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나도 따라 하기) 마케팅’ 봇물
너도나도 원조, ‘울트라 캡짱 원조’까지 등장
2006-05-19 한종해 기자
삼성전자는 이달 안으로 ‘타임머신’기능을 갖춘 TV를 내놓는다. 타임머신기능 이란 시청자가 생방송을 보다가 잠시 자리를 비울 경우 생방송을 끊었다가 다시 그 다음 장면부터 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TV 속에 있는 저장장치가 생방송을 저장했다가 이를 순차 재생해준다. 산성전자는 경쟁사인 LG 전자가 내놓은 타임머신 TV가 월드컵을 앞두고 각광을 받자, 자존심을 꺾고 따라잡기에 나섰다.
에어컨도 마찬가지다. 외형만 봐서는 도무지 어느 회사 제품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200만원이 넘는 고급형 스탠드형(거실 등에 세워서 사용하는 제품) 에어컨은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가릴 것 없이 금색 또는 빨간색 계통의 외장재에 비슷한 문양을 집어 넣었다.
이런 미투 마케팅은 전자제품 시장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화장품, 각종 음료 등 요즘들어 너무 ‘심해’지고 있어 기업끼리의 신경전도 일어나고 있다.
우선 국내 1위 화장품 기업인 태평양은 LG생활건강이 태평양의 최고 효자 브랜드인 한방화장품 ‘설화수’의 고가 크림을 모방하면서 미투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설화수에서 고가 크림과 에센스를 한정판매로 내놓자, LG생활건강도 고가의 한반화장품 크림을 한정판매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태평양은 또 다른 미투 제품으로 자사의 콤팩트(화장 분)인 ‘슬라이딩 팩트’와 LG생활건강의 ‘모이스쳐 팩트’를 들고 있다. ‘슬라이딩 팩트’는 휴대전화 중 슬라이딩폰처럼, 콤팩트 뚜껑을 밀어서 열고 특이하게 뚜껑 바깥에 거울이 달려있다.
태평양의 허재영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업계에서 미투 마케팅이 횡행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광고와 모델까지 미투 작전으로 가는 것은 심하다“고 주장했다. LG생활건강이 지난 16일 태평양의 모델이었던 이영애씨를 자사 모델로 기용한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에 대해 LG생활건강의 이종원 홍보부장은 “고가 크림은 프리미엄(고급) 마케팅으로 나온 것으로, 태평양의 고가 크림과는 관련이 없다. ‘모이스쳐 팩트’도 LG전자의 초콜릿 슬라이딩폰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고, 흑백광고는 1월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타사와는 관련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또 “이영애씨는 아시아 진출을 위해 기용한 것”이라면서 따라하기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지난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투 상품은 히트상품 못지않은 생명력으로 상당수가 살아남아 업체 간 시장쟁탈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미투 마케팅’은 이미 경영학 교과서에 마케팅 기법 중 하나로 오를 정도다.
초코파이의 원조 격인 오리온 초코파이가 인기를 끌자 곧바로 롯데 초코파이를 내놓은 것은 업계에서도 유명한 일화. 또 롯데 오징어땅콩도 오리온 오징어땅콩을 맹렬히 추격하고 잇다.
하지만 롯데도 미투 상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2~3년 전 롯데의 회심작인 ‘자일리톨 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해태제과와 옛 동양제과가 각각 ‘해태 자일리톨’, ‘오리온 자일리톨’ 껌을 내놓은 바 있다. 롯데는 이에 대해 법적 소송도 불사했지만 ‘자일리톨’이 일반명사라고 인정돼 미투 제품에 대한 법적인 제재는 없었다.
“단지 겉모습을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경쟁사의 디자인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
제품의 겉모습을 경쟁사의 히트상품과 유사하게 만든 이른바 ‘미투(me too)' 제품에 대해 최근 법원이 잇따라 위법성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는 법원이 디자인권의 인정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 독창성이 뛰어난 디자인에 대해서만 선발업체의 기득권을 보호해 주고 잇는 데 따른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민사 5부(조용호 부장판사)는 12일 크라운 제과가 자사의 ‘콘칩’을 모방해 비슷한 포장의 ‘콘칩’을 만들어 판매한 오리온을 상대로 낸 디자인 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 항고심에서 “오리온 콘칩은 크라운 콘칩의 디자인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 항고심에서 ”오리온 콘칩은 크라운 콘칩의 디자인 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두 제품의 포장 디자인이 유사하다는 크라운 제과 측의 주장에 대해 “은박 재질에 제품명을 적고 내용물을 그려 넣는 디자인은 제과 류 포장에서 매우 일반적인 방식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단지 남보다 먼저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평범한 디자인을 법적으로 보호해달라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선발업체의 포장 디자인이 ‘지식재산’으로 인정받아 후발업체가 타격을 입은 경우도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바나나우유의 포장 디자인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빙그레와 해태유업 간의 소송에서는 선발주자인 빙그레가 이겼다. 당시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빙그레는 1974년 항아리 모양의 우유 용기를 개발, 이후 독점적으로 사용해 왔다”며 “해태유업이 비슷한 모양의 용기를 사용하는 것은 빙그레의 유명세에 편승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바나나우유의 용기가 여타 제품과 구별되는 독특한 모습을 지녔다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이 같은 법원의 결정으로 해태유업은 상품 출시 7개월 만에 포장 디자인을 바꿔야 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문선영 변호사는 “포장 용기에 제품의 모양이나 재료 등을 그려 넣는 단순한 디자인만으로는 디자인 권을 인정받을 수 없는 게 일반적”이라며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포장 디자인을 개발하는 것이 미투 제품으로부터 자사 제품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제과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아예 신제품 개발은 도외시한 채 잘 팔리는 경쟁업체의 제품을 복사하는 ‘미투 마케팅’을 공언하고 나선 업체들도 있다”며 “법원이 이 같은 모방 행위에 대해 보다 엄격한 판단을 내려야 시장 질서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