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그렇게 싫으십니까?”

“증오로 점철된 민심, 대구는 언제까지 가지고 갈 것인갚

2007-07-23     매일일보

장면-1. 수성구 어느 식당

지난 6월 초 저녁 8시경,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대구 수성구 KBS방송국 앞에 있는 한 국숫집에 들렀다. 손님은 나이가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10여 명의 어머니들만이 모여 앉아 제법 시끄러운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자연스럽게 그 분들이 이야기가 귀에 들렸다. 아마 모두가 계원인 듯한 이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 내용은 곗돈으로 여행을 함께 가는데 행선지를 정하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이 동남아 등 해외로 가자고하니 한 사람이 해외는 많이 가 봤으니 제주도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이 제주도는 많이 가봤으니 설악산 가자고 하고, 또 한 사람은 금강산 가자고 했다.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금강산에 뭐 하러 가냐, 이북놈들에게 돈 보태줄 게 뭐가 있느냐고 큰 소리로 반대했다.

계속 행선지를 정하지 못하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중에 새로운 손님이 네 사람 들어왔다.
역시 50대 후반에서 60대 초중반 정도 보이는 중년으로 남자 셋과 여성 한 명이었다. 남녀 한 쌍은 부부 같았고 나머지 남자 둘은 아마 동네 친구정도로 보였다.

이 분들이 자리를 잡자 그 동안 시끄럽게 목청을 높이던 아주머니 열 분정도가 내 눈치와 새로운 손님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네 분과 나만 남게 되었다. 그때 마침 TV뉴스에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해 고향에서 살 것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오면서 대통령의 생가를 비쳐주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손님이 “노무혀이 저렇게 산골짝에서 촌놈이 출세했다 출세했어, 집도 형편 없구먼...” 이라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금붕어 보기 싫다. 채널 돌려라.”고 하면서 화면을 확 바꿔 버렸다. 이 사람들 눈에는 내가 그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지(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좁은 식당이고 내가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으니까) 무례하기 짝이 없는 처사였다. 내가 황당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니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주인이 다시 채널을 원래대로 바꿔주었다. 바뀐 화면에서 마침 민노당 권영길 의원의 얼굴이 잡혔다. 그러자 그 손님들은 “저런 뺄개이는 다 잡아 가둬야 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이에 뉴스가 끝났다. 나도 수제비를 먹고 그 식당을 나왔다.

장면-2. 시중에 떠도는 세가지 이야기

며칠 전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수 년 전에 정년퇴임한 노교수님 한 분을 만났다. 여성이다. 이 분이 나를 비롯한 몇몇 동료가 있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근에 들은 것이라면서 꺼낸 이야기이다. 시중에 떠도는 우리 역사가 겪지 않았어야 할 세 가지 이야기라나.첫째는 이승만이 김구를 암살한 것. 둘째는 박정희 시대 때 김대중을 일본에서 납치해서 오다가 물에 수장시키지 못하고 살려 둔 것.셋째는 노무혀이 아부지(아버지가) 정관수술 하지 않은 것, 이라고 했다가 다시 덧붙여 농협에서 입사시험 때 노무현 떨어뜨린 것, 그만 그때 농협에 합격했더라면 대통령이 돼서 나라꼴을 이 모양으로 만들지 않았을텐데...라고 했다. 여기까지 듣고 있다가 나는 소리를 꽉 질렀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게 무슨 소리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고 수준이 있지 천박하게 그게 무슨 소리냐, 정관수술 어쩌고 그게 할 소리냐 라면서 힐난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져버렸다.지면에 옮기기가 좀 그렇고 공개하기가 부적절한 게 아닌가 고민도 했지만, 현재 대구정서의 한 면을 이해하는 데 아무래도 생생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옮겼다. 우선 국숫집에서 발생한 사건(?)을 보면, 아무래도 식당에 모인 분들은 수성구 주민일 가능성이 높고(수성구는 대구에서는 명품구로 알려질 정도로 여러 가지 면에서 타 구와는 비교된다. 주민들 교육 수준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산층 정도는 돼 보였다. 곗돈으로 해외여행을 거론하고 게다가 해외는 많이 다녀왔다니 이들의 계급이나 계층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왜 하필 금강산 여행을 “이북놈들에게 돈 보태준다." 정도로 이해할까.점입가경은 두 번째 손님인 네 명. 아마 이 분들도 수성구민일텐데(여러 정황상 추측일 뿐이지만) 노무현 보기 싫다고 다른 손님이 보고 있는 채널을 확 돌리는 무례에다가, 인신공격적인 촌놈 출세, 금붕어 운운 에다가 민노당 권영길 의원에게는 빨갱이라는 폭언까지... 두 번째 여교수 이야기. 추측컨대 이 분이 주로 접하는 사람은 대구에서 시정잡배는 아닐 것이다. 아마 앞서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또다른 부류일 것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교수 정년 할 정도면 굉장한 엘리트로 선택받은 집단임에 틀림없다. 그 나이의 대부분 여성은 초등학교조차 겨우 졸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름대로 지식인 그룹에다가 상류층일 사람들이 김대중 전대통령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과 같은 망언에다 현 대통령에 대한 천박한 인신공격까지...

