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건이 「왕 건」 되는 법

고건 전 총리, 부지런히 뛰어야 대통령된다

2006-05-25     곽호성 기자
대통령선거를 향해 ‘고 건’ 호가 안정 순항중이다. 그러나 정치권 주변에서는 고 건 전 총리가 지금처럼 조용한 행보만 지속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지금 뭔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할 때라는 이야기이다.

그러지 않아도 정치권에서는 고 건 전 총리가 앞으로 있을 가능성이 높은 정계개편 과정에서 뭔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금처럼 잠잠한 행보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박근혜 대표 피습사태로 이명박 대 고 건의 양대구도가 크게 흔들렸다는 사실은 고 건 전 총리가 앞으로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할 것이란 예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고 건 전 총리에게 정치권 관심집중

앞서 언급한대로 고 건 전 총리에게는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대략 이렇다.

① 사실상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현재 박근혜 대표가 대중의 동정 어린 지지를 받아 1위를 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이 바람은 조만간 꺼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바람의 영향 때문에 앞으로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 간격은 크게 줄어 들 것이다.

②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한 여권의 정권 재창출 카드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지율 문제를 놓고 생각해보자. 고 건 전 총리는 현재 지지율 1위나 다름없다. 박 대표에 대한 테러사건 직후 있었던 문화방송-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고건 전 총리는 21.1%의 지지율을 기록, 21.5%의 지지율을 기록한 박근혜 대표에게 불과 0.4% 차이로 밀렸다.

여론조사 오차와 테러를 당한 박 대표에 대한 동정여론을 감안해 본다면 실질적 1위는 고건 전 총리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시장은 18.1%로 밀려났다. 이명박 시장의 지지율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청계천 효과’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이명박 시장 역시 뭔가 새로운 ‘한 건’이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한나라당 내부로 눈길을 돌려 생각해보면 이명박 시장 대신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은 낮다. 앞서 말한대로 지금의 박근혜 지지바람은 어디까지나 동정여론이 큰 영향을 준 것이다. 동정여론은 시간이 흐르면 차츰 가라앉게 된다.

고 건 전 총리, 결국 반 한나라 대표 주자로 나설 것

이번 기사에서는 고 건 전 총리 문제를 다룰 것이므로 이명박 시장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현재로서는 고 건 전 총리의 행보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 건 전 총리가 한나라당으로 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점이다.

고 건 전 총리의 본적은 전북이다. 이는 곧 고 건 전 총리의 정치적 기반이 호남임을 말해준다. 이런 고 건 전 총리가 한나라당으로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한나라당에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거물이 버티고 있다. 아무리 고 건 전 총리가 상당한 국민적 지지율을 갖고 있다고 해도 한나라당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를 제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고 건 전 총리의 지지세력은 호남에 기반을 둔 참여정부에 실망한 유권자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참고로 똑같이 호남에 기반을 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국민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호남 지지세를 고 전 총리가 대거 흡수해 갔기 때문일 것이다.

정 의장과 고 전 총리는 비교해보면 일단 인물의 무게에서 고 전 총리가 앞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참여정부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유권자들이 많고 결국 고 전 총리가 현재 여당 혹은 정계개편 후 현재 여당을 승계하는 세력이라고 볼 수 있는 집단의 대선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 대중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간단히 말하면 반 한나라 연합세력 대권후보 결정전에서 정동영 의장이 고 전 총리를 누르면 고 전 총리의 지지도는 거의 대부분 정동영 의장에게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호남 민심은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는 후보에게 ‘올인’하기 때문이다. 고 전 총리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반 한나라 연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 건, ‘왕 건’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은?

결국 차기 대선은 열린우리당+민주당+민주노동당이 사실상 힘을 합치는 반 한나라 세력과 한나라 세력의 대결구도로 갈 공산이 높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민주당 연합에 직접적으로 끼지는 않으나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현실적인 판단으로 한나라당을 이기기 위해 열린+민주연합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열린+민주 대선후보 결정전에서는 국민 지지도 보다 단합된 지지세력이 더 많은 편이 당연히 유리하다. 국민경선의 형태로 치러질 대선후보 결정전에서는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편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국민 지지도 면에서 크게 뒤처진다고 정동영 의장이나 김근태 의원 측이 낙심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대선은 한나라 세력이나 열린+민주 연합 세력 양측의 세가 어슷비슷하므로 정동영 의장이나 김근태 의원 측이 단기전인 대선후보 결정전에서 1등만 하면 대선구도는 한나라 대 열린+민주연합의 팽팽한 대결구도로 가게 된다.

그렇다면 열린+민주연합의 대선후보 결정전에서 고 전 총리는 과연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국민 지지율과 대선후보 결정전에서 나타나는 열성 선거인단은 전혀 다르다. 국민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꼭 열성 선거인단의 숫자도 많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조직을 잘 다져 온 정동영 의장이나 김근태 의원 측이 더 유리할 수 있다.

고 전 총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반 한나라 세력 연합의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다. 즉 열린+민주 연합의 대선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단 열린+민주연합의 대선후보만 되면 그의 대선 승리 가능성은 상당해 진다.

