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믿을 만 한가? 91% 가짜

유기농 비싸야 더 잘 팔려 유통사 고가정책도 한 몫

2006-07-09     한종해 기자

백화점, 할인점에서도 친환경 매장이 점점 확대되고 있고 동네마다 하루건너 하나 꼴로 다양한 브랜드를 내건 친환경 전문매장이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비싼 가격만큼 유기농 제품이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어디에도 없다.

<b>친환경 관련 행정력의 한계 드러내</b>

전문가들은 국내 친환경농산물 인증과정은 물론 사후관리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친환경 농법을 시행하는 농가와 친환경 농산물 출하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이를 관리할 전문 인증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

지난 5년간 친환경농업 농가가 23배 늘어나는 동안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출장소 23개 추가에 그쳤다. 늘어난 출장소에 전담인력이 1명씩 배치됐다고 해도 불과 23명 증가한 셈.

농관원 관계자는 “인증 및 사후관리 전담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상급기관에 인력 충원을 요청했지만 반영이 안 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농관원의 사후점검에 의한 고발과 인증취소, 정지 등의 행정조치 건수는 지난해 158건에 불과했다. 2004년 291건, 2003년 165건보다 오히려 줄어든 수치다. 친환경농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만큼 행정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친환경제품 시장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 친환경농산물 생산 기반은 매우 취약한 편이다. 따라서 친환경시장에 진출하는 국내 식품, 유통업체들은 주로 외국산 친환경농산물을 들여와 가공하거나 완제품 형태 가공식품을 수입해 시장경쟁을 벌이고 있다.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수입 친환경농산물은 2003년 904t에 불과했으나 2005년 8500t 으로 증가했다. 최근 3년 동안 국내 친환경농산물 생산량 대비 수입 친환경 농산물 인증량 비중을 보면 2003년 4%, 2005년 22%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내산 인증 유기농산물 물량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으나 수입 유기농산물과 수입 유기가공식품 물량은 매년 2~3배씩 늘어나는 추세다.

수입 친환경농산물 대부분은 중국 등지에서 수입되며 친환경 두부, 콩나물, 두유 등 원료로 사용된다. 완제품형태로 수입돼 국내에서 유통되는 친환경 가공식품은 지난해 한 해 동안 대략 1000여 개 품목에 이른다. 영양식품, 과자류, 음료류가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수입 친환경제품은 국내 인증을 받지 않는다. 아예 인증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

농관원이 매년 공개하는 국제인증기구나 해당국 인등기구 인증서만 첨부하면 통관에 문제가 없다. 해당국 인증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국내에서 거를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는 셈이다. 수입 친환경 가공식품 역시 원산지 인증만 있으면 오케이다. 물론 국내 인증이 아직 가공식품에는 부여되지 않고 있는데다 국내에 유기농 가공시설을 제대로 갖춘 기업이 없는 탓도 있지만 소비자 처지에서는 수입업체들이 ‘국제 ○○○인증기관 인증을 얻었다’고 광고하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12일 충북 옥천에 위치한 유기농 과자 공장. 마트와 편의점에 유기농 과자를 납품하는 이 공장에서는 유기농 과자 제조가 한창이었다. 과정은 여느 과자와 다를 바 없다. 믹서기에서 밀가루를 밤죽한 후 성형기에서 모양을 찍어 구워내면 된다. 유기농 과자와 일반 과자의 차이는 원재료에 있다. 유기농 밀가루 등 유기농으로 만들어진 원료를 사용해 만들고 엄격한 유기농 기준에 맞춘 시설에서 생산해야
유기농 과자다.

문제는 국산 유기농 사공식품도 많지 않을뿐더러 가공식품에 대한 인증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이 공장에서 유기농 과자를 만드는 원재료 역시 대부분 수입 산이다. 밀가루는 키르기스스탄 산, 설탕은 아르헨티나 산, 분유는 독일산이다. 수입식품에 대한 국내 인증은 아예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는 유기농 가공식품은 사실상 인증의 사각지대나 마찬가지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 증가로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국내 소비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이용한 친환경가공식품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식품연구원 박성훈 선임연구원은 “농관원에서 하는 유기농 가공품에 대한 인증을 받은 품목은 1%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유기농 가공식품 중 대부분은 인증 없이 자의적으로 ‘유기농’이라고 표시한 제품들인 셈이다.

현재 식약청에서 인정하고 있는 국가별 인증기관은 총 280개(2005년 기준)에 달한다. 인증마크도 그만큼 다양해 소비자들로서는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검사도 강제 사항은 아니다. 원료 수입국에서 인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정부 부처간의 밥그릇 싸움도 유기가공식품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현재 유기가공식품에 대한 표시기준은 식약청에서, 인증규정은 농림부에서 갖고 있다. 두 부처는 서로 인증을 주관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

박성훈 선임연구원은 “유기가공인증은 유기농축산물의 유기 품질이 가공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소비자 입에 들어갈 때까지 훼손 오염되지 않게 보증하는 것”이라며 “인증제도의 일원화가 안 된다면 유기농 표시의 신뢰도도 높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어촌사외연구소 관계자는 “특히 중국산 친환경 농산물은 유기농 인증을 줄때 생산과정이 유기농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를 검증하기보다는 농약이 검출되는지 여부만 검사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은 우리나라의 저 농약, 무 농약 단계에 해당 한다”고 지적했다.

