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격호, 바벨탑 집착 속내…고국사랑VS 돈벌이 급급?

전문가들 ‘신 회장 돈 되는 사업만 한다, 고국 사랑은 명분’

2006-05-12     권민경 기자
<서울, 부산, 울산 초고층 타워, 여론 반대 무시 사업 강행 논란-잠실 제2롯데월드 공사 땅파기만 몇 년, 연내 착공 불가능할 듯>

[매일일보= 권민경 기자] 재계 순위 5위 롯데그룹의 후계자가 신동빈 그룹 부회장이라는 데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신격호 회장이 여전히 홀수 달에 한국에 머물며 그룹 전반의 업무보고를 받긴 하지만 지난 2월 롯데쇼핑의 상장을 비롯해 현재 롯데가 추진하고 있는 굵직한 프로젝트는 이제 신 부회장의 주도 아래 이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유독 신 회장이 ‘숙원’ 이라고까지 언급하며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는 사업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제2롯데월드를 비롯한 초고층 타워 건립이 그것.

신 회장의 이런 숙원을 담아 롯데는 현재 서울 잠실과 부산에 100층이 넘는 초고층의 제2 롯데월드 건립을 추진 중이다.

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고향 울산시에도 초고층 타워 건립에 대해 긍정적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 측은 신 회장의 이런 의지에 대해 ‘돈’보다는 ‘애국심’을 강조하며 ‘고국에 보답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도 굳이 신 회장이 사업 추진을 강행하는 데는 ‘고국 사랑’이라는 명분보다는 초고층 타워가 ‘돈벌이’ 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지배적 시각이다.

신 회장, 왜 바벨탑 꿈꾸나

신 회장은 지난해 초 일본의 주간지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 “내 생전의 꿈이라면 한국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제2롯데월드를 건설하는 것” 이라며 자신의 숙원을 밝힌 바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당시 신 회장은 세 가지 경영원칙도 소개했는데, 그 첫 번째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업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 는 것이었다.

그런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짓고 나서 이윤이 남지 않더라도 제2롯데월드를 건립해야 한다” 고 롯데 임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윤추구를 가장 우선시 하는 신 회장이 도대체 ‘이윤’을 막론하고라도 초고층 타워를 지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 회장의 강렬한 의지에 대해 롯데 측이 내놓은 공식 답변은 이렇다.

“올해 84세의 고령인 신 회장은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한국에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건립해 고국에 보답하고 싶어한다”

즉 “돈보다는 고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는 것.

그런 이유에 힘을 실어주기라도 하듯 롯데 측 한 임원은 “그룹 내 관계자들도 제2롯데월드 예정지에 타워팰리스 같은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 것이 훨씬 더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들 한다” 면서 “하지만 고국에 뭔가 보답하겠다는 신 회장 의지가 워낙 강해 초고층 타워 건립을 추진하는 것이다” 고 설명했다.

실제로 롯데는 지난 2월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과 관련해 갈등을 빚고 있는 공군 측 의견에 반박하는 자료에서 “높은 투자비로 인해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어려운 사업” 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신 회장의 초고층 타워 숙원은 언뜻 대단한 애국심의 발로인 듯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잠실을 비롯한 부산의 제2롯데월드 추진 상황을 보면 이것이 과연 고국에 대한 사랑과 일맥상통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잠실 제2롯데월드 국민 의견 무시가 고국 사랑?

현재 잠실 제2롯데월드는 몇 년 째 땅파기만 계속하고 있다.

우선 공군 측이 ‘안전’ 상의 이유를 들어 강력한 반대의사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공군은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잠실 예정지는 항공기의 계비비행 접근보호 구역(고도 203m)에 포함돼 자칫 불의의 사고가 날 수 있다” 며 “비행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실상 건축이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잠실 지역의 환경단체 또한 교통난 가중과 환경문제 발생 등의 문제로 제2롯데월드 건립에 적극 반대 입장을 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의 한 관계자는 “잠실역 사거리와 송파대로를 중심으로 한 일대은 지금도 상습정체 구역" 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롯데가 또 다시 초고층 빌딩을 짓는 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고 주장했다.

도시계획 전문가들 역시 “환경적으로 보더라도 제2롯데월드 건설은 대기, 지하수 흐름의 변화, 일조, 경관 등 많은 부분에 있어 잠재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환경단체나 전문가들뿐만이 아니다. 잠실 인근 주민들 또한 제2롯데월드 건립에 따른 교통난, 지나친 상업화 등을 걱정하며 반대하는 분위기다.

가락동 지역 한 주민은 “주민들 중에 롯데월드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꽤 많다“며 ”지금도 여기는 (롯데)백화점 세일이니 뭐니 하면 도로가 꽉 막히기 일쑨데, 롯데월드까지 들어오면 아마 지옥으로 변할 것“ 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가하면 오금동 지역 한 주민은 ”이 지역에 112층 짜리 건물이 가당키나 하냐“ 고 반문하며 ”말도 안되는 일이다“ 고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처럼 공군 측의 반대와 각종 비난 여론 등으로 인해 잠실 제2롯데월드는 연내 착공이 거의 불확실해지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면서 청신호가 켜켰지만 최근 정부 입장 또한 불가 방침으로 기울어지면서 당분간 착공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게다가 서울시는 늦어도 6월쯤 건축심의가 끝나 허가가 나갈 것으로 보고 있지만 건설교통부의 허가제한 검토 움직임이 발목을 잡고 있다.

