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최대 ‘스폰서 검사 스캔들’

신뢰 저버린 검찰, 이번에도 쏘옥~?

2011-04-23     김시은 기자

[매일일보=김시은 기자] 사상최대 검사들의 스폰서 스캔들이 폭로됐다. 지난 20여년간 부산·경남 일대 검사 수십명에게 향응과 접대 등 일명 스폰서 역할을 해왔다는 한 건설업자가 관련 문건을 언론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공개된 리스트는 진상규명 조사에도 막대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충격을 주고 있다. 문건의 실명 거론자만해도 57명, 이름 없이 소속 검찰청과 직책이 표시된 검사들까지 합하면 조사 대상자가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검사로써, 공직자로써 지켜야 할 법과 윤리를 저버린 내용들이어서 그로인한 대규모 인사태풍이 불어 닥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매일일보>이 사상최대 스폰서 검사 스캔들을 파헤쳐봤다.


검사들에 대한 향응·성접대 의혹이 제기됐다. 부산·경남 지역의 전 건설업자 정모(51)씨가 자필로 작성한 문건에는 접대내역이 자세히 나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검사들에게 금품과 각종 향응을 제공하고 2차 접대까지 했다고 한다. 정씨가 스폰서로서 접대한 검사들의 실명과 직책 휴대폰 번호도 나와 있다. 이러한 내용은 지난 20일 PD수첩에 의해 공개됐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21일 진실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으나 부산지검은 “방송 내용이 제보자의 신뢰성 없는 일방적 주장만 나열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부산·경남 건설업자 정씨, 25년 100여명 검사에게 수십억 향응 제공
신뢰성 없는 일방적 주장VS부정 후 녹취록 얘기에 태도 바꾸는 건?
정씨, 재산 탕진·건강 악화로 배신감 느껴, 만약의 사태 대비한 카드
9차례 걸친 법 위반, 추가 기소로 보복VS야권압력, 진상 규명 될까?

태도 바꾸더니 사의?

정씨의 주장에 따른 문건의 내용은 이렇다. 정씨는 지난 1984년부터 2009년까지, 지난 25년간 100여명의 검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했으며, 쓴 돈만해도 수십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또 현재 검사장으로 재직 중인 2명 등 부산경남지역 검찰청에서 근무했던 검사 100여명이 그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1984년에서 1990년에는 진주지청장에게 매월 200만원, 지청 소속 평검사들에게는 매월 60만원의 돈을 줬다는 기록도 공개했다. 정씨가 접대 장소로 자주 이용했다는 룸살롱 건물 위층에는 모텔이 연결돼 있었으며 다른 종업원들도 검사들이 모텔로 가는 걸 봤다고 얘기했다.특히 박기준 부산지검장, 한승철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지난 2003년 부산지검에서 각각 형사 1부장과 3부장 검사로 재직할 때 여러 번 만나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폭로해 사실여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먼저 정씨는 지난해 3월말 한승철 현 대검 감찰부장과 부장검사 2명에게 룸살롱에서 술을 사고 부장검사 한명에게는 성접대를 했다며 당시 룸살롱 여종업원과의 통화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한 부장검사는 이를 부정했는데,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냐”며 “어떻게 택시비 100만원을 주느냐”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러나 이날 함께 있던 다른 검사가 “한 검사와 함께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고 인정해 파문이 일고 있다. 또 정씨는 박 지검장과의 통화내용도 공개했는데, 박 지검장은 정씨와의 통화에서 “너와 나의 관계는 동지적 관계고 우리의 정은 끈끈하게 유지된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천성관 전 검찰총장 임명을 두고는 “내가 천성관과 아주 친하건든, 나는 무조건 발령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 지검장은 처음엔 강하게 의혹을 부정하다가도, 정씨와의 통화내용의 녹취됐다는 사실을 언급하자,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다른 사람을 통해 경고했다. 쓸데없는 게 나가면 민·형사 조치를 하겠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을 하다가, “이야기할 게 없다”고 말해 의혹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결국 박 지검장은 지난 23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문제에 연루된 건 아니지만 이번 사태로 논란이 확산되자 상황을 신속히 마무리 짓고 검찰 조직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사의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지만 그 내막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마지막 히든카드?

