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출렁’ 금융당국, 구두개입 나서…환율 상승세 멈출까
원/달러 환율 상승세 지속 전망…연내 1300원 돌파 전망도
2017-02-19 이경민 기자
[매일일보 이경민 기자] 북한 리스크와 저유가 등의 영향으로 19일 원/달러 환율이 5년8개월 만에 최고치인 1230원대를 넘어서자 외환당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구두개입’ 방식으로 외환시장 안정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선 당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원화 약세 쪽에 힘을 더 실어줄 대내외 요인들이 널려 있어 연내에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뚫을 것이라는 예측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등 당국이 외환시장 구두개입에 나선 것은 최근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지난 12일까지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 일중 변동폭은 평균 10.4원(평균 변동률 0.87%)으로 2010년 2분기의 12.8원(평균 변동률 1.08%) 이후 5년7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환율 변동폭이 커진 것은 한국경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요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국제유가의 하락 추세는 물론이고 중국 등 신흥국의 경기 둔화 우려,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 일본의 마이너스 정책금리 도입 등의 대외적 경제환경 변화가 우리 경제의 부담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이런 요인이 결과적으로 원화 가치를 떨어뜨려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낸다. 여기에 북한의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 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가 외환시장에 결정타가 되고 있다. 지난 16일의 한국은행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와 연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져 17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10.5원 급등했다. 19일도 원/달러 환율은 개장 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장중 달러당 1230원대를 돌파한 뒤 1239.6원까지 올랐다가 당국의 구두개입 소식이 알려진 뒤 반락해 7.0원 오른 1234.4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마감 환율은 2010년 6월11일의 1,246.1원 이후 5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문제는 이러한 환율의 상승세가 잦아들만한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올 1월 정책회의 의사록에서 새로운 경제 하방 리스크를 언급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감산에 반대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험회피 심리는 한층 커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율 결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밝혀왔으나 환율 변동폭이 줄지 않고 오히려 더 불안정해져 외환당국의 부담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이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0일 금융·경제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되면 정부와 협력해 안정화 조치를 취하는 등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며 대응 가능성을 열어놨다. 지난 18일에는 유 부총리가 한 발짝 더 나아가 “외환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너무 급격한 변동이 있으면 정부가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하는 게 원칙”이라고 언급하며 대응 가능성을 보였다.이날 환율이 장중 1230원대까지 올라서자 결국 당국이 시장에 구두개입하는 형식으로 진화에 나섰다. 한은과 기재부는 “최근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과 변동성이 과도하다고 생각하고 시장 내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대응에) 필요한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당국이 환율 상승시에 구두개입에 나선 것은 지난 2011년 9월 이후 4년5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는 시장의 과도한 불안감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외환시장에 매도하는 미세조정에 나설 수 있음을 예고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을 단행해 원/달러 환율 급등에 잠시 제동을 걸었으나 환율 상승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북한 리스크, 수출 경기 부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 등 원/달러 환율 상승을 이끌어온 요인들이 계속해서 환율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 의견이 나오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세는 한층 가팔라졌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250원까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며 “당국도 급격한 쏠림 현상을 조정할뿐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때보다 개입에 적극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당국이 원/달러 환율 하락이 아닌 상승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시장에 개입하려는 것과 관련해 최근 미국 의회가 환율 조작국에 제재를 가하는 내용의 ‘베넷-해치-카퍼(Bennet-Hatch-Carper·BHC) 수정법안’을 준비 중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하지만 시장에서는 연말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이달 말 원/달러 환율이 1,265원에 도달하고 올해 최고치는 1325원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기본적으로 국내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최근처럼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값 하락)이 급격하게 이뤄지면 불안감이 더 커져 수출 기업의 수혜보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