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vs 임종룡 구조조정 주도권 ‘신경전’
한은에 공동압박 불구 재정·금융당국 수장간 ‘딴 목소리’
2017-05-09 송현섭 기자
[매일일보 송현섭 기자] 기업 구조조정과 ‘한국판 양적완화’ 논란이 재정 및 금융당국간 주도권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9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한국은행을 함께 압박하면서도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문제의 발단은 양적완화에 미온적이던 한은 이주열 총재가 손실 최소화를 들어 국책은행 자본확충 대신 특별대출을 통한 지원을 대안으로 내세우면서 시작됐다.당초 유 부총리는 지난 2일 해외출장에서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을 고려치 않고 있다고 밝혔다가 이 총재의 발언 뒤인 5일 추경 편성도 포함해 고려한다고 선회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유 부총리가 굳이 ‘말 바꾸기’란 비난을 감수하면서 추경을 거론한 데는 한은을 압박하고 있는 임종룡 위원장과의 미묘한 갈등관계가 한몫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 부총리는 당장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드라이를 걸어야 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보이며 임 위원장도 주무부처 수장으로 견제구를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 재정·금융당국 수장의 입장에서 현 정부의 최대 난제인 기업 구조조정의 기선을 잡는 것이 자신의 성적표로 나온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유 부총리는 올초 1분기 재정 조기집행 규모를 늘린 것을 비롯해 곧바로 2월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등 경기활성화 대책 및 공유경제 도입 등 일련의 대책을 내놨다.이는 최경환 전 부총리 시절 시행한 정책의 반복이란 비판이 나오면서 구조조정에서 승부를 봐야한다는 절박감이 한국판 양적완화에 ‘올인’하는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임 위원장 역시 구조조정 자금 조성을 위해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적에 기존 입장을 전면 선회했다. 실제로 임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기업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가 끝난 뒤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여당의 총선 공약이던 ‘한국판 양적완화’와 다르다”면서 “당장 필요한 것은 유동성이 아닌 손실을 분담할 국책은행의 자본력”이란 견해를 밝혔다.임 위원장은 이 때까지 구조조정은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의 문제란 점을 분명히 했었다.그러나 대통령의 양적완화 발언이 이어지자 임 위원장은 결국 지난달 29일 “중앙은행이 국가적 위험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한은을 압박했다.유 부총리와 임 위원장은 한은이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국민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산업은행법을 개정해도 한은의 출자를 추진할 것”이란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선 정치권 출신 유 부총리와 관료 출신인 임 위원장간 신경전은 구조조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가 능력을 평가받는 무대란 점에서 물러서기 힘들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융위와 기재부 소관이 전혀 다르다는 반론도 있지만 재정당국 및 금융정책 수장으로서 자존심을 건 신경전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팽배하고 있다.한편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한은의 발권력이 동원되더라도 표적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유 부총리와 임 위원장 모두 국책은행의 책임을 거론하며 기업 구조조정의 결과로 가중되는 국민부담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금융권에선 한국판 양적완화든 별도 구조조정 재원 마련이든 최종적으로 국민부담이 되는 만큼 산은이든 수은이든 국책은행 책임론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