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중견기업인, 고발전문 블로거 되기까지

[커버스토리] LG전자, 12년 협력사 토사구팽 풀스토리

2010-04-26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 김경탁 기자] LG전자 토사구팽 논란의 주인공인 신우데이타시스템(이하 신우)은 LG전자와 IBM의 합작법인 LG-IBM이 설립되던 해인 1996년에 설립돼, 이듬해인 1997년 LG-IBM과 PC대리점 계약을 체결했다. 

1998년부터 백화점에 진출해 99년에 롯데백화점 본점 등 3개점, 2000년에는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전국 매장에 대한 입점권 계약을 체결한 신우는 2002년 롯데마트 전국 37개점 등 모두 92개의 매장을 거느리는 중견업체로 성장했다.

2003년 까르푸 25개점 입점 등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신우는 홈플러스에서의 영업 집중을 위해 매장들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2008년 LG전자로부터 최종 버림받기 전까지 홈플러스 30여개점을 운영했다.

신우의 영업력은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간 우수대리점 종합우승상을 받았고, 2003년과 2004년에는 LGIBM으로부터 ‘위너서클’ 업체로 선정돼 부부동반 해외여행의 특전을 누렸다.

신우는 LG 제품을 취급하는 다른 업체에 비해서도 월등한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홈플러스 매출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4년 LG의 PC와 노트북컴퓨터 점유율은 30%로 삼성(28%), TG삼보(24%), HP(12%) 등을 제치고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우수대리점이 불량거래처로 퇴출된 내막은?
“LG의 ‘직영심기’ 작전” vs “불가피한 조치”


신우의 쾌속행진은 거래처가 LG전자로 바뀐 2005년부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거래처가 LG전자로 바뀐 것은 LG(49%)와 IBM(51)의 합작법인이었던 LG-IBM이 양사의 합작 파기에 따라 2005년 1월 분사돼 PC사업 부문이 LG전자로 흡수됐기 때문이다.

2005년 초까지만 해도 LG전자와 신우는 기존 LG-IBM의 거래관행을 그대로 이어갔으나 LG전자는 신우의 ‘여신한도’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신우를 비롯한 대리점들은 LG전자 등 제조사로부터 물품을 일정 기간 외상으로 사다가 이를 판매한 대금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이를 외상매입채무라고 하고 이 외상매입채무를 위해 제조사에 제공되는 담보규모가 ‘여신한도’이다.

당시 상황에 대한 LG전자의 주장은 신우의 외상매입채무가 과다해 여신한도를 넘어서는 물품거래가 빈번히 이뤄짐에 따라 이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우가 장사를 너무 잘해서 담보보다 많은 물품을 거래한 것이 문제가 된 셈이다.

신우는 2005년 당시 LG전자에 제공한 담보는 7억7800만원이었다. 2005년 평균 월말 잔고는 11억2400여만원이었는데, 나머지 여신은 LG-IBM 시절부터 해왔던 방식대로 홈플러스가 신우에 매월 결제할 매출채권을 LG전자에게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해 이를 충당했다.

LG전자의 2005~2006년 자료에 따르면 이로써 당시 신우에 부여된 사용가능여신은 담보와 매출채권 양도를 합쳐 14억1300여만원이었다. 2005년의 경우 신우의 월 평균 잔고(매입채무잔고)는 11억2400여만원으로 여신한도 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자료는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LG전자는 2005년 6월 신우 측에 여신한도 이상의 물품거래를 하려면 추가 담보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김종혁 사장은 이것이 ‘신우 죽이기 음모의 시발’이었다고 보고 있다. “LG-IBM 때부터 해왔던 방식의 여신을 받아 2005년 초에 원만히 LG와도 거래를 지속했는데 하반기부터 LG가 태도를 바꿔 신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상식적 매출채권양도 해지 거부 

신우는 LG전자의 요구를 납득할 수 없었지만 원만한 거래를 위해 2005년 추가로 5억원의 담보를 제공했고, 이로써 LG전자가 2006년에 부여한 신우의 여신한도는 18억8200여만원(담보설정액 11억7800만원, 월 평균 결제금액 7억400여만원 합산)으로 늘었다.

