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한국?'.. 인권유린 고통받는 베트남 여성

후불제 결혼, 한국 왔다 리콜 남는 건 빚 밖에 없어

2007-06-19     이재필 기자
차를 타고 한적한 시골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가에 ‘베트남 처녀와 맞선 보세요’라는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과의 결혼이 낯설지 않은 현재. 이러한 현수막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통 생각하는 결혼이라는 단어와 맞지 않는 단어들로 장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혼, 재혼 상관없음’, ‘후불제 가능’ 등 결혼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단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결혼이 돈으로 행해지는 매매수단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는 이 현수막들은 베트남 처녀와의 결혼을 알선하는 홍보물이다. 이는 베트남여성들이 국내 남성과 결혼을 함에 있어 문제가 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의 불법행위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발표한 통계청 보고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외국인과의 혼인은 43,121건으로 2004년 35,447건 대비 21.6%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2005년 총 혼인건수의 13.6%에 달하는 것으로 혼인 부부 100쌍 중 13.6쌍이 외국인과 혼인한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이 자료에서 주목할 것은 한국남성과 외국여성과의 결혼이 31,180건으로 72%를 차지했다는 것인데, 외국인 신부의 국적은 중국, 베트남, 일본 순으로, 특히 베트남 여자와의 혼인이 2004년에 비해 136.5%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한국 남성과 동남아계 여성의 이주 결혼이 급증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여초 현상이 짙게 나타나는 농어촌을 중심으로 베트남여성들이 자리를 잡음으로서 나타나난 현상이다.

그러나 이처럼 외국여성과의 혼인이 급증하는 가운데 한국으로의 이주를 감행한 여성들이 국제결혼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 일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9일 인천발전연구원에서 개최한 “이주여성실태와 정책적 지원 방향” 워크숍에서 ‘인천여성의 전화’ 김성미경 부회장은 “결혼중개업체는 송출국 중개업자와 호텔, 서류대행업자 등이 결합한 조직형태로, 최대 이윤을 노린 단기적인 결혼 성사를 ‘패키지 상품화’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전문저널 ‘일다’의 한 기사에서 김 부회장은 “신부 대기자 합숙소가 중개업체들과 연계돼 있고 이들 여성들은 결혼이 성사될 때까지 선불금 때문에 이탈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한 경우들도 있다”며 “심지어 베트남 현지를 관광하는 형식으로 호치민 시 등지에 있는 신부대기자 합숙소에서 불과 한 시간 내 100여 명의 여성을 선 본 뒤 선택을 하면 ‘합방’하는 것까지 포함돼 있는 패키지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베트남 여성이 선불금 형식으로 빚을 지고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한국 남성과 살다 남성이 ‘리콜’을 선택하게 되면 빚과 함께 베트남으로 넘겨져 감금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임신과 인공유산, 처녀막 재생 수술 등 신체에 대한 유린도 일어나고 있다고 김 부회장은 부연하며 중개업자들이 판매자의 입장으로 베트남 여성들을 사람이 아닌 상품화 하는 등 인권유린이 심각한 상태임을 전했다.

결혼 상품화 인권 유린 심화, 강력한 처벌법 시급

이처럼 늘어나는 외국여성과의 결혼이 하나의 상품으로 변질됨으로 인한 외국여성들의 인권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지금. 이들을 위한 대처가 필요함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12일 서울여성플라자 엔지오센터에서 열린 ‘정부의 결혼이민자 가족 정책 다시보기’토론회에 참가한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국제결혼이 급속히 증가하는 원인부터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의 영향으로 아시아에서 ‘빈곤의 여성화’ 현상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이주의 여성화’가 가속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결혼이 가속되는 것‘이라면서 ”여성들이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은 경제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시아의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남성들은 대부분 성비의 불균형, 자아실현을 위한 여성의 결혼기피 현상 등을 이유로 한국의 결혼시장에서 소외된 주변화 된 집단”이라면서 “이들이 아시아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며느리, 성적 파트너, 2세 출산과 육아 등의 가부장적 체제 안에서의 성역할”이라고 설명하며 한국 남성이 이들을 동등한 입장으로 보지 않고 있음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날 토론회에서 불법적인 결혼중개로 인해 이주여성이 겪는 인권유린도 한시 바삐 시정되어야 함을 설명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소라미 변호사는 “정부가 내놓은 지원 대책은 인권침해적인 국제결혼 중개 자체를 차단하기보다는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은 방관하고 그 이후의 정착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라며 “중개과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국제결혼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인권침해적인 국제결혼 중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등록제, 허가제’로 규정하여 관리하기 보다는 강력한 처벌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소 변호사는 “처벌법을 마련하는 것은 국제결혼 중개의 문제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며 “강력한 형사처벌로 중개과정을 보다 투명하고 인권적인 절차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hwona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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