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무성한 정계개편, 그 내막의 허와 실

‘고건 독자신당’, ‘우리-민주 합당’, ‘한나라 대권주자 탈당‘?

2007-08-09     변희재 칼럼니스트
여의도 정가는 지자체 이후, 물밑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고건 전 총리는 희망연대라는 사실 상의 대권조직을 띄우고 있으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사이에서는 늘 합당론이 오가고 있다. 또한 전당대회 이후 한나라당 역시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으면서, 언제라도 탈락한 대권 주자가 탈당하는 사태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여야 정치인 대부분 2007년도 대선이 현재의 구도로 그대로 치러질 것이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50%대 육박하고 여당 지지율이 한자리 수에 머물러 있다 해도, 내년 대권을 함부로 예단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상되는 정계개편 시나리오 하나하나를 분석해보면,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 이론적으로는 말이 되지만 실제로 정계개편이 진행되기에는 선거법, 정당법 등의 개정으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첫째,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고건의 독자신당 정계개편론이다. 8월에 발족하기로 한 ‘희망연대’라는 조직이 장차 하나의 정당이 되어 뚜렷한 대선후보가 없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흡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게 과연 말처럼 쉬울까? DJ와 YS 시절에는 1인 보스가 모든 조직과 자금을 장악했다. 더구나 선거법과 정당법의 적용도 허술하여, 이들은 얼마든지 정치적 비자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1주일 만에 새로운 정당을 뚝딱 창당하곤 했다. 87년의 평화민주당과 통일민주당 창당, 90년의 민자당, 95년의 새정치국민회의, 2000년의 새천년 민주당 등이 바로 이들이 만든 정당이다. 그 대가로 이들의 측근은 거의 대부분 정치자금법 등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고연 고건 전 총리는 DJ나 YS 수준의 조직과 자금력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고건의 대권을 위해서 감옥까지 갈 각오를 하고 돕는 가신은 있는가? 이것이 없으면 신당창당 자체가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신당을 창당했다 한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이에 흡수될 것이란 전망도 쉽지 않다. 어찌되었든 이들은 현역 국회의원과 수십만 명의 당원을 지니고 있는 정당이다. 단지 대권을 잡아주겠다는 플랜 하나만 믿고 이들 당원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해체하고 고건 신당에 모여들 수는 없는 일이다. 최선의 경우라 하더라도, 이들은 우선 독자후보를 내고, 막판에 단일화를 추진하려 할 것이다. 과연 고건 신당은 그때까지 제 모습을 갖추며 유지될 수 있을까? 만약 고건의 지지율이 조금이라도 추락하는 순간 신당의 힘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결정적으로 여당과 원내 제 3정당 모두를 해체시킬 수 ! 있을 만큼 고건 총리가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지가 불확실하다.

DJ나 YS식 1인 보스 정치판 시각은 구태... “정계개편은 없다”

두 번째로 이야기되는 것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이다. 한나라당 등 보수 세력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통합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찌되었든 한 뿌리이고,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뭉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이 역시 말처럼 쉽지 않다. 통합과 합당이란 말이 좋아 보이지만, 통합과 합당을 한다는 것은 사실 상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해체하여 신당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2003년도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때, 유시민 현 보건복지부 장관은 개혁당을 이끌고 있었다. 개혁당은 김원웅과 유시민 등 2명의 현역 의원만을 보유한 초미니 정당이었지만, 진성당원 4만 명과 강경 노무현 지지 세력으로 구성되어 꽤나 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유시민은 당시 개혁당을 해체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당원 3분의 2의 찬성을 받아낼 자신이 없어 편법을 쓰다, 결국 개혁당 해산은 무산되었다. 개혁당은 그대로 남고 개혁당 내의 유시민 세력이 열린우리당에 개별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당원과 대의원들의 정서 상,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당이 해체된다는 데 동의할 사람이 없다. 어차피 자신들이 지지하는 노무현 신당에 참여하는 것이고, 개혁당의 실질적 오너인 유시민이 추진했을 때도, 개혁당 해체에 실패했다. 그런데 과연 이미 감정적 골이 깊어져 있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당원들이 단지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서로의 당 간판을 내리자는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까? 더구나 합당 시, 그 당은 노무현 정권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정권 실정에 책임을 져야한다. 노무현 스스로 탈당하고 나온 민주당에서 이런 구도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한 민주당에 튀어나간 열린우리당 세력 역시 합당은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다. 언론사들은 별다른 명분 없는 합당에 지속적으로 비판기사를 쏟아낼 것이고, 한나라당 등 보수 세력 역시 무원칙한 야합이라 공격할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 역시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계개편’... 집권 위해 정당을 파괴하는 행위
민주주의 원칙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 정치개혁

세 번째 안은 한나라당의 대권주자가 탈당하여, 중도세력을 결집하는 신당을 창당한다는 안이다.

특히 전당대회 이후 박근혜 세력의 당장악력이 높아짐에 따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탈당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어차피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의 승리가 99% 점쳐지는 상황이 되면, 이명박 시장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탈당 및 신당창당에 나선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명분이 약해 현실성이 떨어진다. 박근혜 세력이 당을 장악했다 한들 그건 정당한 전당대회의 결과물이다. 단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탈당하여 신당을 만든다면 어떤 국민들이 이에 동의해주겠는가? 실제로 이명박 시장은 ‘탈당이란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러한 말들이 반복되면 결국 그 말에 따라,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의 탈당 움직임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고건 총리의 신당과 똑같이, 설사 탈당한다 한들 어떻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끌어들일 것인지 계획을 잡기도 쉽지 않다. 현재 상황으로는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의 탈당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것이다. 말만 무성한 정계개편론에 대해 개별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검증하면 현실적 난관을 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래서 실제로 말 이외의 정계개편 움직임은 미약하다. 누구 하나 실제로 신당을 창당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한국의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은 강화되어있다. 또한 국민들 역시 선거 때의 반짝 신당에 질린 터라, 그 누가 당을 만들어도 지지를 보내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열린우리당이라는 신당 창당이 몰고 온 정치적 혼란과 국정운영 난맥은 대권 주자의 정계개편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국민적 동의를 받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정계개편 논의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은 변했는데, 아직도 DJ나 YS식의 1인 보스 정치의 시각으로 정치판을 바라보는 정치인과 논객들의 구태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각자의 정당을 개혁하고 발전시켜, 그 당의 후보로서 정당히 국민의 선택을 받는 정당 민주주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 정치개혁이다. 그 이외의 정계개편은 그 어떤 명분이라 하더라도, 결국 집권을 위해서 정당을 파괴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변희재 칼럼니스트<미디어평론가, 조선일보 아침논단 필진>