그렇다면 정씨는 왜 이런 내용의 문건을 지금에서야 세간에 공개했을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씨가 검찰의 향응제공 사실을 털어놓은 이유는 ‘배신감’ 때문이었다. 그는 “그간 접대해왔던 사람들이 내가 힘들어졌을 때 전화 한 통 없어 배신감을 느꼈다”며 “5~6년 전부터 접대 문건을 작성해왔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찰에 향응을 제공하며 특별히 요구한 것은 없고 인지상정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수사 무마 등 사건 청탁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스폰서를 자청한 적은 없다. 먼저 그쪽에서 ‘우리 부서 회식 좀 시켜 달라’는 식으로 전화를 해온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정씨는 올해 2월 검찰에 진정서를 내기에 앞서 지난 2006년에도 이미 같은 내용의 진정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는 지난 2006년 9월 부산지검에 “80,90년대를 제외하고도 2000년부터 지금까지 5~6년간 스폰서 노릇을 해왔다”는 진정을 냈지만 검찰은 협박일 뿐이라며 정씨의 진정서를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정씨의 집에 들이닥쳐 검사들을 접대한 내역이 적혀 있는 수첩을 가져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그 이후인 지난 2월에도 “검사들에게 뇌물·촌지·향응·성접대를 해왔다”며 “형사적 또는 도덕적 책임을 물어 달라”는 자필 진정서를 냈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묵살 당했다는 전했다.   정씨는 이때 낸 진정서에도 갱생보호위원과 소년선도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검사들과 친분을 쌓았으며 각종 행사 비용을 대는 것은 물론 촌지도 수시로 건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산지검은 조사에 착수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설상가상 정씨는 지난해 8월 구속됐다가 다음 달 발목 관절 수술 등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상태에 놓였다. 결국 정씨는 재산을 탕진하고 건강까지 악화된 상태에서 과거 알고 지내던 ‘인맥’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되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모아놓은 자료를 언론사에 뿌리기에 이른 것이다.

보복하고VS숨기고

그렇다면 당시 검찰은 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던 것일까. 정씨의 주장대로라면 25년간 수십억원의 돈을 아무런 대가 없이 검사들에게 써왔다는 것인데, 단순히 호의적 접대로 치부하기엔 액수가 너무 많다는 게 일각의 주장이다. 여기에 검찰은 정씨가 검찰에 추가 기소당한 것에 대한 보복성 폭로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씨는 지난 2008년 11월부터 지난 2009년 4월 사이 불법 오락실 단속 무마 조건으로 업체 관계자에게 2700만원을 받은 혐의 구속기소 됐으나 신병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한 달 만에 재판을 받고 있었다.정씨는 지난 2009년 1월과 3월 총경 승진을 도와주겠다며 경찰 간부에게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자연히 일각에선 추가로 기소된 것 때문에 양심을 품고 언론에 문건을 보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러나 정씨는 “허위 사실은 전혀 없다.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며 “내가 지금 몸만 아프지 않다면 직접 나서 밝힐 것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진정을 제출할 당시에도 정씨는 검찰에서 명단에 적힌 검사들과의 대질을 요구하기도 했다. 검찰에 제공한 돈의 액수와 수표번호 등을 기록한 자료를 들고 정면공격을 할 계획이었던 그는 “이율배반적이고 이기적 집단인 검찰의 행태를 국민들에게 바르게 알리겠다”며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많은 고뇌와 자살하고 싶은 극단적인 심적 부담을 안고 진정서를 제출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20일 부산지검은 정씨에 대한 구속집행정지 취소 신청을 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이 구속집행정지 허가 조건인 자택과 병원을 벗어났으며, 신병 치료라는 목적 이외의 활동을 하고 있어 구속집행정지 취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현재 대검찰청은 정씨의 접대 주장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외부 인사가 주축으로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지난 22일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성 교수는 “국민들에게 한치 의혹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조사에 2~3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씨의 접대 리스트에 포함된 57명의 전·현직 검사를 포함해 전체 관련자가 100여명에 달하는데다 특별검사제를 요구하는 야권의 압력도 높아지고 있어 조사단 활동이 제대로 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한편, 삼성의 검찰 뇌물상납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이제 검찰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진상규명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것을 보니 검찰도 내부 감찰을 국민이 안 믿는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된 모양”이라고 검찰을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