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은행 불법대출 의혹 '일파만파'

도주자와 함께 사라진 56억원 어디?-본지 확인 결과 당시 지점장 '경남은행 본점에 근무?'

2006-05-25     권민경 기자

<시공사가 아닌 경남은행이 근저당권 1순위 설정... 왜?>

[매일일보= 권민경 기자] 올해로 창립 36주년을 맞은 경남은행이 불법 대출 도마에 올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2003년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선수촌 아파트 상가 분양을 맡은 (주) 리츠월드 대표 배 모씨가 공사비를 치르지 않은 채 분양금을 들고 도주한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상가 건설을 맡았던 시공사 신화종합건설(이하 신화건설)은 20억원이 넘는 막대한 손해를 입고 현재까지도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매일일보>에 이 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제보한 김모씨(가명)는 배씨의 도주는 자금 관리 은행이었던 경남은행 측의 도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즉 김씨에 의하면 당시 경남은행  이 모 동래지점장과 도주한 배씨 사이에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것.

실제로 자금 관리 은행이었던 경남은행은 공사 도급계약상 시공사가 근저당 1순위가 되야 함에도 은행을 1순위 근저당권자로 설정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미 폐쇄된 법인이었던 리츠월드에서 발행한 5억짜리 어음 가운데 3억원 가량을 몇 차례 연장을 거쳐 시공사 측에 할인해주기까지 했다.

김씨는 "이처럼 경남은행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벌여 배씨의 도주를 도왔고, 결국 힘없는 한 중소기업만 막대한 물적 손해와 정신적 피해를 입고 말았다" 면서 "지역 중소기업 육성을 취지로 한 은행으로서의 양심과 윤리를 버린 잔인한 행동이었다" 고 비난했다.

도주한 배씨, 경남은행과 공모했나?

현재 경남은행 전 동래 지점 이 모 지점장과 (주)리츠월드 배 모 대표는 불구속 상태다.

신화건설이 지난 2003년 7월 리츠월드와 경남은행을 상대로 한 형사 소송에서 이 전 지점장은 징역1년과 집행유예2년, 배씨에게는 실형 3년형이 구형.

제보자인 김씨가 주장한 배씨와 경남은행 이 전 지점장의 '공모' 의혹은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김씨는 먼저 지난 2002년 12월 시행사인 리츠월드 측에서는 곧 상가가 준공되면 시공사인 신화건설 측에 1순위로 100억 근저당 설정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씨에 따르면 "경남은행 측에서 신화건설에 '준공과 동시에 제3자 가압류를 방어하기 위해 은행에서 먼저 100억 근저당 설정을 해놓겠다. 대신 공사비는 문제없이 챙겨줄테니 걱정하지 말라" 고 했다는 것.

이에 신화건설 측은 경남은행이라는 이름만을 믿고 채권 확보 권리를 양도하고 근저당 설정 및 가압류 조치를 하지 않았다.

김씨는 "은행 측에서 100억 설정을 해놓고, 법인통장, 백지서류 등도 다 보관하고 있겠다고 했으니 신화건설에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은행을 믿은 것이다"고 말했다.

결국 당시 경남은행 이 전 지점장은 1순위 근저당 설정 100억원에 대한 리츠월드 측의 근저당 설정 서류를 보관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03년 7월 16일 상가가 준공됐고, 경남은행은 곧바로 100억원 근저당 설정을 잡았다.

문제는 바로 이것. 배씨가 대표로 있던 리츠월드는 2003년 6월30일자로 부산지방 국세청 수영세무서로부터 직권폐업된 상태였다.

즉 실체가 없는 사업장이라는 얘기. 그런데 경남은행이 100억 근저당 설정을 한 것은 상가 준공 이후의 일이므로, 결국 경남은행은 사업자 등록이 말소된 회사의 근저당 설정을 한 것이다.

경남은행, 유령 법인이 발행한 어음 할인?

한편 김씨에 따르면 이 전 지점장은 "공사비는 알아서 챙겨주겠다"는 말과는 달리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돈주는 것을 미뤄 왔다.