그해 신우의 월 평균 잔고도 6억9900여만원으로 여신한도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 LG전자의 채권관리 리스크는 사라졌고, 이에 따라 신우가 추가 담보 5억원을 제공하면 기존의 매출채권 양도는 불필요하므로 양도계약을 해지하기로 양사는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을 LG전자가 지키지 않았고, 신우의 현금 유동성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 김 사장의 주장이다. LG전자는 매출채권을 1년여 동안 확보하다가 신우가 판매대행사로 전환된 이후인 2007년 8월에서야 양도계약을 풀어준다.

여신한도 여력이 충분한데도 매출채권을 그대로 가져간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에 대해 LG전자는 “외상거래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상습적인 거래대금 연체나 담보를 초과한 신용여신의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LG전자 법무지원그룹 관계자는 “신우의 경우 연체기간이 길었고, 판매직원들의 급여 체불, 내부 부채로 인한 금융이자 등으로 추정되는 자금난 등이 심각해 거래관계를 지속하는데 고충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30일 결제조건 강요…함정?

어쨌든 LG전자는 신우를 불량거래처로 분류한다. 유통업계 선두를 달리며 승승장구했던 전문 PC 판매업체가 LG-IBM에서 LG전자로 거래처가 바뀌면서 거래대금을 상습 연체하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LG전자와 신우가 맺은 결제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신우는 LG-IBM과의 거래 시절 30~90일의 선택적 조건으로 거래대금을 자유롭게 결제할 수 있었다. LG전자와도 거래 초기에는 같은 결제조건으로 거래를 했다. 그런데 LG전자는 2005년 9월 거래대금 결제를 물품판매 후 30일 이내로 해줄 것을 강제했다.

이에 대해 LG전자 관계자는 “신우가 IBM때 결제기간을 넉넉하게 갖고 운영하다가 LG로 넘어오면서 30일로 단축돼 자금운용에서 어려움을 감당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LG전자의 기존 대리점 거래기준이 센 편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LG전자의 일반적인 대리점 결제조건인 30일로 하되 2%의 할인율을 적용받는 것과 할인율 없이 60일 결제조건으로 하는 것 가운데 30일로 하겠다고 신우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해 매출할인 약정서를 체결했다는 것이 LG 측의 소명이다.

김 사장은 “당시 575개 LG전자 대리점들은 30~120일로 결제조건이 폭넓었고, 30일 이내에 결제하는 업체는 10% 정도에 불과했다”며 “LG전자의 2005년 상반기 대리점 신용등급 기준에 의하면 신우가 A~D등급 가운데 최우수인 A등급을 받았는데도 극악의 결제조건을 강요해 유통구조상 결제일을 맞추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운영난이 가중됐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신우 측이 증거로 제시한 LG전자의 자료에 따르면 신우는 2005년 상반기 A등급의 우수거래선으로 분류됐지만 결제조건에서는 최하위권에 속하는 30일 이내로 책정돼 있었다. 그 배경이 무엇인지 의문되는 지점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2005년 당시나 지금이나 LG전자의 대리점 약 700곳은 90% 이상이 30일 이내에 결제하도록 약정돼 있어 신우에만 불리한 조건으로 거래한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신우 측이 제시한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홈플러스는 순기(10일)별 결제가 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데 LG전자에 30일 결제를 신우가 맞추지 못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신우 내부의 부채 문제 등으로 인한 연체이지 결제기간이 촉박해서 생긴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행사 전락… 수수료 후려치기까지? 

양측은 이후 2006년까지 여신한도, 매출채권양도, 거래대금 연체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분쟁의 골을 더욱 키웠다. LG전자는 급기야 신우가 상습적으로 결제대금을 연체한다면서 2007년 4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물품공급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신우가 여타 대리점들에 비해 거래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운영난에 빠져 물품을 공급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 사장은 정상 운영을 할 수 없는 대리점 구조를 강제하면서 신우를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에 따른 ‘12년 협력사 죽이기’ 시나리오의 일환이라고 맞섰다.

