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반도', 은막 뒤에 숨은 정치적 메시지?'
영화나 문학과 같은 예술작품은 간혹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순수한 예술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예술작품도 많지만 사회참여, 그러니까 구체적인 목적을 갖고 만들어지는 예술작품도 있다.
당장 국내 유명 소설가 가운데 진보적 성향의 인물들이 쓴 작품을 읽으면 그 작품 속에서 강한 진보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 반 보수세력이 강한 힘을 갖게 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진보성향의 문인이나 영화인들이 맹렬한 활동이 있었다.
진보성향의 예술작품들이 대중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면서 많은 이들을 자연스럽게 반 보수 문화로 끌어들인 것이다.
‘영화 한반도’, 또 다른 정치적 문화상품
강우석 감독과 안성기, 문성근, 조재현, 차인표 등이 출연해 최근 화제를 뿌리고 있는 ‘한반도’는 또 다른 의미의 정치적 문화상품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문성근 씨가 ‘한반도’에 출연하여 이목을 끄는데 이 영화의 내용 역시 반 보수적인 색채를 은근히 띄고 있어 많은 이들을 자극하고 있다.
현재 온-오프라인 상에서는 영화 한반도를 놓고 많은 이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의 설전 내용 가운데에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내용 못지 않게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에 대한 갑론을박도 만만치 않다.
이미 무려 100억에 가까운 제작비용을 투입해 만들어 더욱 널리 알려진 영화 한반도의 대강의 내용은 이러하다.
① 일본이 1907년 맺어진 조약을 내세워 남북이 통일을 약속하고 준비중인 경의선 완전 개통을 방해한다
② 일본은 한국이 통일을 이루면 한반도로 유입된 모든 기술과 자본을 철수하겠다고 한국 정부에 압박을 가한다
③ 한편 한국 정부는 잃어버린 대한제국의 국새를 찾으면 일본의 주장을 꺾을 수 있다고 믿고 일본의 도발에 대응하며 국새 찾기에 나선다. 그러나 국가의 안정과 한-일관계의 안온한 유지에만 관심이 있는 총리는 국정원 요원 한 명을 시켜 국새 찾기를 방해한다.
대략 이런 정도의 내용이 영화 한반도의 기둥 줄거리이다. 이 영화의 특징은 앞서 언급한 대로 많은 노 대통령 지지자들의 현실관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노 대통령 지지자들의 현실관에서 보면 한나라당은 ‘친일정당’이다. 많은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을 친일파의 후예들이 모여 만든 정당이라고 믿고 있다. 한마디로 정통성없는 정당이란 이야기다.
영화 한반도에서 등장하는 총리(문성근)는 이런 보수사회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대통령(안성기)의 결단을 비웃으며 제 2의 정치세력과 결탁하는 보수파 야당총재도 나온다. 강우석 감독은 ‘특정인 묘사는 절대 없다’고 밝히고 정치와의 무관함을 강조했다지만 이런 식의 내용은 석연치 않아 보인다.
우리는 한번도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인 적이 없었다?
네이버에 등록되어 있는 영화 한반도의 메인카피 가운데 하나가 ‘우리는 한 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이다. 이 메인카피 역시 많은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논리를 연상하게 한다.
지난 2002 대선 직전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촛불시위에 많은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합세한 데에는 이런 식의 정신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영화의 내용으로 돌아가자. 영화의 내용 속에는 일본의 도발이 거세지는 내용이 나오는데 마침 이 내용은 일본의 북한 선제공격론과 연관되어 현실감이 더해진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의 보수층은 일본으로 대변되는 외세에 맞서 당당히 싸우려는 노력 대신 일본과 적당히 타협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지키려 한다. 이런 식의 시각이 역시 많은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한국 보수사회에 갖고 있는 시각이다.
많은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진보주의자들에게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을 맹종하는 사대주의 세력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대로 역시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진보주의자들은 한나라당을 친일정당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부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진보주의자들의 논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이런 한나라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든 민정당의 후신으로 특정 지역 혐오주의와 가부장 권위주의 문화를 조장해가며 권력을 유지해 온 집단이다.
바로 이런 이들을 심판했던 것이 지난 2002 대선이며, 지난 2004 총선이었다. 다가오는 2007년은 87년 6월 항쟁 20주년이고, 2002년 여중생 사건 5주기이다.
바로 이런 식의 논리가 일부 진보주의자들과 노 대통령 지지자들의 논리다. 이런 식의 논리를 갖고 있는 이들이 현재 반 한나라 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음을 볼 때 한반도는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는 영화다.
