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풍으로 박풍 잡으라우!’(?)

갑자기 북이 남북열차 시험운행 취소시킨 배경은?

2006-05-25     곽호성 기자
5월 25일로 예정되었던 남북열차 시험운행이 북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취소되어 버렸다. 지난 13일 남북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에서 열차 시험운행에 합의한 뒤 행사 진행을 거듭 다짐해 오던 북측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로, 남쪽의 여론 악화 및 남북관계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북측의 태도변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북 측이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 이렇다. 북 측은 24일 오전 ‘북남 철도 및 도로 연결 실무접촉 박정성 북쪽 단장’ 명의로 남쪽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시험운행은 예정대로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히고, 그 이유로 ‘쌍방 군사당국의 군사적 보장조처가 아직 취해지지 않고 있는 조건’과 ‘공화국(북)기를 악질적으로 불태우고 … 나라의 정세를 극도로 험악한 대결과 전쟁방향으로 끌고 가며 … 열차 시험운행과 같은 민족의 대사에 극히 불안정한 사태를 조성하는 형편’등을 시험 운행 취소의 이유로 제시했다.

정부 측 입장과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

한편 정부는 신언상 통일부 차관 명의의 성명을 통해 “남쪽 정세를 터무니없이 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열차 시험운행 무산 책임은 북쪽에 있음을 밝힌다”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24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는 “군부의 반발과 제동이 핵심(원인)”이라며 “23일 밤부터 북쪽 내부 각 기관의 의견조율을 거쳐 결국 최상층부가 군부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봐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리하면 정부 측 분석은 북한 김정일이 군부의 반발 때문에 열차 시험운행을 중단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북한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 내부에서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이 심해 김정일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연합뉴스 24일자 ‘김정일 리더십 위기오나’라는 기사를 보면 북한 군부가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가 자신들의 뜻대로 풀리지 않자 열차 시험운행을 반대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북한의 열차 시험운행 중단 문제가 매우 급작스럽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종석 장관은 한 주 전까지만 해도 북한 군부가 열차 시험운행 문제에 대해 동의했을 것이라고 매우 낙관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북측이 이 달 16∼18일 열린 제4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는 군 당국간 실무접촉에서 다룰 문제라는 자세를 내세울 때까지만 해도 북한 측 기류는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북측은 22일 실무접촉을 갖자는 우리측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23일에는 탑승자 명단을 교환하자는 우리측 제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8일까지만 해도 조용히 있던 북한 군부가 22일 이전에 김정일에게 강한 불만을 내비쳐 시험운행을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군부가 열차 시험운행 문제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면 왜 진작 시험운행을 중단시키지 않았을까.

경의선 열차 시험운행 일방중단은 박풍 잠재우려는 북풍 공작?

한편 국내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 측의 경의선 열차 시험운행 일방 중단은 박근혜 대표 피습 이후 불고 있는 ‘박풍’을 잠재우려는 ‘북풍’일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박근혜 대표가 피습당한 것은 5월 20일 오후 7시 20분 경이다. 국내 언론보도를 통해 20일 8시 이후로 전 국민에게 이 소식이 알려진 만큼 북한 역시 이 소식을 김정일과 북한 군부를 비롯한 북한 핵심 권력층에게 긴급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그 이후 북한 핵심권력층은 박근혜 대표 피습사태의 추이를 주의깊게 관찰했을 것이다.

국내 정치권에서 ‘북풍’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은 바로 이 과정에서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북한 측이 경의선 열차 시험운행을 중단시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박풍’이 증폭되는 것을 원천차단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박근혜 대표 피습사태 이후로 범인의 배후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며 새로운 방향으로 논란이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박풍이 커지면 좋을 게 없는 북한 측으로서는 새로운 이슈를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 박풍을 날려 버리려 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북한 측이 시험운행 중단같은 돌출행동으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도 지방선거에서의 한나라당 압승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박풍’이 계속 이어지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 박근혜 대표 피습과정에서 까딱 잘못했으면 박 대표가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져 자칫 잘못하면 2007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북한 측이 판단했을 수 있다.

