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임을 위한 행진곡과 방아타령” 파문…국가보훈처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국가보훈처 “국가기념식에서 관례적으로 사용됐던 노래, 국민께 심려 끼쳐 죄송”

2010-05-18     최봉석 기자

[매일일보=최봉석·이한듬 기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앞으로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에 열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선 이같은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됐다. 반대로 다음과 같은 ‘흥겨운’ 노래를 들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노자 좋구나 오초동남 너른 물에 오고가는 상고선은 순풍에 돛을 달고 북을 두리둥실 울리면서 어기여차 닻감는 소리원포귀범이 에헤라이 아니란 말인가 에헤에헤~ 에헤야~ 어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반 넘어 늙었으니 다시 젊기는 꽃잎이 앵도라졌다."지나가는 개도 “뭔가 이상하다”고 웃을만한 일이 벌어졌다.정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지 않는 대신 경기도 민요인 '방아타령'을 연주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를 옹호하는 보수진영에서조차 “해도 해도 너무하는 일”이라는 반응이다.한마디로 5.18 영령들이 분노하고 있고 5.18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지난 30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5.18 추모곡으로 불려왔고, 지난 2004년부터는 정부의 공식 5.18기념식에서 제창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이명박 정부에서 치러지는 5.18 30주년 기념식에서는 부를 수 없게 된 사연은 뭘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5.18 기념식 공식행사 내용 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5.18유가족 대표의 '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 순서를 아예 없애버렸다.

임을 위한 행진곡, 경과보고 삭제

국가보훈처의 이 같은 행동은 5.18 유가족들의 거센 반발을 유도했다. 5.18 단체는 도청 앞 광장이 아닌 구 묘역에서 따로 행사를 개최하는 등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명백히 정략적이고 5.18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또한 5.18 기념식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 등으로 30주년 기념식의 의미가 완전히 퇴색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증폭되고 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방아타령은 "노자 좋구나…반 넘어 늙었으니 다시 젊기는 꽃잎이 앵도라졌다"는 가사로 잔칫집에나 어울리는 내용이다. 누리꾼들은 “5.18 기념식이 잔칫날인가. 학살자들에 의해 무참히 죽어간 이들은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는 날인데 그런데 잔칫집에서나 부르는 방아타령을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부른 것으로 이는 5.18광주민중항쟁을 철저히 현 정부가 모독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인식이 없다는 반증”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 중이다.한 30대 시민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보기에 5.18은 국민이 학살된 비극의 날이지만 우익의 입장에선 '권력을 잡은 경사스런' 날”이라며 “그러니 '지화자~'란 노래를 부를 만도 하다”고 씁쓸해했다.이명박 대통령의 5.18 기념식 불참은 이 같은 논란에 부채질을 더하는 형국이다. 또한 이 대통령의 기념사에서 언급된 '민주주의 발언'도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이 대통령은 18일 "우리는 아직 민주사회의 자유에 걸맞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말하기 어렵다"면서 "많은 분열과 대립이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민주영령들의 피땀으로 성취된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가 그 정신과 문화에 있어서도 성숙·발전되고 있는지 거듭 성찰해봐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이 대통령은 특히 ‘대독 기념사’를 통해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생산적인 대화와 토론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면서 "법을 무시한 거리의 정치와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기대는 일이 적지 않다"고 언급해, 야권의 반발이 예상된다.

5.18 행사장에서 법을 무시한 거리 정치 비판 왜?

한국 민주주의 생명인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을 넘어 세계적인 민주와 인권운동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데, 4대강 세종시 등으로 국론을 분열시킨 책임을 지고 있는 이 대통령이 아이러니하게 ‘민주주의의 성숙’을 운운하고, 나아가 ‘법을 무시한 거리의 정치’ 등을 언급하면서 5.18 행사장에서 ‘촛불 시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처럼 해석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국민은 시련에 찬 민주화의 고비마다 5·18민주화운동으로부터 꺼지지 않는 빛을 발견해왔다"면서 "또한 광주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화는 평화적으로 성취됐다"고 말했지만, 이 대통령의 ‘대독 기념사’를 두고, 5월 단체들은 현 정부에서 5.18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에 5.18을 5.18 사태라고 세번이나 얘기했고, 광주민주화행사에 2년째 불참했다면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행사를 폄훼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대표는 이어 "이번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배제됐고, 행전안전부가 공무원 가족들의 참배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기막힌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에 이어 5.18행사 불참을 밝혔고, 여기에 '임을 위한 행진곡'도 금지라니, 아예 5.18을 역사에서 지우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죽음을 불사하고 전두환 군부독재 싸웠던 열사들과 광주시민군의 넋을 기리는 노래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리지 않는 행사라면, 그 행사는 5.18민중항쟁과 무관한 반(反)민주적 관변행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도 이날 광주시당에서 열린 ‘살려라 경제, 희망캠프’ 선대위 회의에 참석,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식순에서 제외한 것과 관련, "저도 80년대 초부터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시위현장에서 매일 불렀던 노래"라면서 "엄숙해야 할 기념식장에서 노래 한 곡 부르냐, 안 부르냐 문제를 갖고 분위기를 망친 그 미숙한 조정능력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사정이 이렇자 야권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광주문제를 보는 시각이 과거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현 정부의 5.18, 과거 군사정권 시절로 회귀하나?
 
이래저래 논란이 확산되면서 행사를 주관한 국가보훈처는 “방아타령은 국가행사에서 관례적으로 사용하는 곡”이라고 해명했다.

국가보훈처는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의식 한 듯, 본 행사 직전 문제의 곡을 제외하고 안치환의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대체 연주하며 행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곡(방아타령)을 기념식에 앞서 리허설에서 연주해 본 뒤 행사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 안치환의 ‘마른 잎 다시 살아나’로 변경 연주했다”며 “리허설 자리에서 곡이 바뀌는 것은 종종 있어온 관례”라고 밝혔다.당초 ‘방아타령’의 선곡 배경에 대해선 “국가기념식에서 관례적으로 사용됐던 노래”라며 “지난 4.19혁명 50주년기념식에서도 같은 노래를 사용했다”며 일각에서 주장하는 '5.18 정신의 훼손'과는 무관한 일임을 강조했다.그는 이어 “그동안 국가행사에 문제없이 사용되던 곡이기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 사용했을 뿐인데 이렇게 까지 논란이 커질 줄은 몰랐다”며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라고 전했다.아울러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외한 배경과 관련,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행사를 주관했던 담당부처와 회의를 거쳐 조만간 공식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