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현상 여전…통화정책 약발 안듣나
미래 불확실성에 실물경제 효과 제한적
2017-03-17 이경민 기자
[매일일보 이경민 기자] 요구불예금 회전율이 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함에 따라 우리 경제에 ‘돈맥경화’ 현상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이에 따라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통화정책의 효과 논란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에 이어 3월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대외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효과가 불투명하다고 강조했다.기준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시장의 기대는 한은의 동결 발표 이후 가라앉았다.한은의 통화정책 효과가 기업 투자나 가계 소비 등 실물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고리가 약해졌다는 점은 경제 지표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되고 있다.한은이 2014년 8월이후 기준금리를 연 1.0%포인트 내렸지만 효과는 기대에 미치자 못하고 있다.통계청의 가계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해 가계의 소비성향은 71.9%로 지난 2003년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지갑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던 셈이다.기업 투자도 위축되기는 마찬가지다.지난해말 기준으로 기업의 사내 유보금액은 590조7000억원으로 전년 말의 520조9000억원 보다 69조7000억원(13.4%)이 늘었다.이처럼 요구불예금 회전율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시중에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단기 부동자금은 지난해 말 기준 약 931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에 달했다.이같은 상황은 경기 둔화 등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한은에 따르면 올해 1월 제조업의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직후 수준으로 악화됐다.연초부터 중국 경제의 불안과 국제유가 급락, 수출 감소, 북한발 지정학적 리스크 등 악재가 잇따른 결과다.기업과 가계의 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의 효과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한은이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주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을 9조원 확대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고민에 따른 조치다.돈이 시중에 돌지 않는 만큼 필요한 기업에 맞춤형으로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의도다.다른 국가의 사례를 보더라도 통화정책의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양적완화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분석이다.이에 정부의 재정정책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출 및 소비활성화 정책으로 유효수요를 늘리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우려가 별로 없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효과도 커질 수 있다”며 “재정정책과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