냉정히 살펴보면 북한 입장에서는 ‘박근혜 대통령’보다는 정동영, 김근태 대통령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한나라당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대통령보다는 못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의 ‘북풍공작’ 분석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DJ 깜짝 쇼」 준비하나

또 국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북한이 DJ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일부러 남북 관계의 긴장을 고조시킨 뒤 DJ의 방북 과정에서 극적인 합의를 도출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농담 수준이지만 DJ의 방북 일정으로 확실시되고 있는 6월 하순에 김정일과 DJ가 텔레비전을 통해 한국팀 축구경기를 같이 시청하고 함께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월드컵 한국팀 경기일정은 6월 13일 한국-토고전이 열리고, 19일에는 한국-프랑스전이 열린다. 그리고 마지막 6월 24일에는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가 있다.

공교롭게도 6월 24일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가 끝난 다음 날이 6월 25일로 6.25전쟁이 발발한 날과 같은 날이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바로 이날 북한과 DJ가 깜짝 발표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북한과 DJ측이 북한 방문 일정을 6월 24일이나 25일쯤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소설같은 이야기지만 김정일과 DJ가 함께 24일 한국팀을 응원하고 25일 남북관계와 관련된 깜짝발표를 하거나 이벤트를 가지면 보수진영 측이 준비하고 있는 6.25 관련 행사 같은 것은 김정일-DJ 이벤트에 밀려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북핵 문제 등으로 인해 미국과 세계 각국의 압박을 받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한국의 민심을 잡아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4일 갑작스런 북한의 열차 시험운행 중단조치로 남북관계가 일시 경색되겠지만 그것이 오래 가지 않으리라고 볼 수 있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북한 의도대로 한 풀 꺾인 박풍

다시 열차 시험운행 중단조치와 박풍 제압 이야기로 돌아가자. 현재 ‘박풍’이 한 풀 꺾인 것은 사실이다. 만일 북한 측이 정말 시험운행 중단조치를 통한 여론몰이를 통해 박풍을 죽이려 했다면 실제로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한편 정동영 의장은 24일 민주당 및 고건 전 총리 지지세력과 연대할 뜻을 밝히며 또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열린+민주+고건 연대론은 이미 예전부터 나온 이야기여서 강력한 새로운 이슈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박근혜 대표 문제 일색이던 정치권의 분위기를 환기시켜 줄 정도는 된다.

특히 6월 하순에 DJ방북이 예정되어 있는 관계로 DJ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세력의 단합을 도모할 경우 DJ세력과 비 DJ, 반 DJ세력으로 정치권의 판을 다시 짤 수 있다. 정동영 의장은 발빠르게 사실상의 ‘DJ세력 재결집론’을 들고 나옴으로해서 지방선거 이후 있을 정계개편에서 중심의 위치에 서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북한 측의 일방적인 열차 시험운행 중단조치에 대해 노 대통령이 한 마디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 최고의 이슈메이커인 노 대통령이 한 마디 할 경우 즉각 새로운 이슈가 또 생겨 박풍은 저 멀리 뒤편으로 밀려 나갈 지도 모른다.

일단 ‘박풍’과 관계없이 5월 31일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여당 측을 비롯한 반 한나라 진영에는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반 한나라 연합에 북한도 힘 실어 줄 듯

