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세금 1조 낸다' 경영권 승계 '정공법' 돌파

삼성 '우리도 1조 이상 낼 계획 있다' 한 발 늦게 부랴부랴

2006-05-19     권민경 기자
<재계, 정계 '신세계 떳떳한 세금 납부, 신선한 충격'>
<참여연대 '삼성, 신세계에 선수 뺏긴 듯 서둘러 발표'>

[매일일보= 권민경 기자] 신세계가 1조원의 세금을 내고 경영권을 승계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장남인 정용진 부사장과 구학서 사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각) 중국 상하이 이마트 싼린(三林)점 개점식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윤리경영은 신세계가 존속하는 정신적 기반으로 절대 훼손될 수 없는 가치"라며 "기왕 내야 할 세금이라면 상속까지 기다릴게 아니라 증여를 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앞당겨 냄으로써 기업 상속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표는 삼성그룹 이재용 상무, 현대.기아차그룹의 정의선 사장 등 재벌 3세 경영인들의 편법 경영권 승계 문제가 도마에 오른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편법을 동원해 세금을 회피해 왔는데 신세계는 법과 원칙에 따라 경영권을 승계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며 "이를 계기로 기업들의 세금 회피 관행이 바뀌고, 합법적인 경영권 승계가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고 환영했다.

한편 신세계의 발표 바로 다음 날 삼성그룹 또한 "이재용 상무의 상속세로 1조원이 넘는 금액을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부랴부랴(?) 흘러나왔다.

이에 참여연대는 "그동안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신세계의 발표에 선수를 뺏긴 듯 서둘러 발표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꼬집어 말했다.

구학서 사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깜짝 놀랄 만큼의 세금을 내고 신세계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다" 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의 세금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구 사장은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고 "이 회장과 정 명예회장 지분의 3분의 2 정도만 먼저 증여를 해도 대한전선이(재계 최고 상속세 납부) 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가 될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신세계의 주가 총액과 상속세율 등을 따져본다면 대략 계산을 해볼 수 있다.

지난 12일 종가기준으로 신세계의 시가총액은 8조6천190억원이었다. 이중 이 회장과 정 명예회장이 전체 지분의 23.2%를 보유하고 있어 정 부사장이 만약 이 지분을 다 물려받는다고 했을 때 상속율 50%를 감안하면 1조원 가까운 금액을 세금으로 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난 2004년 재계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납부한 대한전선 고 설원량 회장 유족의 납부액 1천355억원을 가볍게 뛰어 넘는 것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구 사장의 이번 발표가 갑작스럽게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세계 한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이 회장과 구 사장 사이에 이 문제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 고 설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에 의하면 "일각에서는 이번 세금 납부 발표가 참여연대와의 공방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전혀 아니다" 면서 "지난해 이 회장과 구 사장간에 의견일치를 보고 발표를 하려던 시점에 우연찮게 삼성 문제가 터졌고, 올해 들어서도 연달아 재계에 안 좋은 사건들이 불거지면서 발표시기가 늦춰진 것뿐이다" 고 말했다. .

실제로 최근 신세계는 광주 신세계 증자 과정에서 정 부사장의 편법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참여연대와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신세계, 1조원 언제, 어떻게 내나?

한편 구 사장은 세금 납부 시기와 관련해 "지금처럼 경영권 상속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와중에 주식 증여와 관련한 세금 납부를 바로 한다는 것은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며 "이르면 올 가을쯤에라도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세금 납부 방법에 대해서는 "3분의 1은 상속하고 나머지는 증여하는 식이 될 수도 있다" 면서 "세금은 주식으로 할 수도 있고, 현금으로 낼 수도 있다" 고 했다.

사실 재계에서는 "현재 정 부사장이 최대 1조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낼 만한 현금은 없는 것"으로 보고 "결국 정 부사장은 증여 받은 주식과 자신이 갖고 있는 현금을 합쳐서 세금을 낼 것" 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정 부사장이 주식으로 증여세를 낼 경우, 오너 일가의 전체 지분이 현재보다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어 경영권 확보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

대주주일가의 신세계 지분 보유 현황을 살펴보면 이 회장이 신세계 지분 15.33%를, 남편인 정 명예회장은 7.82%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정용진 부사장이 4.86%, 정유경 웨스틴조선호텔 상무가 0.6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만약 정 부사장이 이 회장 부부가 갖고 있는 신세계 지분(약 23%) 중 3분의 2 정도인 15%를 증여 받는다고 가정하면, 주식으로 세금을 대납할 경우 절반에 해당하는 7.5% 정도가 증여세로 국가에 귀속된다.

이 경우 이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가 갖고 있는 신세계 전체 지분은 현재 28.67%에서 21%대로 떨어진다.

여기에 신세계 주식 중 외국인 지분이 46.78%에 달하고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증여세를 낸 이후 오너 일가의 경영권 확보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신세계 측은 "다른 기업에 비해 신세계는 개인 대주주의 지분이 많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잘 안착돼 있어 별 문제가 없다" 고 설명했다.

그런가하면 구 사장의 이번 발언을 놓고 정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 시기가 임박했음을 방증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신세계 측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 문제는 이 회장이 알아서 판단할 일" 이라며 "언제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신세계는 그동안 고수해왔던 '전문경영인' 체제를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고 설명했다.