"증오로 점철된 이런 여론이 대구의 민심이라면..."

아무리 지역감정이 있고, 현 정권의 국정수행 능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막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게 있는 것이다.(대구사람들의 막무가내식 오해가 무서워(?) 굳이 밝히자면 나는 노사모도 아니고, 열린우리당원도 아니다.)이게 대구의 민심일까?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는데 만약 이게 민심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철저하게 왜곡되고 증오로 점철된 이런 여론이 대구의 민심이라면...김구의 암살이 잘못된 역사라는 인식을 갖는 사람들이 김 전대통령을 수장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는 역사인식은 도저히 가능하지 않으며, 아무리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저런 식의 야유는 인간으로서 품위도 그렇고 논리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많은 뜻 있는 사람들이 지적한 바 이지만 대구는 이제 증오와 미움, 왜곡된 상황인식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우리 자신은 물론 후손들에게까지 불행을 대물림 하게 된다. 나는 현재 대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어려움이 대구사람들의 이런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문제가 있으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비판은 활성화 될수록 좋은 것이다. 비판 없는 사회는 무덤과도 같다는 말은 많이 들어 본 말이고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금언이다. 문제가 있으면 비판하고, 근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토론해서 일보 전진하면 된다. 증오와 미움으로 점철된 수준이하의 마구잡이식 폭언을 대구는 언제까지 가지고 갈 것인가.

"좌는 좌대로, 우는 우대로 최소한 ‘합리적인 근거는 갖는 대구’를 위하여..."

달력을 보니 오늘부터 새로 뽑힌 단체장과 자치단체 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묻지마식 투표로 최소한의 균형과 견제를 형성하는데도 실패한, 문제가 많은 자치현실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고 참여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보자. 좌는 좌대로, 우는 우대로 최소한 ‘합리적인 근거는 갖는 대구’를 만들기 위해 희망을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중국작가 노신의 『눌함吶喊』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눌함은 크게 외친다는 뜻이다.) “가령 말이야, 쇠로 만든 방이 있다고 치자. 창문이 하나도 없고 부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야.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데, 머지않아 모두 숨이 막혀 죽을 거야. 하지만 혼수상태에서 죽어가는 거니까 죽음의 비애는 조금도 느끼지 않지.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서 비교적 정신이 있는 사람을 몇 명을 깨운다면 말이야, 그 불행한 소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게 될 텐데,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어?”“하지만 몇 명이 일어난 이상 그 쇠로 만든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2006년 지금 대구가 무지몽매했던 1920-30년대 중국현실과 반드시 같지는 않겠지만 왠지 모르게 나에게는 노신의 위 글이 현재의 대구현실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무게로 다가오는 것은분명하다.그래서 더욱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김용락 칼럼니스트<시인, 대구사회비평 발행인, 경북외국어대 교수, 제공=평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