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도 밝혀야 한다
2017-05-12 매일일보
[매일일보]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동안 제조업체는 물론 정부조차 인체에 치명적인 위험물질을 얼마나 소홀히 다뤄왔는지가 속속 들어나고 있다.사망자 14명을 포함해 28명의 피해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세퓨’의 제조사 버터플라이이펙트의 오모 전 대표는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 2가지 독성 화학물질을 배합 매뉴얼도 없이 임의대로 섞어 물에 희석해 제품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안전성 검사는 물론 하지도 않았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도 유해성과 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다.정부 역시 1997년 PHMG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자 2012년이 되어서야 급히 PHMG를 유해물질로 지정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 말에 PHMG의 유해 가능성이 보고됐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2001년 정부 공인 KC마크까지 획득한 채 시중에 나돌기 시작했다.더군다나 2006년부터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는데도 2011년 11월에야 판매 중단 명령이 내려졌다. 이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의 유해물질 관리 소홀도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수사도 피해자들의 고소가 있은 지 4년이 지난 작년 말에서야 본격 시작됐다.이런 가운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가 국가기술표준원이 2007년 공산품 안전관리법상 안전검사 대상 지정 고시를 제정하면서 가습기 살균제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산업통상자원부에 관련 내용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당시 고시에서 안전검사 대상인 ‘생활화학가정용품’에 세정제, 방향제, 접착제, 광택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섬유유연제 등 구체적인 항목을 선정하면서 사람의 폐에 들어가는 가습기 살균제는 뺐다고 송 변호사는 지적했다. 이런 만큼 이 고시 제정에 관여한 심의위원회의 명단과 심의록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요구다.정부는 당시 법령이 미비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이 늦어질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늦장 대처한 것은 아무리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정부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정부는 기업의 책임뿐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출시 과정부터 지금까지 고시 등에 안전검사 대상으로 포함시키지 않은 배경과 늦장 수사에 대해서도 진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차제에 화학물질을 시판하기 전에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를 제대로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