이어 "정 부사장 역시 이런 기조에 동의했다" 면서 "다만 큰 골격만 보고 받는 이 회장보다는 좀 더 자세하고 폭넓게 관여하게 될 것" 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우리도 1조원 넘게 낸다?' 부랴부랴∼

한편 신세계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떳떳한 상속' 의 조건으로 1조원의 세금을 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지 하루만인 지난 16일 삼성이 '상속세 1조원 이상을 낼 것'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한겨레신문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한 고위관계자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과 관련해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상무로의 상속이 이미 다 끝난 것처럼 편법이라고 비판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상무는 아직 상속세를 안 낸 상태"라며 "이 회장과 부인인 홍라희 여사의 보유주식이 각각 1조5천억원(비상장사까지 합치면 약 2조원), 5천억원을 넘어 이 상무가 이를 다 물려받으려면 상속세만 1조원이 넘는다" 고 말했다는 것.

이어 이 관계자는 "앞으로 삼성이 내는 상속세 규모를 보면 모두 깜짝 놀라게 될 것" 이라며 "이런 구상을 이미 지난해 말부터 적극 검토해 왔다" 고 기사는 보도했다.

기사는 또 "삼성은 이 회장 생전에 이 상무에게 사전에 증여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 중인데, 구체적인 시행시기는 아직 미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는 내용을 덧붙였다.

삼성의 이런 계획에 대해 재계는 그동안 경영권 편법승계 논란의 핵심 당사자였던 삼성이 지분 일부를 증여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것은 편법상속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즉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에버랜드 사건 등 편법승계 논란을 잠재우고 이 상무로의 승계를 진행시키려면 결국 세금을 제대로 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이라는 얘기.

이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17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지난 2월 7일 삼성그룹이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란 형태로 과거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향후 개선을 약속한 것에 이어 삼성의 변화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근거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소장은 "이런 평가 이면에 아쉬움이 있다" 면서 "지난 2월 7일 발표 후 벌써 석 달이 지났는데, 어째서 그 기간 동안 보다 적극적으로 이와 같은 조치를 가시화하지 않았는지, 신세계의 발표에 선수를 뺏긴 듯 서둘러 발표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고 말했다.

편법 승계 의혹 받아온 재벌 기업 어디?

사실 일각에서는 "신세계가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을 내는 것 뿐이다" 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을 가지고도 그동안 국내 많은 재벌 기업들이 편법과 불법 상속으로 사회의 비난을 받아왔기 때문에 신세계 측의 이번 발표가 더욱 신선하다는 것이 재계의 지배적 시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기업들은 겉으로는 투명 경영을 강조하면서도 총수 일가의 편법 상속 의혹에 있어서는 자유스럽지 못했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경영권 편법 상속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왔다.

먼저 경영권을 승계할 후계자가 그룹 주요 계열사의 유가증권을 헐값에 인수해 그 계열사 대주주로 올라선 뒤 순환출자 방식을 이용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삼성그룹. 삼성은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19.34%,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3%,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 46.85%,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 25.64%를 갖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져 있다.

때문에 에버랜드 경영권을 확보하면 삼성그룹 지배권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에버랜드는 지난 1996년 99억5천만원어치의 CB(전환사채) 125만여 주를 주당 7천700원에 전환할 수 있는 조건으로 발행했다.

당시 제일제당을 제외한 에버랜드 기존 주주였던 삼성 계열사들은 주식의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인수를 거절, 이건희 회장 역시 자신에게 배당된 13억원의 CB 인수를 포기했다.

그러자 CB의 97%가 실권됐고, 그 해 12월 에버랜드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 상무를 비롯 이 회장의 네 자녀가 이를 인수했다.

이 상무는 이듬해 이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에버랜드 지분 25.1%를 가진 대주주가 됐다.

즉 이 상무는 당시 '전환사채'(CB)라는 법망을 교묘히 피한 신종 기법을 이용해 세금 한푼 내지 않고 거대그룹인 삼성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발판을 확보한 것이다.

두산그룹 또한 두산산업개발이 (주) 두산을 지배하고, (주) 두산은 두산중공업을, 두산중공업은 다시 두산산업개발을 지배하는 식의 순환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부그룹 역시 순환출자 방식을 이용해 경영권을 대물림한 경우인데, 즉 동부한농이 동부정밀화학을 지배하고, 동부정밀화학은 동부제강을, 동부제강은 다시 동부한농을 지배하는 구조다.

김준기 회장이 동부정밀화학의 지분 14%를, 아들 김남호씨는 21.1%를 갖고 있다.

현재 뉴욕에서 공부 중인 김남호씨는 아직 본격적인 경영참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31살의 나이에 동부그룹을 접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가하면 참여연대가 '기회의 편취'로 주장한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상속 사례가 있다.

현대차는 자동차와 부품 물류사업을 할 목적으로 2001년 글로비스를 자본금 50억원에 설립하고 그 지분을 정몽구 회장이 40%를, 아들 정의선 사장이 60%를 각각 소유했다.

글로비스는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때 주식 시가총액이 1조원에 달하는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정 사장은 이 지분을 토대로 기아차 주식을 매집하는 방법으로 경영권 상속을 시도한 것.

글로비스 또한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와 순환출자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 곳의 대주주가 되면 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비상장 계열사인 SK C&C 지분을 계열사들로부터 헐값에 사들여 SK(주)와 SK텔레콤의 경영권을 확보한 경우다.

KCC 역시 지난 2003년 1월 정상영 회장의 차남 정몽익 사장에게 비상장사 코리아오토글라스 지분 20%를 액면가에 넘겨주면서 240억원이 넘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는 의혹을 샀다.

kyoung@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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