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건희 회장의 혜안과 제갈량의 총대

2016-05-12     황동진 기자

[매일일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우리나라에 곧 불어 닥칠 경제 위기를 직감했다.

그로부터 4년 뒤 1997년 12월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된다.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정부로 이어져오면서 정치적으로는 황금시대가 도래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져있었음을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한강의 기적’이 지속될 것이라는 맹신 아래 미국을 비롯한 동남아 주변국들의 정세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우리 정치인과 경제인은 합심이라도 한 듯이 보여주기 식 외형 부풀리기에만 열을 올렸다.

그 결과 기아자동차 부도 사태가 일어났고 대우그룹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수십년간 꽁꽁 감춰진 한국 정치와 경제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나게 됐다.

당시 정부로서는 부끄럽기는 했지만 ‘국민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나라의 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섰고, 전국 350만 명이 참여해 230여t의 금을 모아 IMF 조기 탈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2007년 또다시 한국 경제의 위기를 경고했다. ‘코리아 샌드위치’가 그것이다.

이 회장의 위기감 이면에는 한·중·일 삼국의 경쟁 상황이 자리잡고 있었다. 디스플레이, 반도체, 조선, 중공업, 자동차 등 한국 주요 제조 산업의 현실은 잠시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 적중했다. 현재 조선·해운업 부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과감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의 혈세'로 부실기업을 지원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의 출혈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누군가의 출혈이 불가피하다면 열심히 일 만해온 노동자가 아니라 정부와 최고 경영인이 돼야 한다고도 말한다.

A조선사 관계자는 “현 정부의 구조 개혁에는 공감하지만, 조선 해운업계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 산업 전반에 걸친 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무엇보다 부실을 키운 탓을 기업에만 전가시키지 말고 정부도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중장기 미래를 바라보는 정책을 펼쳐야한다”고 지적했다.

고사성어에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고 있다.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할 때 친구의 동생이자 참모 장수였던 마속이 명령을 어기고 전쟁에서 대패하자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벴다는 데서 유래됐다.

즉, 대의를 위해서라면 측근이라도 가차 없이 제거하는 권력의 공정성과 과단성을 일컫는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이 역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제갈량과 같은 인재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샌드위치 위기’를 거론하면서 그 해법으로 ‘인재 육성’을 피력했다.

과연 현재 우리 정치에서는 이건희 회장과 제갈량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