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화합 기회를 정부가 ‘합창’으로 걷어찬 셈이 됐다

2017-05-18     매일일보
[매일일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유족들의 반발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무산된 데 따른 여파다. 결국 기념식은 새로운 갈등의 장이 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3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과 관련해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겠다”고 한 것을 보훈처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님을 위한 행진곡’은 신군부에 맞서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당한 젊은 넋을 위로하기 위한 만들어진 노래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18일 기념식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진전을 이루는 분수령이 됐다”고 말했다. 그런대도 이를 이념적 성격이라느니 북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느니 하며 제창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上說)이다. 합창은 되고 제창은 안 된다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지만 어떻게 대통령이 여야 3당 원내대표 앞에서 한 말을 허언(虛言)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가뭄 끝의 단비처럼 찾아온 국민화합의 기회를 결국 정부가 걷어찬 셈이 됐다. 야당들은 정부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보훈처장의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하고 있다. 차라리 제창곡을 법으로 만들겠다는 말도 나온다. 20대 국회는 여소야대로 구성된다. 이렇게 될 경우 정부가 5·18 기념식장에서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정부가 침소봉대(針小棒大)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확대시키는 꼴이 되고 있다.20대 국회가 개원도 하지 않았는데 정부와 야당이 이렇게 충돌할 경우 산업구조조정, 일자리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협치와 소통을 통해 민생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던 박 대통령의 노력도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야당의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아무리 외쳐도 역사는 현재를 ‘박근혜 정부 시기’라고 기록할 것이다. 현 정권에서 녹(祿)을 먹고 있는 인사들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직도 박 대통령의 임기는 1년 9개월 넘게 남았다. 지금이 우리에게 얼마나 엄중한 시기인지를 재인식하지 않는다면 레임덕은 더 빨리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역사적 책임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엄중한 시기임을 현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