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는 조조에게 배워라

김근태 의장은 냉철한 결단력을 길러라

2007-06-14     곽호성 기자
정치인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키워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이명박 시장을 생각하면 ‘불도저’를 떠올린다. 박근혜 대표를 생각하면 ‘박정희’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김근태 의장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를 떠올릴까.

김 의장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은 ‘민주화’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김 의장에게 부정적인 사람들이거나 김 의장의 최근 행보를 눈 여겨 본 사람들은 ‘우물쭈물’이란 단어를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의도의 햄릿, 김근태

2005년 조선닷컴에서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안되는 이유’라는 기사 시리즈를 연재한 바 있다. 이 시리즈에서는 주요 대권주자들의 약점이 쭉 소개되었는데 김 의장과 관련된 약점으로 조선닷컴이 거명한 것은 다음과 같다.

① 취약한 대중성

② 아직도 벗지 못한 재야 이미지

③ 가족 월북설

④ 진취적 메시지 부족

⑤ 지역기반 없음

⑥ 결단 못하는 햄릿형 리더십

⑦ 노 대통령과의 갈등설

⑧ 과거 민주화 경력에 안주하며 젊은 층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점

조선닷컴이 거명한 8가지의 문제점 가운데 내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는 것은 ‘결단 못하는 햄릿 형 리더십’이다. 사실 나머지 문제점들은 김 의장의 우유부단한 언행과 관련이 적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취약한 대중성 문제도 김 의장이 진작에 딱 잘라 대중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마음 먹고 달려 들었다면 해결되었을 것이다. 경직된 듯한 재야 이미지나 과거 민주화 운동 경력에만 매달려 있는 듯한 모습도 마찬가지다.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김 의장과 삼국지에 나오는 원소가 유사한 면이 많다고 생각된다. 원소는 조조의 숙적으로 북방 일대에서 엄청난 힘을 갖고 있던 영웅 가운데 하나였다. 어떻게 보면 원소는 유비나 손권 이상의 힘을 갖고 조조를 압박했던 영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최근의 김근태 의장

그러나 아직은 원소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일단 최근의 김근태 의장 행보를 살펴 본 뒤에 원소와 김 의장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최근 김 의장을 둘러싸고 김 의장이 ‘오른편’으로 가는 것이 아느냐는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한마디로 열린우리당이 ‘개혁’ 대신 ‘실용’의 길로 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개혁과 실용이란 사실상 개혁은 ‘중도좌파’의 길을 의미하며 실용은 ‘중도우파’로의 길을 의미한다. 지금 여당 주변에서 계속 잡음이 나오고 있는 것은 중도좌파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일부 여당 고정 지지층들과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갈등 때문이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은 왜 오른쪽으로 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부동산정책과 세금정책을 재검토하자는 이들은 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2007년 대선에서 왼편에 있는 이들은 결국 열린우리당이 중심이 되는 반 한나라 세력을 선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주된 이유는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구 자체의 원성 때문일 공산이 높다. 보통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은 지역구에 거주하는 호남 출신 국민들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경우가 많다. 물론 2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진보주의자들의 지지도 크지만 그것 이상으로 큰 것은 호남이 고향인 유권자들의 힘이다.

여기서 문제는 20대부터 30대까지의 진보성향 유권자들은 ‘중도좌파’ 노선을 고집할지 몰라도 호남을 고향으로 둔 기성세대 유권자들은 중도좌파 노선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데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혼란과 지지세력 구성의 연관관계

당장 열린우리당 지지세력의 주류라고 볼 수 있는 호남 민심(호남지역 민심 과 호남을 고향으로 둔 수도권 및 기타지역 유권자들의 민심)은 지금 경제가 살아나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들은 주로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로 봉급생활자 못지 않게 자영업자들이 많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지금 이들이 바라는 것은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열린우리당은 지금 그것을 못해주고 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열린우리당이 낮은 지지율에서 헤매고 있는 주된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주로 2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 고정지지층들은 더욱 진보적인 방향으로 가자고 열린우리당을 압박해 오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간단히 말해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가자면 세금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그 세금을 누구한테 걷는단 말인가. 그리고 그 세금을 더 짜내서 국민들에게 뿌려주면 경기가 나아진단 말인가.

진보적인 유권자들은 가진 자에게 세금을 걷어 빈자들에게 나눠주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주장한다. 빈자들이 돈을 쓰게 되므로 서민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이렇게 정책을 추진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에서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상식적으로 세금을 더 내게 되는 열린우리당 지지 유권자들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항의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그럼 이 유권자들은 어디로 갈까. 민주당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자기 지지자들을 빼앗기게 되니 중도좌파 지지층의 주장을 수용해 줄 수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오른편으로 계속 가자니 중도좌파 지지층의 반대가 큰 것이다.

김근태의 결단은 언제?

김 의장의 최근 입장은 이렇다. 레이버투데이 14일자 기사를 보면 김근태 의장이 13일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혼선이 없도록 질서있게 토론하면서 풀어나가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의장은 14일 비대위에서는 ‘할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질서있는 토론의 광장을 열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물론 민주사회인만큼 토론은 해야 한다. 하지만 결단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지금 김 의장에게는 신중하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번에도 오랫동안 생각만 거듭한다면 김 의장과 열린우리당은 또 다른 고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김 의장과 비교되는 삼국지의 원소는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그의 비참한 패망은 그 우유부단함이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이제부터는 원소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원소는 사세에 다섯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의 후예로 준수한 외모와 튼튼한 기반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당연히 곁에 인재들도 많았다. 후한 말기 조정에서 중군교위라는 벼슬을 하고 있던 원소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동탁에게 ‘천하는 동공의 것이 아니오’라고 직격탄을 날리고는 고향인 기주로 달아나버렸다.

