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권력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개헌론은 ‘대망론’(?)

2006-06-16     김명은 기자
<고건, 4년 중임제 개헌은 논의 可, 권력구조 개편은 不>
<朴-李 개헌은 다음 정권에서 해보자, 孫 이번에 하지 뭐>
<野, 與 개헌론 집권연장 위한 정략적 기도, ‘정치적 꼼수’>
<국민들 개헌 필요성 느껴, 시기는 차기 정권 출범 후로>

[매일일보=김명은 기자]향후 대선정국의 뇌관으로 꼽히는 ‘개헌’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국회의장직을 물러난 김원기 의원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또다시 개헌에 대해 언급하면서 개헌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동안 한나라당내 대권주자들 간에는 이견이 있어왔던 사안이지만 여당측에서는 김 전 의장을 포함해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정동영 전 의장 등이 꾸준히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해왔던 터라 김 전 의장의 이번 발언이 개헌 논의를 새로운 국면으로 끌고 갈지 주목된다.

한편 고건 전 총리도 이와 관련해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여서 향후 정계개편과 맞물려 개헌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여론은 대체로 개헌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나 그 시기와 형태에 있어서는 차기 정부 출범 후와 미국식 4년 대통령중임제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권이 개헌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 국민들을 상대로 향후 희망 개헌 정부 형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들이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4년 중임제의 특성과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지지정당과 정파의 의견에 따라가는 결정이 이루어진다면 국가 장래에 큰 손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게 이유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이럴 때일수록 정치권 눈치 보기에 급급해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힘껏 내야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개헌 공론화에 불 지피나

지난달 말 17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마치고 물러난 김원기 의원이 지난 9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개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중심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꾸던지 일부를 유지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분권시켜 총리 권한을 강화하고 국회의 정치중심 역할을 정비, 강화하는 이원집정부제로 정치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지난달 29일 자신의 퇴임사를 겸한 제58회 국회 개원식 기념사에서도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중심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내각책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암시했던 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이면서도 호소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개헌의 공론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차지하고, 대통령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현행 대통령제는 대한민국밖에 없는 제도”라며 “이로 인해서 정치 행태가 대결정치, 싸움정치로 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역주의 정치구도 역시 대통령중심제 아래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개선될 길이 없음을 주장했다.

김 전 의장은 또 한나라당이 대선 전 개헌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개별적으로 대화를 해보면 적어도 3분의 2 정도의 의원들이 지금의 헌법제도에 문제점이 있으므로 바꿔야 한다는 데 동의를 한다”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들이 당의 중심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김 전 의장도 개헌을 내년 대선 전에 할 수 있도록 지금 논의를 시작하되 강행처리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여야가 합의해 올바른 방향으로 결론지어지길 희망한다는 뜻이다.

한편 김 전 의장이 이처럼 퇴임을 전후해 기회가 날 때마다 개헌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배경을 두고 ‘대망론’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있다.

그의 주장이 다름 아닌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얼마든지 가능한 지적이다.

하지만 그의 심의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는 것보다 더 큰 관심사는 과연 헌정사적으로 큰 획을 그을 만한 일이 이번 정권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여당내에는 조기 개헌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의원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을 여당이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때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순수한 정치적 의도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집권연장을 위한 정략적 기도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개헌에 대해서는 대선 예비후보 선호도 1위의 고건 전 총리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얼마전 지방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고 전 총리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총리는 대통령 임기(5년)와 국회의원 임기(4년)가 엇갈려 해마다 선거를 치르는 등 국력 낭비가 심각함을 지적하고 오는 2008년은 20년 만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같은 시기에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번 기회에 개헌을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고 전 총리의 말대로라면 2007년 대선 전에 개헌 논의가 끝나 차기 대통령부터는 4년 중임제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회의원 선거도 동일 년도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특히 김 전 의장처럼 일부에서 주장하는 내각제에 대해서도 정권이 자주 교체되는 특성을 가진 제도로 분단국가의 현실에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김 전 의장 등 열린우리당측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개헌을 사실상 공론화시키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당지도부와 각 대선주자들간에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중순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개헌논의의 공론화 시점과 관련해 “선거법이든, 헌법이든 고치려면 내년 대선에서 정당이나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심판을 받은 다음에 논의하는 게 옳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의원은 지방선거가 끝나고도 대선까지 1년 반이나 남는데 현 시점에서 개정을 논의하면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의원의 이 같은 언급은 현 정권내에서의 개헌논의에 반대하고 차기정권에서 개헌논의를 시작하자는 의미로, "개헌안을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표로 평가받자"고 주장하는 한나라당 차기 대선주자중 한명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입장을 같이하는 것이다.

한편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개헌 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한 만큼 공감대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논의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시기를 못박지 않은 채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 전 대표는 권력구조개편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과 정,부통령제 도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지난 5월에 열린 관훈클럽 초정 토론회에서는 개헌문제와 관련해 “각 정당이 개헌안을 만들어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은 뒤 다음 총선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개헌시기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언급을 했다.

