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처럼..." 결혼 전 프러포즈 다 '뻥'
맞벌이 가정, 가사와 육아 아내 전담 85% 이상
2006-07-14 이재필 기자
특히 한 결혼중매업체의 조사 결과 40~50대에선 맞벌이 비율이 10% 선에 그치고 있는 반면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들의 경우 70~80%가 맞벌이 부부라는 조사결과가 나와, 앞으로 이들의 비율은 빠르게 늘어날 것임을 짐작케 했다.
이처럼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는 가운데, 통계청의 한 리서치 조사결과 이들 가정에서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비율이 남편과 함께 분담하는 비율보다 8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2일 통계청의 ‘기혼가구 특성별 가사분담 형태’ 자료에 의하면 맞벌이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를 부인이 전적으로 맡고 있는 가정의 비율은 전체 기혼가구의 33.6%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맞벌이를 하면서 남편과 부인이 반반씩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민주형’ 가정 비율은 4.2%,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가정은 0.6%로 극소수에 그쳤다.
또한 통계에 포함된 남편만이 경제생활을 하는 외벌이와 기타를 제외한, 맞벌이 부부만을 놓고 봤을 때는 무려 85%가 넘는 가정에서 여성이 가사를 전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 외벌이, 부인가사 전담: 38.6%, 기타: 23%)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취업주부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역할 분담은 여전히 여자가 맡아야 한다는 가부장적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잡지사 기자 생활 8년 차의 강 모씨(32.여). 강 씨는 기자생활 중 지금의 남편 박 모씨(36.남)를 만나 4년 전 결혼 했다. 강 씨는 박 씨가 청혼 당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당신이 하는 기자 일만 열심히 할 수 있게끔 도와주겠다.”고 말해 결혼을 승낙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녀가 프러포즈는 입에 발린 소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강 씨는 “물론 믿지도 않았어요. 원래 남자들이 결혼하기 전에 허풍을 잘 떨잖아요.”라며 “그래도 이건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거짓말이더라고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처음엔 집안일을 분담해서 하려고 했어요.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다 직업이 있잖아요. 그이도 잘 따랐어요.”라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가더라고요. 그 남자는 자신이 맡은 집안일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 거예요”라면서 “제가 남편에게 ‘당신 왜 집안일은 나만 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남자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냐’라며 슬그머니 도망을 가더군요.”라고 말했다.
강 씨는 “그 사람의 얄미운 짓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집안일을 전적으로 도맡아서 하게 되더라고요”라며 “기자가 밤샘도 많고 야근도 많은 직업인데 가끔 힘들고 지쳐 집에 들어왔을 때 헝클어진 집안과 남편을 보고 있으면 한 대 때려 주고 싶다니까요”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인천의 모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에 있는 이 모씨(28.여) 역시 집안일에 전혀 손대지 않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씨는 “남자들은 결혼하면 무슨 벼슬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라며 “집안일은 꼭 여자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주입식 과외라도 받는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그녀는 “결혼 전에는 이런 일로 남편과 마찰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한집에서 같이 살아보니 이 남자는 완전 왕이에요”라며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이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손 하나 까딱 안 해요. 물론 집안일은 전적으로 제가 다 도맡아하죠”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전업주부면 말도 안 해요. 저도 똑같이 돈 벌어서 가계에 보태는데 왜 남자라는 이유로 집안일은 신경도 쓰지 않는 거죠?”라며 “집안일 분담으로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고쳐지지 않으니 제가 지쳐 포기했죠.”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처럼 여성의 사회생활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고 그에 따라 맞벌이 부부도 많아지고 있지만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남성우월주의는 그들에게 일과 가사를 동시에 책임 지우며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고양 YWCA의 김선영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남성들의 가부장적 인식이 그들의 가사 참여를 가장 크게 방해한다고 전했다.
김 총장은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여성들의 의식과 지식이 높아졌다”며 “예전 세대 분들은 모르고 살았다고 하지만 지금 여성들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가부장적인 인식의 뿌리가 깊어 여성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커 고통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래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과 다르게 의식이 많이 깨어 있어 남편이 가정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고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그래도 아직까지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여성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다”고 전하며 “그들이 자녀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교육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를 고치고 의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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