아마도 리츠월드 배 대표가 도주해 버리면 시공사인 신화건설 측도 같이 부도나고 도망가야 되는 상황이니 오기를 기다린 것 같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7월21일 상가를 공동담보로 해 100억이 설정, 개인분양자들에 대해 91억의 대출이 이루어졌다.

당시 시공사와 시행사가 연대보증을 섰는데, 7월21일은 이미 시행사 리츠월드라는 법인이 '없어진 회사'가 된 시기.

경남은행의 이상한 대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매일일보> 취재 결과 2003년 5월 경 리츠월드에서 5억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했고, 경남은행은 이 가운데 3억을 신화건설에 대출해 준 것(어음할인).

그러나 이 역시도 당시 리츠월드의 사업자 등록이 말소된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도저히 정상적으로 대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욱이 리츠월드는 15억원에 달하는 국세까지 체납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경남은행은 사업자 등록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도 확인하지 않고 어음할인을 했다는 말이다.

이뿐이 아니다.

김씨는 "배씨가 도주하기 하루 전인 7월 28일 상가 입주자 한 사람이 신화건설 측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와 '오늘 은행에 가서 돈(공사비)을 못 받으면 이제 받기 힘들 것이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어 "그 말을 듣고 신화 건설 관계자가 부랴부랴 은행에 갔더니 지점장 실에 배씨, 이 지점장, 상가 입주자 등 몇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며 "그런데 신화건설 사람이 들어가니까 배씨가 눈치를 보면서 은근슬쩍 자리를 떴다고 한다. 이후에 신화 측과 이 지점장 사이에 실갱이가 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 말했다.

결국 다음 날 배씨는 시공사에 공사비도 치르지 않은 채 분양대금 등 57억원 가량을 챙겨들고 도주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경남은행은 100억원 근저당 설정을 말소시켜줬다.

<매일일보> 취재 결과 경남은행은 29일 말소 서류를 접수시켰고, 통상 2~3일이 걸리는 것과 달리 당일날 바로 근저당 설정이 말소됐다.

김씨는 "결국 경남은행 측이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에 근저당 설정을 말소시켜줬고, 배씨는 거리낄 것 없이 도주할 수 있었다" 면서 "배씨의 도주 사실을 지점장은 미리 알았던 것이 분명하고 둘 사이에 뭔가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고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씨가 어렵게 털어놓은 또 다른 말에 의하면 "배씨 도주 하루 전날인 28일 이 지점장이 신화건설 한 관계자에게 '배 씨가 한 열흘 안 올지 모른다. 아마 얼마쯤 잠적해 있다가 와서는 공사비를 깎자고 할 것이다" 고 말했다" 면서 "지점장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이미 배씨의 도주 사실을 알고 한 소리가 아니겠느냐" 고 반문했다.

김씨는 "그런데도 이 전 지점장은 줄곧 시행사와 시공사간의 일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은 입행인에 불과하지 보증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

배씨 또한 오히려 신화건설 측을 비난하며 변호사를 고용해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고.

한편 경남은행 한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 "은행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다" 며 "굳이 지나간 일을 기사화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특히 취재 과정에서 이 전 지점장의 소재를 수 차례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매일일보>이 확인한 결과 이 전 지점장은 현재 경남은행 본사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전 지점장은 <매일일보>과 전화 통화에서 "현재 소송 진행 중인 사건을 기사화 시킨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경남은행은 당시 중도금 대출과 일부 개인 분양자 대출만 맡았을 뿐, 시행사와 시공사의 자금관리 은행이 아니었다" 고 반박했다. 이어 100억 근저당 설정에 대한 시공사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자 "근저당 설정 역시 시공사를 위해 한 것이 아니라 2002년 12월에 시행사와 대출약정 체결을 하고 설정한 것이다" 고 말했다. 또한 "신화건설 측 사람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현재 신화건설은 약 22억원에 달하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채 4년여간의 힘겨운 법정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앞으로의 소송 과정을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kyoung@sisaseoul.com
<심층취재 실시간 뉴스 매일일보/www.sisaseoul.com/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