동아닷컴 7월 20일자 기사 ‘영화 한반도 흥행가도 불구하고 정치색 논란 확대’를 보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청와대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만 걸려 있다’라고 지적하는 네티즌까지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영화 속의 안성기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이란 이야기다.
한반도, 엇갈리는 관객의 평가
역시 이 한반도란 영화에 대해 보수사회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보수성향의 유력 정치인을 지지하는 팬클럽의 어느 지도급 인사는 한반도라는 영화를 하찮은 영화로 맹렬히 비판했다. 거의 만화 수준이란 이야기다. 반면 그래도 재미있었고 좋은 영화였다는 네티즌들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아무튼 한반도라는 영화는 국민들을 서로 갑론을박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단 마케팅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7월 20일 마이데일리 기사를 보면 한반도는 개봉 첫주 무려 180만 관객을 끌어 들여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원래 한반도 개봉 당시 강력한 경쟁작이 없어 혜택을 봤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한반도의 흥행돌풍은 이미 한반도란 영화의 내용이 널리 알려지고 영화의 수준과 내용을 놓고 치열한 격론이 벌어지고 있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스크린쿼터 문제로 떠들썩했던 일이 있어 많은 국민들은 한국 영화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일 것이기 때문에 그 수혜도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상당한 정치색 뿐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강한 민족주의를 내세워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일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평론가들은 민족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한반도란 영화를 대놓고 과도한 국가주의 영화로 공격하는 이들도 있다.
7월 18일자 필름 2.0에 한반도 비평을 기고한 영화평론가 강유정 씨는 한반도의 과도한 국가주의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또한 데일리서프 조은영 기자는 ‘지루한 애국주의’라는 표현을 써가며 영화 한반도를 비판했다.
노빠들의 극우화?
원래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진보주의자들은 북한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는 극우파들을 맹렬히 비판해왔다. 극우파들은 북한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에 대해 맹렬한 이념적 비판을 가해왔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진보주의자들은 극우파들과 사이가 좋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진보주의자들은 한나라당을 극우정당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한반도가 배타적 민족주의적 모습을 보이며 대중들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끝난 이야기이나 한동안 노 대통령의 우경화에 대해 불만이 높았다.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노 대통령이 좀 더 왼쪽으로 가 주길 바랬으나 노 대통령은 다소 오른 편으로 이동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진보성향의 기존 지지층을 거의 잃고 반쪽 지지율 정당으로 전락해 있는 상태다. 보수사회에서는 이런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보고 조롱하며 곧 없어질 정당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2007 대선에서는 결국 반 한나라 세력은 다시 힘을 합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수사회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은 노 대통령 지지세력과 진보세력이 우리 한국 사회에서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노선을 지지하든 안하든 열린우리당 노선이나 민주노동당 노선이 당연히 우리 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믿고 긴장의 끈을 놓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2002년 대선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색채를 가진 정당이 집권한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감이 있었다.
그러나 2002 대선 이후 거의 4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과 유사한 색채를 가진 정당이 집권하는데 거부감을 갖는 국민들은 크게 줄었다. 한마디로 쉽게 말해 색깔론에 무작정 동조하거나 사회주의 논리에 무작정 반대하는 사고방식이 크게 줄었다는 이야기다.
보수사회의 대응에도 관심 집중
한편 이런 한반도와 같은 새로운 문화적 기류에 한국 보수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과 같은 문화상품에 정치적 메시지를 실어 보내는 방법은 상당한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2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효과는 거의 절대적이다. 종래의 조직 중심의 선거운동은 거의 먹히지 않고 이미지 중심, 철학 중심, 열성 팬클럽 중심의 정치문화가 새로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보수사회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요덕스토리’와 같은 뮤지컬 상영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국민적 관심사로 끌어 올리려 시도했던 바 있다.
그러나 보수층에서는 폭넓은 공감대를 창출하는데 성공했으나 일반 국민들에게 널리 북한 인권 문제를 알리고 공감시키는데에는 미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영 주변의 인사들은 보수사회에서 영화와 같은 수단으로 문화전술을 펼치기에는 어려움이 클 것이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선 정권이 아직 열린우리당 측에 있는 까닭에 보수사회에서 자금을 조달해 영화를 제작-방영한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다. 이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여하튼 보수사회는 지난 2002 대선에서 문화인들의 맹활약 때문에 패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신해철-문성근-명계남 등 문화예술인들이 열성적으로 노무현 캠프에 참여해 활동함으로서 많은 젊은이들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