사에 필요한 대형장비를 투입하지 못할정도로 지형이 좋지 않았고, 암질이 단단해 터널을 뚫다가 인명사고까지 발생한 것.약속했던 완공일정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정 명예회장은 값은 비싸지만 20배는 빨리 굳는 조강 시멘트를 공사현장에 투입함으로써 상황을 바꾼다. 이를 통해 세계 최단기간인 2년5개월 만에 428Km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게 됐다.◇지폐 속 거북선으로 조선기술 입증 대체1971년 조선사업계획서를 완성한 전 명예회장은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외자를 확보하기 위해 유럽으로 날아갔다.그는 당시 영국 최고의 은행이던 바클레이은행으로부터 4300만달러의 차관을 도입하기 위해 바클레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A&P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만났다.추천서를 요구하는 정 명예회장에게 롱바텀 회장은 고개를 가로젓지만,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보이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이 같은 기지를 발휘한 끝에 결국 정 명예회장은 차관 도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폐유조선으로 물길 흐름도 이겨내1984년 현대건설이 충남 서산간척지 개발사업에 한창이던 당시, 최종 물막이 공사를 앞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방조제용 바위가 거센 유속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휩쓸려 떠내려가는 바람에 공사가 좀처럼 진행되지 못한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정 명예회장은 한 가지 묘책을 발휘한다. 고철로 쓰려고 정박시켜 놨던 폐유조선을 끌어다 가라앉혀 놓고 바위덩어리를 투하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담당자가 “현실성이 있느냐”며 머뭇대자 정 명예회장은 “이봐, 해 봤어?”라고 되물으며 일단 해 볼 것을 지시했다.결국 정 명예회장의 아이디어는 성공작으로 마무리됐고, 현대건설은 공사기간을 무려 3년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