이제 지방선거가 끝나면 대선만 남았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중도-진보진영이나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 모두 2007년 대선은 내줄 수 없는 중요한 선거다. 그리고 2007년 대선은 북한에게도 매우 중요한 선거가 될 전망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북한의 입장으로 볼 때는 2007년에 현 정권과 유사한 정권이 들어서야 유리하다. 물론 한나라당이라고 해서 특별히 북한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의 입장에 약간 더 가까운 태도를 취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앞서 정치권 일각에서 박풍을 잠재우기 위해 열차 시험운행 중단카드를 꺼내 들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이 현 정권과 유사한 정권이 들어서길 바란다면 박풍을 잠재우기 위해 시험운행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키는 행동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낫지 않았겠는가 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래 북한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 극대화를 위해 멀쩡히 잘 진행되던 남북교류에 찬물을 끼얹어왔다. 궁지에 몰려 있는 북한은 생존을 위해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 행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단순히 이번 시험운행 일방 중단조치를 군부의 항의에 따른 행동 정도로 생각하기보다는 다각도로 북한의 입장을 분석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도출해 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북한의 이번 일방 중단조치에 따라 보수진영은 북한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반 보수진영 측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대선을 빼앗길 경우 보수진영에 의해 남북 화해무드가 위협받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환기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런 식으로 반 한나라-보수진영 측에 힘을 실어 줄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의 북한 딜레마

이런 식으로 북한이 교묘한 한국 정치 개입전략을 펼 수 있는 것에 대해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을 쪽은 역시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북한 문제에 대해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연히 북한과의 화해협력에 동의한다. 햇볕정책에도 원론적으로 거의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 부시 행정부와 국내의 보수성향이 강한 한나라당 지지층이다.

당장 북한인권 문제 같은 것을 보면 한나라당의 고민을 잘 말해준다. 최근 인터넷 보수신문 뉴데일리는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과 함께 북한 인권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는 북한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개별 의원들 중심으로 북한 인권 문제 활동을 하고는 있으나 전 당력을 기울여 노골적으로 북한을 자극하지는 못하고 있는 처지다. 북한을 지나치게 압박한다는 국내의 역풍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북정서가 강한 소위 국내 극우세력과 이미지가 겹칠 수 있다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다.

한나라당 측도 아마 북한의 이번 조치가 ‘박풍’을 잠재우기 위한 계산된 조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북한이 결코 한나라당에게 있어 우호적인 변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을 수 있다. 북한은 최근 미사일 발사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이런 식으로 북한은 앞으로 있을 대선 전까지 미국과 날카롭게 각을 세우면서 한국 정계에 영향을 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 세울 수록 한국 내의 반 한나라 세력들은 더욱 긴장하게 된다. 한국 내 반 한나라 세력들은 전반적으로 한나라당이 미국의 지령에 의해 움직인다는 식의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시각은 386 이하의 젊은 세대일 수록 더욱 심하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미국에게 집요하게 저항을 해도 미국은 현재 북한에게 뚜렷하게 제재를 가할 수단이 없다. 이라크 문제가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군사행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렇다고 북한에 강력한 경제제재를 가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2007년에 대선이 있다는 사실을 미국 측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2007 한국 대선 대응 경쟁도 뜨거울 듯

미국에게 있어 한국에 반미정권이 선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악몽이다. 물론 한국에 노골적인 반미정권이 들어선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현재 공화당 정부로서는 현 정권 정도만 해도 상대하기 껄끄러운 정권으로 분류하고 있다.

미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보수층은 2007년 한국 대선에서 미국 보수층에 좀 더 우호적인 세력이 대권을 잡아주길 기대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주길 기대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한나라당이라고 해서 특별히 미국의 북한 압박에 열성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적어도 미국 보수층들 입장에서는 한나라당 측이 보다 말이 더 통할 상대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내 정보수집을 통해 한국 내 정치동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미국보수층들 입장에서는 이번 박근혜 대표 피습사태를 2007년 대선과 관련해 상당한 호재라고 평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박풍이 더욱 크게 확산되기 직전에 돌출행동을 벌여 그 바람을 꺾어버린 북한에 대해 한층 더 반감을 쌓았을 것이다.

2007년 대선은 단순히 한나라당 대 반 한나라 세력의 대결, 우리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한국의 차기 대권이 북핵 처리와 같은 북한 문제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며 한국이 세계에서 상당한 비중을 가지는 국가로 훌쩍 컸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국 측도 북한의 이번 돌출행동의 근본 목표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의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든지 간에 북한이 북풍을 통해 박풍을 잡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