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가계대출서 ‘돈 벌고’ 기업대출서 ‘까먹고’

부담은 국민 몫…수익 악화로 수수료 인상 등 나서

2017-05-26     이경민 기자
[매일일보 이경민 기자] 은행들이 잘못된 기업대출로 생긴 빚 부담을 예금 이자율을 낮추거나 수수료를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국민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 여신 잔액 436조7830억원 중 고정이하여신(부실채권·NPL)은 17조6945억원(4.05%)으로 전년에 비해 7조3312억원(70.74%)이나 급증했다.이같은 부실채권 규모는 관련 통계를 알 수 있는 지난 2008년 이후 최대 규모이며 연간 증가 폭으로도 최대다.반면 가계여신은 대기업 여신보다 훨씬 큰 폭으로 늘었지만, 부실채권 규모는 오히려 줄었다.가계여신은 대기업 여신의 6배가 넘는 44조6270억원이 증가했지만, 부실채권은 6125억원 감소했다.가계에서 돈을 벌고, 기업에서 까먹는 이런 경향은 연체율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KB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해 가계대출 연체율은 0.19~0.49% 수준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반면 농협은행의 지난해 대기업 연체율은 2014년 대비 1.06%포인트, 신한은행은 0.55%포인트 높아져 금융위기 후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대기업을 포함한 KEB하나은행의 기업 대출 연체율도 전년보다 0.27%포인트 높아졌다.개인 고객, 특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개인 고객들은 은행과의 거래에서 깐깐해진 대출심사 때문에 ‘대출 난민’이 되기도 한다.강화된 주택담보대출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원리금을 한꺼번에 상환하느라 부담을 느끼고 있다.은행은 이처럼 개인에 대해서는 깐깐하지만 기업에는 느슨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예컨대 3년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대지 못한 대우조선해양의 여신은 ‘정상’으로 분류했다.금융감독원의 자산 건전성 분류업무 해설 자료를 보면 “은행은 보유여신에 대해 미래의 손실액을 추정하고, 이런 추정액만큼 대손충당금으로 설정함으로써 보유자산의 건전성을 보다 정확하게 표시”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그러나 은행의 건전성을 감독해야 할 당국은 작금의 위기를 초래하는 데 기여하거나 적어도 방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충당금 적립과 순이자 마진 저하로 수익성이 악화한 은행들은 송금과 자동화기기 이용 요금 등 각종 수수료를 올리며 ‘수익성 방어’에 나서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 즉 국민이 본다.우선 신한은행이 지난달 외화 송금 수수료의 일부를 올리며 ‘수수료 인상’의 포문을 열었다. KEB하나은행과 씨티, SC제일은행이 뒤따랐다.KB국민은행은 위기의 파고를 넘기 위해 아예 수수료 인상이라는 ‘돛’을 활짝 폈다. 내달 1일부터 거의 모든 수수료를 큰 폭으로 올린다.은행권은 수신금리도 낮추고 있다.농협은행은 지난 3월 수신금리를 최대 0.1%포인트 인하했으며 외국계 시중은행인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도 수신금리를 일부 내렸다.KEB하나은행도 지난달 ‘나라지킴이 적금’의 특약을 변경하며 수신금리를 1.5%포인트까지 낮췄다. 우리은행은 계좌이동제를 대비해 만든 '우리웰리치 적금'의 수신금리마저 0.3%포인트 내렸다.지난해 은행권의 수수료 수익은 7조451억원으로, 지난 2012년 이후 3년 만에 7조원을 넘었다.올해는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던 2011년의 수수료 수익 7조3300억원을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기업 부문에서 손실이 나더라도 개인 부문에서 손해를 메울 수 있게 해주는 관치가 가장 큰 문제”라며 “당국의 묵인하에 은행이 수수료 인상 등으로 기업 부문 손실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