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인제 대통령’의 조건

2006-07-07     곽호성 기자
이인제 의원은 한때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대통령직을 뒀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인제 의원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물론 그만큼 언론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있다. 정치인들이 신문-방송과 같은 언론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이유는 그만큼 정치인생에 있어 언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신문-방송에 더 나오는 것이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인제 의원의 전성기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그를 다루었지만 지금은 거의 그를 다루는 기자들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이인제 의원의 정치적 입지는 좁아져 있다.

'이인제 대통령'은 가능한가

지난 4월 26일 데일리안 기사를 보면 이인제 의원이 2007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치권 주변에서도 이인제 의원의 2007년 대선 출마설은 거의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당선 가능성이다. 현실적으로 이인제 의원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07년 대선은 한나라당 후보와 반 한나라 세력 통합 후보 간의 양자대결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인제 의원이 반 한나라 세력 통합후보가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인제 의원이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마누라와 자식’만 남기고 다 바꿔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선 불복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해야 하며 잦은 소속정당 변경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이인제 의원은 어떤 핑계를 대도 경선불복 문제를 피해 나갈 수 없다. 얕은 꾀를 내서 경선불복 문제를 벗어나려 들지 말고 냉정하게 경선 불복 사실을 시인하고 국민들에게 용서와 양해를 구해야 한다. 대중은 쉽게 분노하고 또 쉽게 용서한다. 그리고 쉽게 잊는다.

이제부터는 ‘이인제 대통령 당선’을 위해 이인제 의원 측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보겠다.

① 경선불복에 따른 국민에 대한 사과

② 모든 것을 바꾸는 것

현재 이인제 의원의 이미지는 매우 나쁘다. 그는 경선불복과 잦은 소속 정당 변경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그의 강점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외모가 이제는 오히려 약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약점이 되버린 강점

지금부터 약 10년 전, 이인제 의원이 97 대선을 준비할 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것이 대단한 강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강점이 아니다. 낡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이인제 의원의 온 몸에서 묻어난다. 이인제 의원의 전반적인 주장 역시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 맞는다고 보기 힘들다.

97 대선까지만 해도 이인제 의원을 신선한 이미지의 리더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결국 이것은 이인제 의원이 대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면 본인의 이미지를 대폭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차피 이인제 의원은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반 한나라 세력 안으로 흡수될 수도, 그렇다고 한나라당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처지다. 죽으나 사나 국민중심당에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인제 의원은 국민중심당 후보로 출마해도 한나라당의 사표 공세에 시달릴 공세가 크다. 그러니까 이인제 후보를 지지해봐야 죽는 표만 많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이인제 후보에게 돌아올 표는 얼마 되지도 않는다. 이 의원은 별 성과도 없이 대통령선거만 한번 더 치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을 이 의원 스스로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 의원이 믿을 수 있는 것은 국민적 지지 뿐이다. 이 의원에게는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과 같은 전국 단위의 대형 조직이 없다. 그렇다고 정치자금이 흔한 것도 아니다. 이제는 국민들의 자발적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 외에는 2007년 대선에서 선전할 길이 없다.

국민들의 자발적 지지를 이끌어 내는 법

굉장히 부정적인 비유이기는 하지만 히틀러의 집권과정을 생각해보자. 히틀러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초단기간 안에 집권했다. 이 의원이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고 하나 히틀러의 출발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은 조건이다. 물론 이 의원이 히틀러와 비슷한 정치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초단기간 안에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하는 이인제 의원의 입장을 고려해 히틀러의 예를 든 것 뿐이다. 히틀러는 당시 불안하던 독일의 정국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열망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2등 국가로 전락한 독일이 히틀러의 영도 아래 영국-프랑스를 능가하는 초일류 국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대중에게 준 것이다. 물론 그 믿음은 허상이었고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을 험난한 전쟁의 길로 강제로 끌고 가고야 말았다.

마찬가지로 이 의원이 초단기간에 국민적 지지를 다시 받고 싶다면 과거의 잘못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세계 제일 국가로 한국을 끌어 올리겠다는 비전을 널리 알려야 한다.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열강의 압력을 꺾어 버리겠다는 자세를 명확히 함으로서 독일 국민들의 광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이 의원이 히틀러처럼 극우 정치를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새로운 한국, 초강대국 한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와 명쾌한 논리만 있으면 다시금 이인제 의원은 재기할 수 있다.

열성적인 1만 지지자가 무기력한 100만 지지자보다 낫다. 이 의원은 대중들을 설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논리를 개발해 1만 친위부대부터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 의원의 논리로는 대중을 설득하기 어렵다. 이 의원은 냉정히 현실을 보고 변화한 젊은 세대의 심리에도 맞는 새로운 철학을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인제와 원술

삼국지에는 원술이란 인물이 등장하는데 원술이란 인물은 이인제 의원과 닮았다. 그렇다면 원술은 어떤 인물인가?

원술은 원소의 사촌동생으로 원소에 비하면 모든 점에 있어 처졌으나 명문가의 후예라는 후광을 업고 남양이란 지역에서 세력을 갖출 수 있었다. 원술은 손견의 아들 손책을 부하로 두고 세력을 넓혀가다 난데없이 황제를 칭할 궁리를 했다.