건축법 제12조의 `건축허가 제한'은 국방, 환경, 국민경제상 필요할 경우 건교부 장관이 주무 장관의 요청을 받아 특정 건축물의 허가나 착공을 제한하는 것이다.

공군은 "제2롯데월드는 비행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행정협의 조정을 통해 층고를 낮추되 조정이 안 되면 건축허가 제한 요청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만의 하나라도 건교부 장관이 건축허가 제한권을 발동하면 롯데월드 착공을 최장 3년 간 늦춰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부산 제2롯데월드, 지역 문화재 훼손이 고국 사랑?

한편 부산 제2롯데월드 역시 잠실에 비해 조금 나은 상황이긴 하지만 공사 진행이 더디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터파기 및 기초공사 등 1단계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다음달이면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전망.

부산 롯데월드는 지난 2001년 공사에 착공했지만 부산시의 명물인 영도다리 철거 문제를 두고 난항을 겪으면서 공사가 지연됐다.

배가 드나들 때 다리가 올라가는 ‘도개다리’로 유명한 부산의 영도다리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 준공돼 한국전쟁 등을 거쳐, 1966년 9월 안전문제 등으로 도개기능이 상실됐다.

문제는 지난 2000년 부산시가 영도다리의 시발점인 옛 부산시청 자리에 다리 철거를 결정, 제2롯데월드 건립을 허가하자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면서부터.

보존 여론이 들끓자 부산시는 2004년 기존다리 확장으로 보존을 결정했다 다시 결정을 번복하는 등 혼선을 빚어 왔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에서는 부산시가 롯데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영도다리 문제는 올 초 문화재청이 이에 대해 지방문화재 지정을 권고하면서 현재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부산의 제2롯데월드에 대해 지역 환경단체 역시 “초고층 건물은 도시의 삭막함은 물론이고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등 환경적으로 좋지 않다” 면서 “도시계획적인 검토와 충분한 대책 없이 업체나 업계의 경제논린에 의한 난립은 막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또한 “고층건물을 지을 때도 주변의 경관가 자연스럽게 조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사업적 논리에만 치중해 짓다보니 위화감만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고국 사랑? 전문가들 ‘롯데, 이윤 없으면 장사 안 해’

이처럼 신 회장의 평생 숙원인 초고층 타워 건립 사업은 그의 ‘고국사랑'을 몰라주는(?) 사람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롯데가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사안을 굳이 ’모국에 대한 보답, 충정‘ 등의 명분으로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실은 다른 곳에 있다고 얘기한다.

즉 “경제성이 없는데 초고층 빌딩을 지을 사람은 없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고국사랑’, '보답‘ 등등 롯데 내세우는 이유는 그야말로 명분에 불과하다” 면서 “손해보고 장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고 꼬집어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더욱이 신 회장은 평소 ’돈 되는 사업‘에만 투자하기로 유명한데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을 벌이면서 ’이윤‘보다 다른 것을 더 중시한다는 건 허울 뿐인 얘기다” 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해외에서 경쟁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랜드마크 성격의 초고층 빌딩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롯데 역시 이곳에 새로이 들어서는 백화점,호텔 등을 통해 새로운 수익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 회장, 고향 울산타워 긍정검토는 진짜 ‘고향사랑’ 일까

최근 신 회장은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 울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울산 중구)과 이두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났다고 한다.

정 의원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울산의 마크가 될 울산타워 건립을 바라고 있는데 신 회장이 명성에 걸맞는 족적을 남길 때가 됐으니 롯데가 이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 고 건의했다는 것.

이에 신 회장 역시 “울산의 랜드마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며 “울산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겠다” 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 측 관계자는 “신 회장은 과연 랜드마크가 될 만한 것이 타워인지 또 다른 방법이 있는지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보겠다고 말했다” 고 밝혔다.

사실 울산 지역 관계자들이 신 회장에게 울산타워 건립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에도 신 회장은 박맹우 울산시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울산시가 부탁한 초고층 타워 건립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일각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신 회장은 이에 대한 조건으로 지역내 골프장, 할인점 건립에 대한 협조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울산시가 지역 현안사업으로 추진하는 ‘울산 타워’ 건립 사업이 울산시와 롯데그룹간의 ‘빅딜’ 사업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그동안에도 롯데는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울산시의 요청을 받아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을 지어 롯데마트 등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으나 시민들은 그룹 총수의 고향답게 기업이윤보다 공익성이 높은 일에 투자해 주기를 내심 바래 온 것이 사실.

과연 신 회장이 서울, 부산, 울산 등 전국적으로 펼치고 있는 숙원사업인 ‘초고층 타워’ 건립이 그의 말처럼 순수한 ‘고국 사랑’의 표현인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kyoung@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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