양측은 이후 2007년 8월 1일부터 2008년 1월말까지 한시적인 판매대행 계약을 체결한다. 대리점에서 판매대행사로 그 지위가 격하된 것이다.

김 사장은 불공정 계약이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행사 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한다. 홈플러스 매장 영업이 수개월간 이뤄지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으로 내몰려 터무니없이 낮은 판매대행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계약에 응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몇 개월 운영해보고 수수료 등 수익구조를 따져본 뒤 수수료를 재조정하는 조건에서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신우가 받았던 수수료는 판매대금의 6%였다. 김 사장은 이 수수료가 경쟁업체인 삼성전자나 TG삼보는 물론 LG전자 판매대행을 맡고 있는 용역사의 수수료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고 주장했다. 경쟁사 대부분은 10%가 넘고 LG전자 용역사는 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그 증거로 LG전자의 이마트 판매대행을 하고 있던 H사 직원들의 급여와 인센티브 자료를 제시했다. 이 자료에 따라 매장당 월 평균 매출을 2000만~3000만원으로 가정해 판매대금 대비 수수료를 추산해보니 10.05%가 나왔다. 여기에 간접비와 관리비, 경상이익 옵션 등을 적용한 판매대행사 수수료를 합산하면 15~18%에 달한다고 김 사장은 주장했다.

LG전자 마케팅 담당자가 신우 측에 보낸 ‘대행수수료 관련’ 이메일에 따르면 지급수수료를 판매사원 인건비(급여+인센티브+4대보험)와 간접비·관리비로 이원화하고 경상이익 옵션도 1~2%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혀 LG 측이 타 판매대행사와 형평을 맞추려는 노력을 했던 것으로 짐작돼 의혹을 품게 한다.

하지만 LG전자 관계자는 “6%라는 것은 기준 수수료일 뿐이며 대부분 그 이상을 지급했고 10%까지 준 적도 많다”고 반박하면서 특히 “신우에서 제시했다는 자료가 조작된 것이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안다”고 자료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신우는 직영체제를 갖추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한 반면, LG전자는 홈플러스 매장의 정상 영업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했다.

김 사장은 “홈플러스 전국 매장에서 신우가 떠난 이후 H사가 입점해 운영하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각본에 따라 우리를 쫓아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12년간 쌓은 영업망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고스란히 LG전자에 넘겨준 꼴”이라고 분개했다.

하지만 LG전자의 입장은 이와는 상반된다. 신우가 일터를 떠나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홈플러스 PC매장의 판매여건이 정상영업을 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바닥을 기고 있어 계약해지 통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그 이후…

이 사건에 대한 김종혁 사장의 제소로 시작된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은 지난해 5월 “법률 위반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김종혁 사장은 지난해 봄부터 현재까지 330여일째 여의도 LG트윈빌딩 주변을 근거지로 보도내용 등을 담아 플래카드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언론사 및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 여러 곳에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가 되었다.

김종혁 사장의 집회 및 블로그 운영 등에 대해 LG전자는 지난해 7월 ‘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형사상의 명예훼손 소송 및 가처분을 제기했다.

그해 8월 법원에서는 LG전자가 제기한 명예훼손금지 가처분이 일부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형사고소와 관련해서는 서울 남부지검에서 지난해 12월29일 ‘혐의없음(증거불충분)’ 판정을 내려졌다.

김종혁 대표는 가처분 일부 인용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해 현재 관련 재판을 진행 중이며, 일단 가처분 결정에 따라서 현재는 LG트윈빌딩이 멀리 보이는 여의도공원과 MBC본사 주변을 오가며 여전히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한편 LG전자는 서울남부지검의 '명예훼손 무혐의 처분'에 항고했고, 서울고검은 영등포세무서의 과세처분 취소가 내려진 직후인 2010년 2월 3일자 로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다. 서울고검의 재기수사에 따른 재수사는 최근까지 '배정대기'상태에 있다가 최근에서야 재개돼 4월27일 출두하라는 요청이 지난 23일 김 사장에게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