별로 세력이 대단할 것이 없었던 원술이 황제를 칭한다는 것은 주변의 제후들을 쓸데없이 자극할 수 있는 것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으나 욕심에 눈 먼 원술은 황제를 참칭해 버렸다.

이후 원술은 쓸데없이 주변에 많은 적을 만들어 나갔다. 본래 손책의 것이었으나 병력을 빌려주고 담보로 받은 옥새를 손책에게 돌려주지 않아 손책을 적으로 돌렸고, 여포와 유비와도 마찰을 빚어 두 사람도 적으로 돌렸다.

엄연히 한나라 황제를 조조가 받들고 있는 판에 원술 스스로 황제를 칭했으므로 한나라 조정과 조조 입장에서 볼 때 원술은 반역자였다. 결국 조조는 반역자를 응징한다는 좋은 이유를 내세워 여포-유비-손책까지 끌어들여 연합군을 만들고 원술을 공격하니 원술은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원술은 회남지역으로 밀려 갔는데 거기서 제대로 전열을 준비해 세력을 확대할 궁리는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백성들만 혹사를 시켜 다시 세력이 크게 줄어들 게 된다.

세력이 격감해 본거지가 위태로워지자 원술은 옥새를 사촌 형인 원소에게 넘기고 원소의 세력 안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회남을 떠나지만 유비의 5만 군사를 만나 싸워 참패하고 만다.

원술의 비참한 최후

원술은 유비군에 당해 간신히 목숨을 구해 어느 작은 성에 은거했다. 결국 양식이 떨어지게 되고 조악한 식사로 끼니를 이어가는 처지가 되자 호화롭게만 살던 원술은 주방 책임자에게 꿀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주방책임자는 꿀물이 없다고 대답하고는 원술을 비웃었다.

주방책임자가 저를 비웃는 것을 듣고 원술은 화가 나서 고함을 치다 피를 토하고 죽어 버렸다. 원술의 남은 부하들은 원술이 죽은 것을 알고 너도 나도 도망쳐 버렸다. 버려진 원술의 가솔들은 도적들의 손에 모두 살해당했다. 원술이 갖고 있던 옥새는 조조의 손으로 넘어갔다.

원술의 패망원인은 다음과 같다.

① 주변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② 작은 성공에 만족해 오만과 사치에 빠진 점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원술은 주변의 군웅들을 모두 적으로 돌렸다. 오직 힘이 있어야 살아남는 난세에는 최후의 순간까지 적보다 우군이 많아야 한다. 삼국지의 시대와 같은 난세는 현재의 정치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정치판 역시 힘이 있어야 살아남으며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군도 없는 법이다.

또 다른 원술의 실수는 작은 성공에 만족해 오만과 사치에 빠진 점이다. 중원의 절반도 차지하지 못했으면서 성급하게 황제의 자리에 오른 원술은 사치에 빠져들어 정작 자신의 힘을 기르는 것은 소흘히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원술은 치열한 군웅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이인제 의원은 원술의 몰락에서 배워야

앞서 말한대로 이 의원은 원술과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작은 성공에 집착해 오만에 빠져 든 것이 첫 번째 닮은 점이고 주변에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 두 번째 닮은 점이다.

우선 이 의원은 ‘깜짝 놀랄 젊은 후보’로 지목되어 출세길에 오른 뒤 지나치게 오만해졌다. 그 오만의 결과가 경선불복이었고 그 경선불복 때문에 이 의원의 정치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경선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계속 선거에 임했다면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되었다면 이회창 승리의 공신 가운데 한 명으로 이인제 의원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

이회창 대통령 시대에 당내 기반을 잘 다져 2002 대선에 재도전했다면 오히려 이인제 의원이 대통령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이 의원은 2002 대선경선에서 대세론만 믿고 경계를 게을리하다 노무현 후보에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이것 역시 이 의원의 오만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그 다음 주변을 모두 적으로 돌린 것도 이 의원의 실수이다. 이 의원은 이미 한나라당을 떠났으므로 한나라당과도 사실상 적대관계에 가깝다. 열린우리당 측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민주당과 친한 것도 아니다. 그에게는 이제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세력인 국민중심당 세력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정치 세계는 단순하다. 적보다 친구가 더 많은 자가 승리하고 권력을 갖는다. 적이 너무 많으면 정치 세계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과거를 후회해 봐야 다 헛일이다. 이 의원은 과거는 묻어두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다. ‘이인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인제 의원은 출발선에 다시 서서 국민을 우군으로 돌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만을 버려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수많은 국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진실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면 이 의원은 재기할 수 있을 것이며 2007 대선에서 어느 정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의원의 사례는 일반 시민들 역시 주의깊게 봐 두어야 할 사례이다. 우리는 원래 불완전한 인간이다. 다른 사람의 사례나 역사를 보고 우리는 그 과오와 성공의 원인을 배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혜로운 자는 타인의 실패와 성공에서 배우지만 지혜롭지 못한 자는 자신이 직접 피해를 당해야만 깨닫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길 권하며 나 자신 역시 이인제 의원보다 나을 것 없는 과오가 많았던 사람이란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