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실질가치 제자리인데도 美, 환율조작국에 韓 지정할 기세

韓, GDP대비 경상수지흑자나 대미무역흑자 비율 높아

2017-02-24     이수빈 기자
[매일일보 이수빈 기자]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했지만, 원화의 전체 교역상대국 통화 대비 실질가치는 1% 절하되는데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전 세계 경기가 둔화세로 접어들면서 각국이 자국 수출을 개선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절하하면서 원화의 실질가치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그럼에도 미국은 환율조작국 제재법안을 곧 발효해 빠르면 6개월 내에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기세다. 24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지수는 108.22로 2014년 말의 109.23에 비해 1% 하락하는데 그쳤다.실질실효환율지수가 하락하면 해당국 통화의 교역상대국 통화 대비 실질가치는 절하됐다는 의미다.실질실효환율은 물가변동까지 반영된 교역상대국에 대한 각국 돈의 상대가치로 각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파악하는 지표다. 이는 곧 수출여건을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같은 기간에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99.2원에서 1208.4원으로 10% 상승했다.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10% 하락한 데 비하면 원화의 실질가치 절하폭은 10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G20(주요 20개국) 중 유럽연합 의장국을 제외하고 통화가치가 절하된 국가는 12개국, 절상된 국가는 9개국이었다.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더라도 실질실효환율은 그대로란 것은 다른 통화들이 우리보다 더 약세로 가거나 우리하고 비슷한 약세를 기록해 수출시 가격경쟁력이 그대로라는 뜻"이라고 말했다.달러화 대비 원화가치 폭락에도 주요 교역상대국 대비 한국 수출의 가격경쟁력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이에 따라 한국 수출은 계속 급감하고 있다. 중국의 경기둔화로 전 세계 교역이 급감하고, 국제유가 폭락으로 수출단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세계무역기구(WTO)가 집계한 올해 1월 한국의 수출액은 366억2300만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18.8% 줄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들어 2월 20일까지 수출액은 587억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3% 감소했다.지난달 한국의 전년 동기대비 수출 감소율은 중국(-11.2%), 일본(-12.8%)은 물론, 인도(-13.6%), 브라질(-17.9%), 칠레(-14.15%) 보다 큰 수치다.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 기준 가치가 거의 그대로라는 것은 수출경쟁력도 그대로라는 의미"라면서 "달러화 대비로는 약세지만, 엔화와 유로화에 비해서는 덜 약세인 것"이라고 말했다.김권식 국제금융센터 신흥시장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통화가치 하락이 수출 개선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약화했다"면서 "세계 수출물량 감소와 함께 글로벌 생산분업이 이뤄지면서 통화절하 효과가 중간재 수입비용 상승으로 상쇄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같이 원화의 실질가치는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미국은 6개월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모양새다.미국 백악관은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환율조작국에 제재를 가하는 베넷-해치-카퍼(Bennet-Hatch-Carper) 수정법안에 조만간 서명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GDP대비 경상수지흑자나 대미무역흑자 비율, 자국 통화 저평가를 위해 지속적인 개입을 하는지 여부, 실질실효환율 수준 등이 통화 저평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한국경제연구원 김성훈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법안 발효시 미국이 1차 제재를 적용할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경제규모나 여러 국제정치지형을 볼 때 중국이나 이스라엘보다 한국이나 대만처럼 경제규모가 작고 정치적 영향력도 미미한 국가들이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국가는 1년간 국제통화기금(IMF)이나 WTO를 통한 간접제재를 받는다. 이후에도 저평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미국 기업의 신규투자를 받을 때나 해당국 기업이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을 때 불이익을 받는 직접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김 위원은 이에 따라 "한국정부가 해당 법안의 파급력을 사전 점검하고 외환·통상 외교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한국은 중국, 대만, 이스라엘과 함께 2000년 이후 지속적인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해왔고, 최근 3년간 전체 경상수지가 GDP대비 6%를 웃돈다는 게 한경연의 설명이다.앞서 미국 재무부는 작년 10월 의회에 보고한 하반기 주요 교역대상국의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계속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면서 "한국 당국은 외환 조작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