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특별기획①유통업계, 사람이 힘이다] 유통채널 종사자 언제 쓰러질지 몰라

“근로자 44%, 근골격계 질환 고위험군”
“의무휴업제, 면세점·중소마트 확대 적용해야"

2017-05-01     박동준 기자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경제 고도화에 따라 ‘서비스가 미래 먹거리’란 말이 나온지 십여년이지만 여전히 서비스산업은 질보다 양에 치우친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후진적 노동권’을 배경으로 한 종사자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가 자리한다. 특히 지난해는 ‘땅콩회항’등 잇따른 갑질 사건을 계기로 감정노동에 대한 성찰과 문화컨텐츠가 쏟아졌지만 실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매일일보>는 유통채널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과 개선 방안에 대해 4회에 걸쳐 진단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싣는순서>

①유통채널 종사자 언제 쓰러질지 몰라
②스펙철폐 직무 중심 채용 확산
③직원이 신나야 회사가 산다
④이미지 제고 실적 개선으로 돌아와

“‘넌 내가 오늘 잘라버릴 꺼야! 어디서 누굴 무시해?’ 향수병 바닥에 ‘콕’ 찍힌 흠집 자국이 있다며 할머니 고객에게 멱살을 잡힌 것도 서럽지만 할머니 손녀가 ‘언니 일 똑바로 하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땐 발가벗고 큰 대로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백화점 판매직 여성노동자 A씨)“마트 생활 3년이 지나면 골병든다고 한다. 마트 노동자들 대부분이 4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여성노동자들로 1년 이상 근무하면 몸 어딘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농산물을 취급하는 부서인데 하루 8시간 식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곤 줄곧 서서 일한다. 화장실 가서 있는 시간이 앉을 수 있는 시간이다.” (대형마트 판매직 여성노동자 B씨)“면세점 매장에서 임신 당시 근무 시간 중 휴게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휴게실도 워낙 협소해 쉴 수 없었다. 면세점 직원은 1000명이 넘는데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은 작은 방 한 칸 정도였다. 출산 이후 모유수유를 할 때도 남자 직원들이 같이 쓰는 창고에서 할 수 밖에 없었다.” (면세점 판매직 여성노동자 C씨)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초 발표한 ‘유통업 서비스·판매 종사자의 건강권 실태조사’ 사례다.인권위가 지난해 백화점·할인점·면세점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사업장 노동환경에 대한 현장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통업 종사자 상당수가 과도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조사 대상의 85.9%가 고객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과 실제 표현하는 감정이 다르다고 응답했으며 96.1%는 고객에게 의식적으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답했다.회사의 요구대로 감정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답이 89.3%로 나왔다. 감정적으로 힘들다고 답한 인원도 83.3%로 대부분 종사자들의 감정노동이 과다한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1년 간 고객으로부터 무리한 요구나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는 비율도 61.0%로 조사됐다. 괴롭힘 형태로는 폭언(39.0%)이 가장 많았고 따돌림(17.2%), 폭행(3.9%), 성희롱(0.9%) 등의 순이었다.해당 경험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종사자가 10명 2명(17.2%)에 달했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교육 등을 운용하는 곳은 3.4%에 그쳤다. 나머지 96.6%는 해당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다.고객 응대가 주 업무인 유통업 근무특성 때문에 목·허리·어깨·다리 등 근골격계 질환 고위험군이 두 명 중 한명 꼴인 44.7%로 나타났다.최근 1년 간 업무상 질병 진단을 받은 비율도 31.0%로 집계됐다. 질환별로는 방광염이 17.3%로 가장 많았고, 족저근막염 7.3%, 우울증 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휴식공간도 부족했다. 대부분의 사업장이 휴게실을 갖추고 있었지만 평균 수용 가능 인원이 백화점은 21명, 면세점은 47명, 할인점은 23명 등으로 전체 노동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대형백화점 본점 2곳의 경우, 휴게실 수용 가능 인원이 전체 노동자 수의 100분의 1에 불과했다.이번 조사에서 유통업 종사자 평균 노동시간은 주 46시간, 장시간 노동(주 52시간 이상) 비율은 17.7%로 집계됐다. 근속 기간은 평균 2.7년으로 전체 임금근로자(5.6년)보다 짧았고, 근속기간이 1년 미만인 비율도 45.0%나 됐다.근로자의 지위를 보면 상용근로자가 38.7%, 임시근로자 51.5%, 일용근로자 9.8%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은 61.3%로 고용안정성이 매우 낮았다.월평균 임금은 137만원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222만원보다 85만원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이 같은 요인으로 관련 종사자들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47.5점에 그쳤다. 특히 임금수준(35.5점)에서 가장 높은 불만을 가졌다. 이어 노동시간(36.9점), 노동강도(39.7점), 인사승진(41.1점), 건강안전(45.4점)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인권위는 이와 같은 실태와 각 계의 의견을 수렴해 현재 개선안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1월 토론회에서 △감정노동자 보호법 제정 △대규모점포에 대한 의무휴업제 강화 등이 제언됐다.이 중 대규모점포에 대한 의무휴업제는 현행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만 적용되는 제도를 백화점 면세점부문과 중소형마트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형마트의 경우 명절휴업을 도입해야 하며 면세점의 연중무휴영업에 대한 규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토론회에서 나왔다.김규홍 인권위 차별조사과장은 “토론회에서 나왔던 내용과 기존에 지적됐던 사항들을 반영, 개선안을 내부적으로 마련해 현재 검토하는 중”이라며 “올 상반기 중 국회 소위원회에 상정돼 업체들에 개선안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