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에 휘둘리는 朴대통령…레임덕 시작되나

‘소통’ 강조했지만 보수여론에 떠밀려 野협의파기

2016-05-17     이상래 기자

[매일일보 이상래 기자]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불가 방침을 밝혔다. ‘협치’를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이 보수여론에 떠밀려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레임덕’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소통’과 ‘협치’에 방점을 찍는 모습이었다.

시작은 지난 4월 26일 개최한 46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가 여러 문제에 대해서 소통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곧이어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와 회동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속담에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부와 국회의 소통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겠다”며 “형식을 가리지 말고 다양하게 의견을 개진해주면 참고해 국정에 꼭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소통의지’를 다시 한 번 드러낸 것이다.

당시 분위기를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진전된 안이 나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 요구가 나온 것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회동에 참석한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대통령께서 좋은 결정을 하도록 보훈처에 지시한다고 했으니까,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전날(16일) “올해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공식 식순에 포함해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참석자 자율 의사를 존중하면서 노래에 대한 찬반 논란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예상과는 달리 제청불가 방침을 밝혔다.

박 대통령이 최근 방점을 찍은 ‘소통’과 ‘협치’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야당은 즉각 거센 반발에 나섰다. 진실규명마저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진실을 청와대가 밝혀라. 대통령이 지시한 것에 보훈처장이 거부한 건가, 지시한다고 야당 원내대표에게 얘기하고 사실은 지시 안한 것인지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청와대의 지시가 없이 보훈처가 단독으로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는 “박승춘 보훈처장이 자기 손을 떠났다고 한 것은 바로 윗선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는 게 입증된 것”이라며 “이미 윗선은 누구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보훈처장이 청와대에 항명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지만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박 보훈처장은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해 정권이 바뀐 뒤에도 유임된 최장수 인사다. 앞서 박 보훈처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한 바도 있다. 그의 장기집권 배경에는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박 대통령이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원할한 국정운영을 위한 ‘협치’를 뒤로하고 박 대통령이 보수여론에 떠밀려 당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얘기다.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자에게 의무적으로 부르게 하는 제창 방식을 강요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보훈·안보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결정배경을 설명했다. 보수여론이 반대한다는 얘기다.

앞서 박 대통령은 자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4·13 추념식에도 같은 이유로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박 대통령의 불참 이유에 대해 새누리당 원희룡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는 “일부 보수단체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레임덕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정면 돌파를 천명하며 보수여론을 주도해온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오히려 보수여론에 떠밀린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두고도 박 대통령은 정면돌파로 여론몰이를 주도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5년 10월 27일 국회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며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두고 더 이상 왜곡과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