이후 원소는 고향인 기주 근처에서 힘을 길러 공손찬을 멸망시키고 황하 이북(하북) 제 1의 강자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한편 조조는 여포와 원술을 제거하고 원소를 잡아 주변을 완전히 평정하기 위해 힘을 기르고 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출신배경에서 원소와 조조의 차이가 김 의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차이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김 의장이 서울대 출신으로 운동권 엘리트 출신인 반면 노 대통령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고 민주화운동에도 늦게 입문했다고 볼 수 있다.

원소와 조조의 대결

원소는 경쟁자 조조를 제거하고 사실상 중원의 최강자 자리를 굳히기 위해 무려 70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해 조조를 공격하게 된다. 여기에 맞서는 조조의 군대는 고작 7만에 불과했다. 병력 면에 있어 조조의 절대 열세였지만 조조는 잘 훈련된 정예병사를 동원했기 때문에 초기 전투는 일진일퇴의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조조군의 숫자가 워낙 적었기 때문에 조조군은 차츰 원소군에 밀리게 된다. 그러자 조조는 본거지인 허도로 후퇴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본거지 허도에 있는 최고 참모 순욱에게 의견을 물었다. 순욱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 후퇴하면 천하를 원소에게 빼앗깁니다. 요지를 굳게 지키며 기회를 잡으십시오’

조조는 순욱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고 일단 버티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조의 진영에 원소의 군량창고 방비가 허술하다는 중요한 첩보가 입수되었다. 조조는 이에 군대를 보내 원소의 군량창고를 불 태워 버리니 원소군의 사기가 무참히 꺾였고 조조군의 공격 앞에 원소군은 그냥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부자 망해도 3년 간다고 후퇴하던 원소는 병력을 다시 수습해 이번에는 20만이 넘는 군대로 다시 조조를 공격했다. 조조는 방심하지 않고 참모 정욱의 계책을 받아들여 배수진을 치고 전투를 벌여 다시 크게 승리하게 된다.

결국 이로 인해 화병이 난 원소는 도망치다 죽게 되고 원소의 아들들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서로 싸우다 조조의 손에 모두 쉽게 평정되고 말았다. 조조를 끊임없이 압박해 왔던 북방의 영웅 원소는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것이 삼국지에 나오는 관도 대전이다.

원소의 패망 원인

사실 원소는 조조를 멸망시킬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당장 조조가 유비를 치기 위해 움직일 때 유비는 원소 측에 밀사를 보내 군을 일으켜 조조의 근거지를 급습하라고 계책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원소는 우물쭈물하다 막내아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그 계책을 물리쳐 버린다. 후세 역사가들은 당시 시점이 정월 이었던 관계로 유교를 중시했던 원소의 입장에서 볼 때 병력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정월은 백성들의 농사에 있어 중요한 달이기 때문이다. 더 설명하면 새해 벽두부터 군대를 일으켜 백성들을 전쟁터로 끌어내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것은 원소의 실수였음이 분명하다. 득보다 실이 컸다는 이야기다.

원소의 결단력 부족을 말해주는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원소는 관도 대전 이전에 조조와 싸우는 것을 반대하는 최고 참모 전풍과 저수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원소는 자신의 측근들만 편애하고 나머지 부하들은 멀리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재들을 제대로 활용 못하는 실수를 범한 원소는 결국 조조의 적은 군대에 무참하게 패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한마디로 냉철한 결단력 부족이 원소의 몰락 원인이었던 셈이다.

원소의 패망과정은 김 의장이 반드시 주의깊게 생각해 보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아래에서 조조의 참모 곽가가 원소와 조조를 비교한 것을 보면 김 의장의 문제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에서 조조의 참모 곽가는 원소와 조조를 비교해 이렇게 말하고 이런 이유 때문에 조조가 원소를 제압하고 천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① 원소는 허례허식을 좋아하여 예절이 번다(煩多)하다

② 조조는 천자를 모시고 있는 강점이 있다

③ 원소는 법을 무시하고 관용(寬容)과 인(仁)만 중시하는 유가(儒家)를 숭상하지만 조조는 법(法)을 숭상한다

④ 조조는 원소보다 판단력이 앞서 있으며 책략이 뛰어나고 결단성이 있고 인재(人才)를 항상 지성을 다하여 모셔 오는 강점이 있다.

대선 경쟁에 임하는 김 의장은 이제 더 이상 ‘햄릿’이어서는 안된다. 김 의장은 조조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김 의장의 경우 ‘결단력’을 기르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김 의장의 이념이나 철학 같은 문제는 일단 나중 일이다. 김 의장은 지금 자신의 모습과 아래 조조가 평하는 원소의 모습이 혹시 많이 일치하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기 바란다. 물론 그 반성의 기간은 짧으면 짧을 수록 좋다.


“(조조가 말하기를) 나는 원소의 사람됨을 알고 있소. 원소의 뜻은 크지만 지혜가 적고, 겉모습은 엄정하지만 속으로는 겁이 많은 사람이요. 원소는 질투심도 많은 편이오. 원소의 군대를 보면, 병사는 많아도 편제가 부실하고 장수들 또한 교만하면서 명령 계통도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아요(위서, 무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