<b>친환경 농산물 6년 사이 30배 증가</b>

친환경농산물 생산은 2000년대 들어 크게 증가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친환경농산물 생산량은 99년 2만6646t이었으나 2005년에는 약 30배 증가한 79만7747t에 달했다.

친환경농산물 인증 실적도 급증세다. 농관원에 따르면 친환경 인증 농가 수는 99년 1306호에서 지난해 5만3478호로 매년 85.7%씩 증가했다. 인증 면적은 99년 875ha에서 지난해 4만9807ha로 늘었다.

소량다품종으로 유통되는 친환경농산물은 직거래가 활발한 편. 그러나 최근 친환경 농산물 수요가 늘면서 다양한 유통 경로가 생겨나고 있다. 전체 친환경 농산물 유통에서 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15~20%, 생산자조직은 30~35%, 한살림과 생협 등 소비자단체가 15~20%, 전문유통업체를 통한 비중은 30~35% 정도를 차지한다.

<b>비슷한 제품도 유통사 따라 천차만별</b>

최근 시중에 유통 중인 친환경 농산물 가격을 조사한 결과 일반 농산물보다 최소 2배에서 많게는 8배 가까이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친환경 상품이라도 유통업체에 따라 가격도 제각각이었다. 현대백화점 본점에서 유기농 깻잎(30장)은 1700원에 팔리고 있다. 농협 하나로 클럽에서 판매되는 일반 깻잎은 같은 규격이 370원이었다. 가격차가 최고 5배가 넘는다.

유기농 오이(1개)도 현대백화점 2100원, 롯데백화점 1050원, 이 마트 840원이었지만 농협 하나로 클럽 일반 오이는 300원으로 유기농 오이가 일반 오이에 비해 최고 7개 비쌌다.

수입 친환경 식품은 일반상품과 가격 차이가 더 커진다. 현재 국내에서 거래되는 친환경 가공식품은 대부분 수입 산이다.

수입산 유기농 디 카페인 인스턴트커피(100g)가 1만9000원인데 반해 네슬레 초이스 디카프(100g)은 4분의 1 값인 5020원, 수입 유기농 옥수수 콘(330g. 8500원)은 청청원 스위트 콘(340g, 1150원)의 8배에 가깝다.

심지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웨하스의 경우 유기농 바닐라 맛 웨하스(100g, 4800원)는 해태 바닐라 맛 웨하스(64g, 450원)의 10배를 훌쩍 넘는다.

이처럼 친환경 제품 가격이 일반 제품 보다 더 높은 것은 기본적으로 대량생산과 화학비료 처리를 하지 않는 친환경 농산물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김창길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기농산물은 일반농산물에 비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고 관행농법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화학비료 대신 가격이 2~3배 비싼 유기질비료를 사용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위적인 조절이 가능한 수요와 공급에도 원인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의 가격 책정이 적정 프리미엄을 상당 부분 초과하는 하례가 많다”며 “유기농산물이 프리미엄 급 농산물로 시장에 위치되어 판매가가 과다 책정된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가격이 높아야 좀더 믿을 만한 제품으로 보인다는 논리인데 그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가 지고 있는 셈이다.

<b>유기농 비싸야 더 잘 팔려?</b>

친환경 농산물은 왜 이렇게 비쌀까. 전문가들은 생산비 차이를 가장 큰 이유로 중 하나로 꼽는다. 친환경 농산물의 유통단계 자체는 일반 농산물에 비해 특별히 복잡하다거나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생산단가에서 일반 농산물과 1.5배정도 차이가 난다.

친환경농법을 사용하면 노동력이 일반농법에 비해 많이 들어가고 유기질 비료 등의 생산에 소요되는 자재 가격 역시 매우 높다. 연관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생산농가에서 일일이 발품을 팔고 인력을 투입해서 해결해야 하는 일도 많다.

미국에서는 연관 산업이 다양하게 발달해 있어 유기농 농가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광물질 비료, 유기농 전용 해충방지제 등을 사다 쓸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유기농법은 특성상 완정 정착까지 3~5년이 걸리고 그 동안 비용이 많이 투입도리 수밖에 없다.

생산단가는 높지만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떨어지는 점도 가격을 올리는 원인이다.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일단 친환경농법 시행 농가가 최초 3~5년간은 제대로 농법을 시행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안정된 공급과 유통을 위해 대형 유통단지와 같은 전문 유통채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통해 현재 전체 농산물의 3.5% 수준인 친환경 농산물 물량이 7% 정도가 되면 가격도 20~30% 정도 저렴해 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통과정의 마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일부 대현 유통업체들은 친환경농산물과 일반 농산물간 마진율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 비싸야 잘 팔린다’는 인식 때문에 일부러 고가 정책을 취하는 업체도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친환경 농산물은 수급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일반 상품보다 5~6%정도 높은 마진을 적용 한다”고 말했다.

유기농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유기농 제품의 높은 가격 수준에 대해서는 상당히 저항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농 상품과 일반 상품의 가격차이는 5~10% 정도가 적정다고 생각한다는 것. 시중의 유기농 가격이 일반 제품의 2배 이상 비싼 점을 감안하면 현재 가격보다 40% 이상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뉴질랜드 등 유기농 선진국에서는 유기농 제품과 일반 상품의 가격차가 10~20%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 유기농 산업이 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가격이 하락해야 한다는 설명도 된다.
한종해 기자jhhan10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