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강사 죽음으로 발각된 대학가 ‘매관매직’
교수직 얼마면 돼?
[매일일보=이서현 기자] 한 시간강사의 죽음으로 대학가가 어수선하다. 그가 자살하면서 쓴 유서에 ‘사고파는 교수자리’등 현 대학가의 고질적 비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유서에는 교수 채용 비리와 논문 대필 실태를 고발한 내용이 담겨있다. 말그대로 사고파는 교수직, 대학가 매관매직의 정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던 것. 그가 있었던 대학가에는 조촐한 분향소가 마련돼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인적이 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향소 방명록에는 서씨를 시간강사가 아닌 ‘교수님’으로 기억하는 학생들의 애도의 글이 눈에 띄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경찰은 유서에 언급된 두 사립대학 채용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는지 수사할 계획임에 따라 대학가의 어두운 이면이 공개될 전망이다.
<매일일보>은 한 시간강사가 남긴 유서를 통해 발각된 대학가의 고질적 비리를 조명해봤다.
한 시간강사가 교수 임용 탈락을 비관해 자신의 집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8일 광주 동구 서석동 조선대학교 인문과학대학 1층 현관에는 이 학교 시간강사 서정민(45)씨의 분향소가 마련됐다. 분향소를 방문한 이 학교 학생 강모(26)씨는 “작년에 이분의 영어수업을 들었는데 참 열정적이신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비보를 안타까워했다.
수억원 돈 오가는 ‘사고파는 교수자리’, 논문 대필도 광범위하게 이뤄져
‘캠퍼스의 노예’, 직원조차 시간강사 동료로 안 봐, 고질비리 척결해야
교수 자리가 1억5천, 3억?
강씨의 말대로 열정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던 한 시간강사에겐 무슨 비통한 사연이 있었던 걸까. 시간강사인 서씨는 유서에는 교수 채용 과정에서 수억원의 돈이 오가고 있고, 논문 대필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서씨는 총 5장의 유서를 남겼는데, 그는 경기도의 한 사립대학 교수 임용해 지원했다가 탈락하자 극도의 좌절감에 빠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씨는 유서에서 “학교 측에서 나를 내쫓으려 한다. 나는 스트레스성 자살이다. 시간강사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 한국사회를 그대로 두면 썪는다. 수사를 의뢰한다”고 적어 충격을 주고 있다.
서씨는 “제자들을 이용하기만 한다”며 지도교수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고 “교수님과 함께 쓴 논문이 대략 25편, 교수님 제자를 위해 박사논문 1편, 한국학술진흥재단 논문 1편, 석사논문 4편, 학술진흥재단 발표논문 4편을 썼다”며 논물 대필 사실을 폭로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에게 쓴 유서에는 “교수 한 마리(한 자리)가 1억5천, 3억이다. 나는 두 번 제의를 받았다. 대략 2년전 전남의 한 사립대학에서 6천만원, 두달 전 경기도의 한 사립대학에서 6천만원, 두달 전 경기도의 한 사립대학에서 1억을 요구받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해 같이 쓴 논문 대략 54편 모두 서씨가 쓴 논문으로 교수는 이름만 들어갔으며 세상에 알려 법정투쟁을 부탁드린다며 청와대, 국가인원위원회 등에 탄원서를 제출해달라고 가족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때문에 광주 서부경찰서는 교수 채용 비리와 관련해 유서에 언급된 전남의 A 사립 대학과 경기도의 B 사립대학에 지난 몇 년간 채용된 교수 명단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채용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공공연한 비밀 아니면 사실?
사실 대학가의 교수직매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수자리를 놓고 일부 서울 소재 대학은 5억원, 경기도 소재 대학은 3억원, 지방대는 1억원, 교육여건이 떨어지는 2년제 지방대학은 수천만원을 요구한다는 얘기가 시간강사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통할 정도라고 한다.
한 시간 강사 C씨는 “교수 채용 과정에서 돈이 오간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시간강사들의 처우 문제나 교수사회에서 이뤄지는 비리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제자들이 지도교수의 논문을 대신 써주는 논문대필 역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런 수준의 대학사회를 그대로 버려둔 상황에서 우리 대학의 경쟁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수사기관이 서씨의 폭로내용을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사건으로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개한 ‘2010년도 대학별 시간강사 강의료 지급단가’에 따르면 4년제 일반대학 186곳의 시간당 강의료는 평균 3만6천400원으로 집계됐다.
국·공립대학이 4만1천400원으로 사립대(3만5천600원)보다 높았고, 수도권 대학이 3만7천900원으로 비수도권 대학(3만5천500원)보다 많이 지급했다. 시간강사는 강의준비 시간이 많이 드는데다 과목당 1주일에 3~4시간밖에 강의할 수 없어 실질 수입은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근로자들보다 적었다.
현재 전국 4년제 대학 시간강사는 5만5천여명으로 이중 강사료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전업강사는 3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학 전체 강의의 55% 가량을 담당하고 있으나 임금은 전임교수의 10~20%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난 28일 서씨의 분향소를 방문한 한 동료 강사는 “직원들은 우리 같은 시간강사를 같은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동료가 안타깝게 죽었는데도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교수님들 수업을 찾아다니느라 바쁘다”고 털어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서씨를 위해 마련된 분향소에는 총장과 정교수, 교직원등 정규직 대부분은 전날 저녁(지난27일) 설치된 분향소를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시간강사들이 놓인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또 다른 시간 강사 역시 “이것이 바로 시간강사들이 ‘캠퍼스의 노예’로 불리는 이유”라며 “대학가 전면에 숨어든 고질적 비리를 척결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씨는 서울의 사립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뒤 조선대에서 영어영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난 2000년부터 이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