고 전 총리는 삼국지의 ‘유표’를 생각해야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를 보면 유표란 인물이 나온다. 유표는 형주라는 비옥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표도 유비처럼 한나라 황실의 종친이었고 그리 우둔한 사람도 아니어서 그냥 큰 문제없이 형주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문제점은 난세 속에서 너무 평온하게 지냈다는 점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웰빙 권력자’였던 셈이다. 유표는 중원 전국의 제후들이 힘을 모아 동탁을 무찌르러 갈 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때 오갈 데 없는 처지로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유비가 조조가 원소를 치러 본거지인 허도를 비운 것을 보고는 형주의 병력을 동원해 조조의 본거지를 치자고 유표에게 제안했을 때도 유표는 거절했다.

나이 예순이 넘은 유표는 그저 형주를 지키며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데에만 안주할 뿐,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거대한 야망은 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유표가 죽은 뒤 형주는 조조의 손아귀로 들어갔다가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참패하여 유비의 세력권 하로 들어갔다가 다시 오나라로 가게 된다.

지금까지 고 전 총리의 행보를 눈여겨 보면 마치 유표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물론 한나라당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처지에서 고 전 총리의 행보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고 전 총리의 행보는 너무 소극적이었다.

무엇보다 고 전 총리의 약점은 2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세대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고 전 총리는 38년 생으로 2007년 대선에 이르면 거의 70세에 가까운 연령이 된다. 한마디로 다른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늙어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강력한 상대후보인 이명박 서울시장도 41년생이다. 그러나 이명박 서울시장의 경우에는 그가 몸담고 있는 한나라당이 원래 기성세대들 중심의 정당이라 연령에 대한 부담이 적다.

하지만 고 전 총리가 반 한나라 세력을 규합해 한나라 세력을 누르기 위해서는 2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세대들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고 전 총리 측은 원래 갖고 있던 높은 지지율에만 안주할 뿐 젊은 세대 공략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지 않았다.

강연정치-미니홈피 만들기 정도는 누구나 한다

이에 고 전 총리 측은 대학가 강연이나 인터넷 미니홈피 제작 등을 예로 들며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정도는 다른 후보들도 하고 있다. 당장 박근혜 대표 같은 경우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 몇 곡 정도는 같이 부를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박근혜 대표만큼 젊은이들과 친근해져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또 다른 문제는 고 전 총리 역시 뚜렷한 개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무난할 뿐이지 뚜렷한 매력이 없다는 점은 고 전 총리 측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열린우리당 내부의 젊은 세대들은 고 전 총리를 거의 구세대 인물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된 내용이지만 2002 대선후보 경선의 사례에서 봤듯 열린+민주 연합에서 대통령후보가 되려면 386세대와 2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가능하다. 386세대와 2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려면 그들을 열광시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 전 총리는 그들을 열광시킬만한 메시지를 던진 게 없어 보인다. 뚜렷한 색깔이 없고 단순히 안정감 하나만으로 승부하는 약점이 너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고 전 총리 측은 지난 2002 민주당 대선후보 결정전에서에서 이인제 후보의 참패를 거울 삼을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인제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지만 정작 결과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많은 386, 20대 젊은이들은 이인제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뚜렷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이들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선명하게 차이가 나는 후보를 원했고 그 결과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등장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정치상황은 지난 2002년과 유사한 환경으로 돌아가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매우 부진한 가운데 ‘박근혜 테러쇼크’로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이는 분명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이는 곧 부메랑효과에 의해 한나라당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변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집권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는 세력들이 어떻게든 한나라당의 대권장악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 고 건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고 전 총리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표를 보고 많은 것을 느껴야 한다. 난세의 치열한 경쟁에 끼지 않고 유유자적하고 살았던 유표 식의 삶은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의 삶이 될 수는 없다.

어차피 흘러 간 과거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고 전 총리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왜 고 건 인가?’ 하는 질문에 분명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그 분명한 답변은 2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세대들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 전 총리 측이 직시해야 할 문제는 현재의 지지율은 거의 거품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지지율은 호남 유권자들이 특별히 지지할 후보가 없어 고 전 총리를 한시적으로 선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곧 열린+민주연합 대선후보가 정동영 의장이나 김근태 의원, 혹은 제 3의 인물로 선정될 경우 즉각 사라질 지지세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고 전 총리 캠프는 지금과 같은 웰빙 행보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다.

고 전 총리의 핵심키워드는 무엇인가. 지난 2002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개혁’이란 키워드를 들고 나왔다. 이회창 후보는 ‘안정’이란 키워드를 들고 나왔다. 사회변화를 갈망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개혁’이란 카드를 치켜 든 노무현 후보의 편에 섰다.

그렇다면 5년 후 2007년 대선에서 각광받을 키워드는 무엇일까? 고 전 총리는 이것을 찾고 바로 이 키워드를 선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적어도 고 전 총리가 자주 이야기해 온 ‘실용’은 2007년 대선에서 각광받을 키워드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