박 전 대표의 이같은 입장은 이재오 의원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박 전 대표는 2008년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맞아 들어가고 2012년 같은 해에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를 함께 치를 수 있기 때문에 만약 개헌을 한다면 이번이 좋은 시기가 될 수 있다면서도 선거가 가까운 시점에서 개헌 논의를 하면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블랙홀처럼 모든 문제가 개헌을 향해 빨려 들어갈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내다봤다.

반면 또다른 대선주자의 한명으로 손꼽히는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올해 안에 공론화 해 조기에 정치권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입장이다.

이밖에도 한나라당내에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로 안상수 의원은 지난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에 대해 상당수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다”며 본인은 의원내각제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는 여권이 주장하는 개헌론은 정권 연장을 위한 또다른 ‘정치적 꼼수’라며 개헌론 주장의 취지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부류도 있다. 한마디로 개헌론에 대해 야당은 “글세~”라는 입장이다.


국민들 다수 개헌에 ‘찬성’, 그러나 차기 정부 출범 후에 하자

지난 6월 1일 (주)동서리서치가 주요현안 관련 여론조사(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여(제주 제외),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서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물어본 결과, 우리 국민 55.6%가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는 36.6%, 모름,무응답 6.8%.

그러나 개헌시기에 대해서는 53.9%가 차기 정부 출범 후에 하는 것이 좋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안에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은 19.1%, 내년 중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은 15.7%였다.

그리고 향후 희망하는 개헌 정부 형태를 묻는 질문에는 41.7%가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는 대통령은 외교, 국방에 총리는 내치에 전념하는 이원집정부제 20.1%, 의원내각제 17.2% 순이다.

특이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의원내각제보다는 대통령제의 변형인 이원집정부제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당이 본격적으로 개헌 주장을 내세우기 전에 이루어진 결과다. 앞으로 정계개편과 함께 대선과 맞물린 개헌 공론화가 이뤄진다면 이 추이가 어떻게 변화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정부형태에 대한 국민들의 이론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자칫 정치권의 분위기에 휩쓸려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선택이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미국식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경우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의 나라를 통해 익히 잘 알려진 제도이나 이원집정부제의 경우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이원집정부제’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가 결합된 절충식 정부형태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대통령제를 채택하고는 있으나 실제적으로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많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이원집정부제의 경우 양제도의 핵심 골격이 합쳐진 정부형태라는 것이 지금의 정부형태와는 크게 다르다.

즉, 통치권력이 대통령과 총리에게 이분화되어 있는 정치체제(政治體制)로 원칙적으로는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통치권을 행사하고 총리가 행정권을 행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준(準)대통령제 또는 제약된 의원내각제라고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바이마르헌법의 정부형태를 들 수 있는데, 당시의 독일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면서도 민선 대통령에게 상당한 실권을 부여하는 대통령제적 요소를 강하게 가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에 따라 운영에 차이가 있어왔다.

현재 정치권이 주장하는 이원집부제가 정확히 어느 형태를 의미하는지가 아직 불분명하다.

이원집정부제가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접목시키는 기준이 애초부터 명확하지 않은 제도이기 때문에 법적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실제적 운영에 있어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다.

과거 책임총리제 얘기가 나왔을 때에도 현행법상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는 제도의 틀 안에서는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고려대 장영수 교수(헌법전공)는 “정치권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선 부정확한 부분부터 명확히 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현명한 판단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개헌과 관련해 헌법 전문가 4명 중 3명꼴로 대통령의 임기에 대해 4년 중임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해 한국공법학회가 ‘헌법 개정, 어떻게 볼 것인갗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앞두고 학회 회원 1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 밝혀졌다.

설문조사 중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51%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48%는 개헌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개헌을 할 경우 대통령의 임기에 대해 공법학자의 76%가 4년 중임제를 지지했다.
반면 현행 헌법의 5년 단임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3%에 불과했다.

개헌지지자들은 개헌이 필요한 이유로 ▲민주화, 문민화 등 국내 정치 환경의 변화 ▲경제, 사회적 여건의 변화 ▲국제환경과 남북관계의 변화 등을 꼽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헌법 전문가들이 보수적인 시각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개헌의 필요성조차 부정하는 성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아무래도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정부형태 개정 논의와 별도로 헌법 전체구조와 헌정사적인 분석을 통해 법적 안정성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나름의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헌법학자들은 개헌이 정략적으로 이용될 위험성을 우려해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견해도 있지만 일단 개헌을 하게 된다면 대통령의 임기 형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것이 낫다는 입장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개헌론의 핵심은 대통령 단임제의 개선으로 모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는 의견도 없지 않으나 대선주자들이나 국민들의 대다수, 그리고 전문가들에 이르기까지 미국식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가장 많이 선호하는 것으로 볼 때 앞으로 개헌론의 방향이 대통령 임기형태의 변경으로 흐르리라 예상된다.

mekim@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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